난민, 낯선 이름에 관한 부끄러운 고백

 

김원석

 

1.

난민에 관해 막상 글을 쓰려니 아득한(?) 옛날 연애편지 쓰던 순간보다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것은 아마도 내가 난민에 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고, 연이어 고백하자면 난민에 대한 관심도 얼마 전부터 우연치 않게 생겨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글을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자꾸 드는 이유이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고약한 심보는, 난민이 한국에서 생활하며 겪었을 낯설음과 어려움들은 당사자들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이 최선일 것이고, 그들의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할지에 관해서는 소위 말하는 전문가 혹은 관련활동가들을 통해 들을 있으나,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앞선 고백처럼) 나와 같은 이들이 난민에 관해 가지는 일상의 무관심을 비롯한 날것의 시선 드러낼 방도가 딱히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2.  

그간 난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안성기 김혜자였다. 나는 분이 부부인 줄만 알았는데 여하튼 그들은 TV 속에서 선지자 마냥 온화한 모습으로 몸에 파리가 붙어있고 배가 불뚝 나온 가난한 흑인아이들을 보살피며 도와달라고 하였다. 내가 유일하게 난민을 생각하는 순간이었는데, 미안하지만 이후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들보다 명의 유명인뿐이었다. 그렇게 난민은 머나먼 나라의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편협하기 짝이 없는 범주에 국한된 나의 머릿속에서 가슴 속에서 스쳐지나갔다.

 

 

그렇게 보면 번도 난민이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같다.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6호선 이태원역을 없이 지나치고 외국인들과 심심치 않게 마주치면서도 그들을 대개 여행자로 생각하기 일쑤였고 아니면 사회문제에 대한 공감능력을 최대로 끌어올려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 문제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지만, 그들 가운데 누군가는 난민일거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실제 한국사회에서 난민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와는 상관없이, 난민이라는 용어 자체와 원체 친하지 않았으니 누구를 본들 그들이 난민인지 아닌지 어찌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3.

나의 무지와 무관심을 깊이 반성하지만 억울한 면도 조금 있다. 그러니까 도무지 난민문제들은 유별난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상 우리 속에서 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경을 넘어 꿈과 사랑을 이어가는 국제결혼이민자들의 가족사랑 프로젝트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TV프로그램 러브인아시아 같이, 각종의 언론과 학계에서 소위 다문화이슈를 적잖게 다루고 있으나 속에서도 난민은 유독 금지된 마냥 등장하지 않는다. 내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깊은 산골짜기에서 수도하며 살아온 인생도 아니요 은둔형 외톨이 마냥 방구석에 앉아 모니터를 통해 세상을 접해 것도 아니며 나름 오랫동안 이런저런 사회문제들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활동해왔는데도 말이다. 이런 면에서 난민에게 한국() 낯선 것만큼이나 우리에게도 난민이 낯선 것이 사실이다. 명백한 사실 앞에서 도와달라는 호소만으로 난민이 누구인지 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깨닫기란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다.

 

 

 

 

4.  

이런저런 기회로 외국을 돌아다니다 보면 느끼는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한 관심보다 북한에 대한 관심을 훨씬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북한의 체제가 그들과 너무 다른 데서 찾아오는 신기함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한국보다는 북한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그들에게 직접적인 정치사회적 변수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보면 난민의 문제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형성된 무관심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행자들이야 한국에 와서 돈을 쓰고, 이주노동자들은 우리나라 공장에서 공장주들을 위해 일을 하고, 결혼이주여성들도 여하튼 남편은 우리나라 사람이니 나름의 이해관계가 있는 반면에 당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난민들의 사정은 우리들의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쌍한 것은 알지만 우리도 굶어 죽을 판에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먹여 살려야 하냐며 갑자기 민족중흥의 투사가 되는 것이고 난민의 문제는 곧잘 나중에 여유가 생길 혹은 여유가 있는 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되어 버린다.

 

역시 이런 시선과 인식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민족중흥의 투사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난민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우연히 낯선 이방인의 시선을 듬뿍 받으며 타국에서 수개월 생활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조금은 생각을 바꿀 있었다. 물론 죽음의 위협과도 같은 극도로 불안정한 때문에 불가피하게 타국으로 넘어왔으나, 난민지위를 인정받지도 못한 온갖 차별을 감내하며 투명인간처럼 지내야만 하는 수많은 난민들의 처지를 타국에서 생활했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경험과 동일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매일매일 짊어지고 다니는 상처 깊은 세계를 내가 어찌 온전히 이해할 있겠는가.

 

 

 

 

오히려 고민의 시작은 이방인의 존재를 자체로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려 했던 다른 사람들의 태도에서 출발한다. 버스를 타면 자연스레 옆에 앉아 향기로운 내음 풍겨주시며 대체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시는 할아버지, 산책할 때면 몸뚱이만큼 커다란 강아지 들이밀며 (도저히 무서운 표정을 지을 없게) 환히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 버스가 너무 늦게 온다고 내게 걸어가는 편이 나을 같다고 한국은 어떠냐며 툴툴 거리셨던 . 이들이 내게 보여준 모습들은 결코 특별하지 않은 그냥 같은 공간 속에 살아가고 있는 나에 대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아주 담백한 인정이었다. 타국에서 나의 존재자체에 끊임없이 불편함을 느끼고 그것이 갖은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상황 속에서 이러한 담백한 인정이 얼마나 힘과 희망이 되었는지!

 

이후, 나는 한국사회에 살아가고 있는 이방인들의 삶에 약간의 관심과 고민들을 하기 시작한 같다. 특히 나의 경험이 사치스럽게까지 느껴질 정도로 가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난민들의 문제를 접했을 , 그들의 존재를 너무 특별하게 생각한 그리고 그들과 나와의 어떤 특별한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강박관념들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이해할 있었다. 따지고 보면 200여개가 넘는 세계의 나라 가운데 하필이면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보다 더한 연관성이 어디 있단 말인가. 물론 그런 연결고리를 찾으려는 시도가 불필요 것은 아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리고 보다 우선시 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지금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미화할 필요도 없고 악마화 필요는 더더욱 없다. 지금 우리에게 시급하게 요청되는 것은 21세기 민주주의 국가 한국에서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지속적인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다. 그리고 일상적 삶의 공간 속에서 그들에 대한 담백한 인정을 통해 그들이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할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적어도 나는 이상 이들에 대한 무관심에 변명을 늘어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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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얼마나 먼 길이 될지

그 누구도 내게 알려 주지 않지만

가슴 속에 숨 쉬는 꿈은

푸른 빛으로

나의 발걸음을 이끌어

지금은 비록 보잘 것 없어

초라한 모습이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아

어둠을 뚫고 아픔 속을 지나

날아오를 그 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아

눈부시게 반짝거릴 날개로

언젠간 나도 저 태양 너머

무지개를 찾아갈 거야."


한 사내가 죽었다. 

짧다면 짧은 52년의 삶이었다. 가장 낮은 곳에서 희망의 노래를 불렀던 어느 한 사내가 죽었다.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서,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한 사람이라도 도우려 했던 사내였다. 70만원의 급여를 받으면서, 매달 꼬박꼬박 낯 모르는 아이들에게 5~10만원의 후원금을 보냈던 그, 조금이라도 더 후원하기 위해 좋아하던 술과 담배도 끊었던 그였다. 자신의 이름으로 들어둔 4천만원 상당의 종신보험의 수령자 명의도 어린이 후원 재단으로 바꿔놨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죽었다. 음식 배달 후 그릇을 수거하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나섰다가 맞은편에서 오던 자동차와 충돌해, 이틀 만에 숨을 거둔 것이다.


세상의 각박한 눈으로 봤을 때, 그는 초라한 사람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수입이 많지도 않았으며, 고시원 쪽방에서 거주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 꿈은 점점 푸른 색으로, 점점 커지고 있었다. 후원을 받은 어린이들의 감사 편지를 볼 때, 삶의 큰 보람을 느꼈던 그. 그의 고시원 쪽방에는 어린이들이 보낸 감사편지와 어린이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 곱게 액자로 놓여져 있었다. 바로 그 어린이들이 그가 꿈 꾸었던 '푸른 빛의 꿈'이었다. 


겉으로 보면, 세상 누구보다 외로워보이는 사람이었지만, 어린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며 무한한 행복을 느꼈을 그였다. 그 어린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라는 날이야말로 그가 꿈꾸던 '무지개를 찾아간 날'이었을 것이다. 


그는 과연 무지개를 찾아갔을까? 그의 빈소에서는 낯 모를 중년 남성이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고인과 전혀 인연이 없던 사람이었다. 그는 계속 되뇌었다.


"돈을 허튼 데에 쓰고 살았다."


고인의 무엇이 그 중년 남성을 하염없이 울며 후회하게 한 것일까? 고인은 과연 '꿈꾸었던 무지개'를 찾아갔을까?


2.


"모두가 날 외면하고

뒤 돌아서 내게 손가락질 하지만
남 모르게 품어왔던 꿈은
푸른 손길로 나의 어깨를 다독여
지금은 가장 낮은 곳에서
눈물을 참고 있지만


나는 슬퍼하지 않아
어둠을 뚫고 아픔 속을 지나
날아오를 그 날을 위해
포기하지 않아
눈부시게 반짝거릴 날개로
언젠간 나도 저 태양 너머
무지개를 찾아갈 거야."


그는 미혼모의 아들이었다. 7세 때 어머니에게서 버려져 고아원에 갔고, 12세에 고아원을 뛰쳐나왔다. 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살기 위해서 닥치는대로 일했다. 구걸, 양조장 허드렛일, 시장 지게꾼, 안해본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에게 세상은 살기 힘든 곳이었다. 가슴 속에서는 원망만 커져 갔다. 소년원에도 몇 차례 다녀왔고, 어른이 돼서는 술을 마시다가 자신을 무시한다면서 불을 지르려다가 붙잡혀 교도소에도 다녀왔다. 원망만큼 커져간 것은 포기였다. 포기는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의 삶은 나날이 황폐해졌다.





하지만 그는 교도소에서 '남 모르게 꿈을 품기 시작'했다. 우연히 봤던 모 어린이재단이 발간한 잡지를 보면서였다. 그 잡지에는 자신과 똑같은 환경에서 어려움을 겪지만, 꿋꿋하게 꿈을 키워가며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 이렇게 쉽게 포기하고 원망할 삶이 아니었구나. 그는 며칠을 펑펑 울었다. 이미 훌쩍 어른이 됐을 정도로 많이 흘러가버린 시간, 그 시간을 과연 제대로 살았는지 후회됐고, 어린이들에게 부끄러워졌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고 여긴 것일까? 교도소에서 나온 이후, 그의 삶은 변했다.


출소 이후, 그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으로 일하며 많지 않은 월급을 쪼개 꼬박꼬박 어린이재단에 후원금을 보냈다. 수천만원을 수령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도 수령인을 어린이재단으로 바꿔놓고 열심히 보험료를 냈다. 사후 장기기증도 약속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그랬던가? 삶은 먼 길이라고. 먼 길이기 때문에 때때로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그 자신이 받았던 세상의 설움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지만,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어둠을 뚫고 아픔 속을 지나, 날아오를 그날을 위해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결코 버리지 않고 이어지는 한, 꿈의 결실은 점점 커진다. 꿈의 결실을 실천하는 삶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3. 


"모든 것엔 기다림이 필요해
그래 내겐 아름다운 꿈이 있잖아
나의 꿈을 위해
내 모든 걸 다 걸을래."


그는 그렇게 기다려왔다. 아름다운 꿈을 위해, 그는 모든 것을 그 꿈을 위해 걸었다. 이 넓디 넓은 세상에서는 한 없이 작은 손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는 그 작은 손길은 큰 용기와 꿈으로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꿈은 아름답다. 그는 그 이치를 알았던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방황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영정 사진 속 그의 눈빛은 말했다. 자신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했노라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남 모르는 이들과 나누며 더 크게 예쁜 풍선으로 만들었던 추억이 있었노라고.





그는 가족이 없었다. 그래서 장례조차 제대로 치루지 못할 뻔 했다. 하지만 그를 안타까워 한 어린이재단에서 장례를 치루었다. 그리고 그의 빈소에는 그의 뜻을 뒤늦게 알고 한달음에 찾아온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의 후원을 받았던 어린이가 이제는 어엿한 중학생이 돼 빈소를 찾아와 그를 배웅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남 모르는 중년 남성이 찾아와 스스로 "돈을 허튼 데에 쓰고 살았다"고 후회하며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그 자신도 고아라던 어떤 중년 남성은 고인의 뜻을 이어가겠다며, 자신의 명의로 된 보험금의 수령자를 어린이 재단으로 바꾸었다.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찾아온 부모도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였지만, 모두들 그의 영정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지난 삶을 후회했다. 교도소 안에서 우연히 신문으로 그의 이야기를 접한 수형자들도 교도소 안에서 작업으로 번 상여금을 후원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모두들 그가 알려준 아름다운 꿈에 동참하기로 약속했다. 그의 빈소를 지키던 중국음식점 주인 아주머니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아저씨, 그렇게 외롭게 살더니 죽어서 이렇게 친구가 많이 생겼네."


꿈의 가치를 믿고 말없이 실천하며 기다려왔던 그의 삶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세상은 그래서 아직은 살 만한 곳인지도 모른다.


4. 


"난 쓰러지지 않아
눈물을 딛고 외로움을 견뎌
끝내 웃을 그날을 위해
서두르지 않아
저 먼 곳의 꿈이라고 하여도 
언젠간 분명 저 태양 너머
무지개에 다다를 거야."


자신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실천하는 꿈이 있는 한, 어려움을 만날지언정 쓰러지지는 않는다. 삶이란 끝없는 시련의 연속이어서 누구나 실패를 맛보고 좌절하기 마련이지만, 그 스스로를 굳게 버틸 수 있게 만드는 꿈이 있다면 결코 쓰러지는 일은 없다. 그러다 보면 끝내 웃을 날이 온다.


영정사진 속 그의 환한 미소를 보며 수많은 사람들이 삶의 가치를 돌아보았다. 나눔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시야를 좀 더 넓히지 않았고, 낮추지 않았던 것에 대해 후회했다. 그리고 그의 뜻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나눔이 주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무지개에 다다른 그는 얼마나 큰 행복을 누려왔던가? 먼 곳의 꿈이라고 하여도, 한 사람 한 사람 뜻을 모아 실천한다면 그 거리는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는가? 


5.


영화 <철가방 우수씨>가 개봉했다. 그의 이야기다. 모든 배우들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출연했다. 주연을 맡은 배우 최수종씨도 그의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그룹 부활의 보컬 정동하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철가방 우수씨>의 OST 테마곡 <애벌레>가 귓가에 들려온다. 꿈을 위해 기다려 온 '애벌레' 故 김우수씨의 이야기가 그대로 스며든듯한 가사가 마음을 울렁이게 한다.


6. 


<애벌레>의 노래가 다시 한번 울려퍼진다.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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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성실한 생활인이었다. 언제나 지각 없이 정시에 출근했으며, 근면성실하게 업무에 임했다. 가정에서는 부족할 것 없는 아버지였으며, 자녀들에게도 언제나 상냥했다. 그는 좋은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는 이후 전범재판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은신하며 노년을 보내던 그를 납치해 공개재판 후 처형해 버렸다. 아니, 그 성실한 아버지가 왜 그런 무시무시한 종말을 맞이해야 했을까? 바로 그 '근면성실한 업무' 때문이었다. 


그는 나치당원이었다. 히틀러의 친위대 SS 중령으로서, 유태인의 등급을 분류하고, 그들을 '어떻게 최종 처리할지'에 대해 실무책임을 맡은 사람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사인에 따라 유태인은 가스실로 갔다. 그의 근면성실한 업무는 결국 최악의 결과를 유도했다. 사람은 그 손끝으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중대한 결과를 유발한다. 그러나 그 손끝을 움직이는 것은 바로 '뇌'다. 그의 '근면성실한 손끝'은 결국 뇌를 잘못 만나, 최소한의 선악에 대한 판단조차 하지 못한 채, 수만 이상의 사람들의 목숨을 끊은 것이다.


아돌프 아이히만, 그는 이렇게 변명했다.


"오직 명령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했을 뿐이며, 그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을 수 있을까? 우리의 '아돌프 아이히만'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은 2010년 2월 한 주간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철저히 ‘상명하복’ 원칙을 지켰고 조직을 위해 '십자가'를 졌다."


"내 경우엔 시대가 나를 죄인, 역적으로 만들었다. 과거와 현재의 잣대는 분명히 다르다. 유신정권 시절의 '애국'이 지금은 천인공노할 죄가 된 걸 보면 모르겠나."


그는 자신의 근면성실함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고문기술자'가 아니다. 굳이 기술자라는 호칭을 붙여야 한다면 '심문 기술자'가 맞을 것 같다. 논리로 자신을 방어하려는 이와 이를 깨려는 수사관은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인다. 속된 말로 '선수끼리'의 대결이랄까. 그런 의미에서 심문도 하나의 '예술'이다. 비록 나는 그 예술을 아름답게 장식하지 못했지만."


이 얼마나 근면성실한 태도란 말인가. 그의 인터뷰 기사 <'고문기술자' 이근안 직격토로 1탄>과 <'고문기술자' 이근안 직격토로 2>을 각각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다. 그는 미친 사람이 아니었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멀쩡하다.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한 확신이 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대로, 손끝을 움직이는 뇌를 잘못 만난 것이다. 한나 아렌트의 말대로 악의 평범함이자, '무지야말로 가장 큰 죄'였던 것이다.



#2. 마녀사냥


영화 <남영동 1985>에서 대공분실 수사관들과 고문기술자 이두한은 시종일관 김종태를 고문한다. 형제들이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를 '빨갱이'로 낙인찍는다. 사람은 트라우마에 따라 제각각 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도 알 수 있는 상황이다.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낸데다가 법관의 꿈을 접은 뒤, 반공작가로 거듭나기를 선택한 사람도 있지만, 민주화의 길을 걸은 김종태도 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표면이었다. 가족과의 관계란 천차만별이며 충분한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기본적 사고조차 망각하고, 단지 형제들이 월북했다는 표면만을 강조한다. "스스로 빨갱이임을 자백하라"고 '주리를 트는가' 하면, 거물급 야당 정치인들이 그 수괴임을 밝히라고 '조지기도' 한다. 


'주리를 틀기도 하고 조지기도 하는' 그들은 철저한 '아이히만'이다. 스스로를 사장, 전무, 과장 등으로 호칭하는 그들. 각각 애인과의 이별을 걱정하고, 승진에 목을 매기도 하며, 그저 자리만 지키면 된다는 무사안일에 빠지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평범한 사람들이 무미건조한 관료제에 폭압이라는 요소가 가미될 경우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저 중요한 것은 "위에서 지시한대로", 아이히만과 이근안의 생활태도이자 처세였다.


미셸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영원할 수 있는 이유다. 미셸 푸코는 극단적인 사실주의를 취한다. <남영동 1985>는 故 김근태 전 의원의 수기에 미셸 <감시와 처벌>을 덧입혔다. 중세시대, 타락한 가톨릭 권력은 반대파를 마녀로 몰아 화형한다. 그 이전에 신체적 고문과 폭력, 무너지는 사람의 정신, 그 과정에서 맛볼 굴욕,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김종태는 고문 속에서 혼미해지는 가운데, 아내의 환영과 스스로의 환영을 맞이한다. 환영들은 말한다. 


"넌 최선을 다 했어. 어쩔 수 없었어."


그렇다.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혔다는 그 수치심, 그리고 거짓을 말하고 동료들의 이름을 엉뚱하게 불었다는 그 자괴감 등은 영원할 것이다. 사람이란, 그렇듯 정신적 상처와 악몽으로부터 입는 타격이 더 큰 법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다. 



#3. Safe House


<감시와 처벌> 초반, 가톨릭 권력의 마녀사냥을 극단적 사실주의로 묘사한 근거 중 하나는 바로 권력의 속성에 대한 묘사였다. 마녀사냥이란, 결국 획일화의 강조다. 또한 독재의 필수다. 반대파를 처벌하며, 자신이 원하는 획일화를 강조하기 가장 좋은 수단이다. 독재에 '감시와 처벌'이 필연적인 이유, 그리고 저토록 '오로지 명령만이 중요한' 세계 곳곳의 아이히만과 이두한을 꼭 필요로 한다.


소위 '빙고호텔'로 통했던 보안사 서빙고분실, 그리고 <남영동1985>의 무대 경찰 남영동 대궁분실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간다에는 Safe House라는 것이 존재한다. Safe House, 재미있는 이름이다. 왜일까? 독재자들의 케케묵은 상상력은 세계 어디를 가든 똑같기 때문이다. 우리도 저 독재의 시대에 반대파를 끌고가 고문하던 곳을 안가(安家)라고 하지 않았나.





여기, 우간다에도 어느 김종태가 있었다. 높은 물가와 생활고 때문에 시위가 발생했고, 이를 비판하는 야당을 지지했던 그 '어느 김종태'는 시위에 가담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여자들이 그렇듯, 그는 평범한 생활인이었다. 하지만 그 시위참여에 이어 체포된 뒤 그는 평생에 남을 상처를 가슴에 남긴다.


고문은 극심한 신체적 고통의 유발과 함께 정신적 모멸감과 수치 등을 심어줌으로써 사람의 이성과 판단력을 무너뜨리는 도구다. 단지 시위에 참여했을 뿐인 그 '어느 김종태'는 엄청난 구타와 성고문, 그외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문을 당한 뒤 엉뚱한 질문을 받는다. 이것조차 비슷하다. 그들은 이렇게 물었다.


"너 반란군이지?" 

"너 총 가지고 있지?"


YWCA 위장결혼식 사건 당시, 어느 시위참여자는 "시위자금은 김대중이 지원했고, 이북의 사주를 받은 것 맞지?"라는 질문을 지속적으로 강요당한다. 미셸 푸코는 옳았다. 그들의 질문은 듣고자 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정해진 답을 강요하기 위한 예정된 질문이다. 어쩌면 이렇게도 똑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들의 꽉 막힌 상상력을 향하여, 반항의 건배를.


우간다의 어느 김종태는 거액의 돈을 들인 후에야 6개월 간의 고문 행렬을 뒤로 한 채 풀려날 수 있었다. 그가 숨어 사는 동안, 그의 어머니도 경찰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고, 그 충격으로 사망했다. 우간다의 어느 김종태는 가족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우간다를 빠져나와 한국으로 올 수 있었다. 2012년 어느날, 그는 한국 정부에 난민지위를 신청했다. 



#4. 인간의 한걸음


故 김근태 의원이 겪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진실은,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로 대규모 민주화시위가 전개돼 봄이 찾아오면서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세상이 달라지니 입장 또한 바뀌었다. 스스로를 애국지사로 여겼던 이근안  前 경감은 교도소에 가는 신세가 됐다. 故 김근태는 그렇게 그날의 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안다는 것은, 결국 진실을 찾아가는 힘임을 故 김근태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간다의 '어느 김종태'에게, 우간다에서 그런 진실을 찾기란 힘든 상황이었다. 우간다의 요웨리 카쿠타 무세베니 대통령은 만 26년째 대통령직을 유지하며 독재를 하고 있다. 야당 활동은 여전한 금기이며, 수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다가 감옥에 가거나 Safe House로 끌려간다.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지 않던가? 멀리 갈 것 없이 그것은 우리의 과거였다. 우간다에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조국 우간다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어느 김종태'는 한국으로 왔다. 그는 난민이다.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며 참정권을 행사하는 시민의 정당한 의무와 권리를 행사하려다가 부당하고도 잔인한 고문을 당했고, 더이상 우간다에서 살기 힘든 상황에 처했다. 한국행은 그에게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한국에 왔다.


난민은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와 무관한 존재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옆에 있다. 우간다의 '어느 김종태'는 그렇게 우리 옆에서 손을 내밀었다. 과연 우리는 그의 손길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2012년 어느날 난민지위를 신청한 우간다의 그 김종태, 과연 한국 정부는 어떻게 대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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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원과 교도소.


지금 이 글을 보는 독자라면, 둘 중 한 곳으로 반드시 가야 하는 상황일 때 어디를 가실 것인지 궁금하다. 당연히 쉽게 판단하기 어려우실 것이다. 둘 중 어느 곳도 가서는 안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범죄자 맥머핀(잭 니콜슨)은 교도소로 가야 할 운명이었으나, 정신병원을 선택했다. 그는 어린 여성을 성폭행한 흉악범이다. 동종 전과 5범으로서, 더이상 그에 대해 뭔가 말할 여지도 없다. 그가 정신병원으로 간 이유는, 정신병원이 교도소보다는 아무래도 자유롭고 편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교도소 내에서 미친 행동을 하며 일부러 정신병자로 오해받아 정신병원으로 후송되는 길을 선택한다. 이제 교도소보다 편해졌을까?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범죄자보다 더 극악한 권력의 속성



맥머핀의 눈으로 바라본 정신병원은 평온하기 그지 없는 곳이다. 아침에는 클래식이 울리는 가운데, 환자들은 고요한 환경에서 정해진 진료일정에 따라 투약을 받거나 주사를 맞는다. 온화하면서도 엄격하게 환자들을 바라보며 관리하는 레취드 간호사(루이스 플레쳐)는 이들의 '엄마'이자 선생님이다. 교도소의 삭막한 분위기와는 차원이 달랐던 이 환경, 맥머핀은 악동 행각을 시작한다. 그리고 주의깊게 병원을 관찰한다. 레취드를 제압하지 않으면 자신의 안락한 병원 생활은 영원한 안녕이기 때문이다.


그를 두고 병원 측은 회의를 한다. 그는 정신병원에 있을 이유가 없음이 명백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레취드 간호사는 그의 교도소 송환을 반대한다. 이때부터 맥머핀에 대한 정확한 사실평가이자 시선인 '극악무도한 성폭행범'이라는 잠시 지우도록 하자. 병동이라는 작은 세계를 꽉 틀어쥐고 모든 것을 통제하는 레취드 간호사와 그에게 반항하며 체계를 흔들려 하는 맥머핀의 싸움이야말로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진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극악무도한 성폭행범'이라는 맥머핀의 배경은 이 영화의 선악구도를 흔드는 주범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 흉악무도한 맥머핀보다 더 잔인하고 무서운 이유는 바로 권력 체계가 저지르는 범죄일 것이다.


레취드가 맥머핀을 남겨두고자 한 이유는 '본보기'였다. 반항하며 선동하는 그를 제압해둔다면, 지금도 잘 장악돼 있는 정신병동이지만 앞으로는 보다 더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그것은 바로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악의적으로 휘두리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파괴한다. 그 악의에는 권력을 쥔 개인의 적개심이 숨어있다. 개인의 생각과 취향을 위해 본질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는 것이 권력이다.


이 정신병원은 '비정상인'인 환자들 위에 정상인인 의사와 간호사 등 병원의 진료체계가 군림하는 구도로 구성돼 있다. 레취드 간호사의 온화한 미소에는 그 누구도 반항할 수 없도록, 경비원을 호출 전화 한 통이면 불러 제압할 수 있는 가혹한 체계가 숨어 있다. 그 전화통을 쥐고 있는 사람이 바로 레취드 간호사다. 그 온화한 미소는 정치인이 선거운동할 때나 방송 인터뷰할 때만 짓는 그 거짓 미소와 다름없다. 맥머핀은 바로 이 체계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병동에 거주하는 환자지만 '비정상인'이 아님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그 대표적인 상징은 맥머핀이 주도한, 경비원들과 환자들의 농구시합이다. 분명 다른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농구장에서의 경비원들과 환자들은 '똑같은 사람들'이었다.


그 농구시합은 레취드 간호사에 대한 반란을 명백하게 상징한다. 고요한 클래식 음악과 평화로운 토론과 대화라는 틀 속에 숨어있는 레취드 간호사의 통제방식이란, 환자들이 제각각 가진 트라우마를 건드려 위축시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트라우마를 언급하면 환자들은 위축돼 스스로 굳건히 살아갈 수 있는 의지를 상실해버린다. 그럼으로써 흩날리는 레취드 간호사의 미소는 결국 우월의식이었다. "너희들이 아무리 개겨도 아무 필요도 없어!"


맥머핀이 시도한 모든 반란들은 결국 수포로 돌아간다. 탈출을 결심하지만 그것은 맥머핀의 치명적인 판단 실수였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전설이라는 장르에서 흔히 봐왔던 공식이 그대로 적용된다. 모두의 염원을 안고 도전했던 자의 철저한 실패, 그리고 패망. 그렇듯 병원의 체계, 아니 권력의 체계는 공고했던 것이다.





"권력은 도처에 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늘어…'환자는 돈' > SBS 2012년 7월 21일자 보도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저 설정은 그저 영화적 설정이 아니다. 현실이다. 강제입원한 환자가 많을수록 정부의 보조금을 많이 받는 정신병원의 의료수가 체계의 부작용과 개개인의 탐욕이 감시와 처벌을 만나 최악의 결과로 치닫는 경우가 있다. 재산분쟁 중인 남동생을 정신질환자로 몰아 강제입원시킨 누나가 있다. 이혼소송 중인 배우자를 정신질환자로 몰아 강제입원시킨 사람도 있다. 알콜중독 치료를 위해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가 강제입원당해 탈출하려다가 더 큰 인권억압을 당한 사람도 있다. 그들의 이해관계와 병원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순간, 멀쩡한 사람은 '정신질환자'라는 낙인과 함께 억압당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의 지적에 개개인마다의 탐욕이 덧붙여졌다는 의미일 것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켄 키지의 소설 원작을 영화화한 것이다. 소설 원작과 영화 모두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디언이 이주 백인에 의해 어떻게 박해당했는지, 그리고 권력이라는 체계에 의해 개인이 어떻게 파멸하는지, 이렇듯 이중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미셸 푸코는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판옵티콘(자동으로 작동하는 감옥)의 감시체계 원리가 사회 전반으로 파고들어 규범사회의 기본 원리인 '판옵티시즘(panopticism)'으로 바뀌었다."


뒤집어 말하면, 우리가 규범사회의 기본 원리라고 알고 있는 상식들은 감시체계 원리라는 것이다. 획일화에 대한 강조야말로 권력 유지의 핵심이자, 감시와 처벌의 핵심이다. 그래서 미셸 푸코는 "권력은 도처에 있다"고 말했다. 상식이라는 이름의 획일화를 강조하지 않는 사회란 없기 때문이다.


 



레취드 간호사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통제 하에 환자들이 일절의 반항 없이 침묵하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감시와 처벌의 권한을 가진 권력이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원작 소설과 영화는 왜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을 선택했을까? 그리고 왜 맥머핀을 흉악범으로 선택해 교도소에서 온 사람으로 설정했을까? 이것은 전형적인 푸코식 설정이다. 더이상 왕이라는 절대권력자가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그에 버금가는 권력을 휘두르며 사람들을 억업하는 힘을 가진 곳은 감옥, 정신병원였기 때문이다.  미셸 푸코는 그 외에도 가정, 학교, 공장 등 '규칙'이라는 체계를 모든 곳을 감시기구이자 처벌기구라고 봤다.


법무부가 만드는 난민지원센터도 뻐꾸기 둥지?


법무부는 현재 영종도에 난민지원센터를 건립 중이다. 12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대공사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난민을 긴급구호하며 지원하며 거주 공간까지 제공할 수 있는 공간을 왜 '섬'에 짓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주변에는 오로지 갯벌과 해양경찰부대와 헬기장만이 있다. 즉, 한국 사람들과의 사회적 접촉이나 교류가 차단될 위험이 높은 것이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난민실까지 그곳에 옮겨가면, 난민인정절차에 필요한 행정적 사안까지 오로지 영종도 내에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격리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해양경찰부대가 있어 사격훈련을 진행할 경우, 그리고 헬기가 이착륙하는 소음이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난민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낄 공포를 더욱 자극할 공간이 될 가능성이 있다. 서로 저마다 다른 이유로 난민지위를 신청했을 그들 사이에서 한 곳에서 뒤엉켜 살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 또한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저마다 다른 그들이 주변에 오로지 해양경찰부대와 갯벌만 있는 외딴 섬에 있는 제한된 공간에서, 난민실에서 부르면 갔다가 다시 돌아와 수용되는듯 거주하는 그 그림이 떠오르지는 않으시는지 모르겠다. 난민에 대한 인식개선은커녕 인정율조차 현저히 낮은 현 상황에서 그곳은 마치 맥머핀(잭 니콜슨)과 다른 환자들이 레취드 간호사의 통제 하에 살아가던 그 병원과 같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20억원의 예산이 드는 뻐꾸기 둥지.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뻐꾸기'란 정신질환자나 미친 사람을 뜻하는 은어라고 한다. 뻐꾸기가 둥지라는 틀 위로 날아갔다는 것은 더 큰 자유를 찾았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난민에게 필요한 것은 값비싼 뻐꾸기 둥지가 아니라, 둥지 위로 날아올랐을 때 보이는 저 높은 곳의 더 큰 세상이다. 난민은 '뻐꾸기'가 아니다. 그들은 위험한 존재도, 혐오스러운 존재도 아니다. 그들에게 120억원 짜리 비싼 뻐꾸기 둥지는 필요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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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의 유쾌한 반란 <슬램덩크>


"왼손은 거들 뿐…"


농구 소재 만화 <슬램덩크>를 본 사람이라면 잊을 수 없는 한 마디. 만화 연재 내내 사이가 좋지 않던 서태웅과 강백호는 최강팀 산왕과의 접전을 진행하면서 종료 직전 눈빛이 마주친다. 레이업슛을 시도하던 북산 최고의 스타 서태웅에게는 이미 산왕의 밀착수비가 집중되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강백호에 대한 마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것을 발견한 서태웅이 눈빛을 보내자 강백호가 담담하게 했던 한마디가 "왼손은 거들 뿐…"이었다.


강백호의 미들슛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자 두 사람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바로 저 그림이다. 하지만 여기서 "북산은 이 승리를 계기로 탄력을 받아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식의 이야기가 이어졌다면, <슬램덩크>는 역사에 남지 않았을 것이다. 최강 산왕에게 이겼지만 "이후 거짓말처럼 3연패를 당하면서" 스포츠만화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것 또한 인상적이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이겼는지 졌는지의 여부는 기본이지만, <슬램덩크>는 그를 초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끈끈해지는 과정을 다룬다. 부상으로 인해 좌절하던 정대만이 농구장을 부수려 하다가 안선생 앞에서 무너지면서 눈물을 흘리며 "농구가 하고 싶다"고 통곡을 하는 장면, "당신에게 있어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 국가대표 시절이었나?"라고 묻던 강백호에게 담담하게 "(학생들과 함께 농구를 하는) 지금 이 순간"이라고 묻는 안선생 등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회자된다.


승부보다 더 중요한 것, 그리고 결국 승부를 만들어나가는 것은 화합과 융화라는 것이다. 강백호, 서태웅, 정대만 등 개성이 하나같이 강한 학생들을 묵묵히 끌고 가는 안선생, 농구가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매니저 소연에게 반해 농구부에 입단했던 강백호가 점점 농구를 알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 등은 휴먼드라마로서의 <슬램덩크>를 만들어나간다. 북산팀을 그저 그런 실력을 가진 팀으로 설정한 것 역시, 뿐만 아니라 일본 내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농구를 소재로 선택한 것 역시 톡톡한 역할을 한다. 마이너의 유쾌한 반란이었다. 그래서 강백호는 늘 자신감을 가지고 말했다. "난 천재니깐!" 


다케히코 이노우에, 더 낮은 곳으로 <리얼>


 

<리얼> 역시 농구만화다. 하지만 보다 더욱 이색적이다. 장애인들의 휠체어 농구를 소재로 그렸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슬램덩크>에는 단순한 농구 이야기에서 벗어나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에 대작으로 남을 수 있었다. <리얼>도 마찬가지다. 휠체어 농구를 하게 된 개개인의 이야기가 농구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 어둡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게 현실이니까. 그래서인지 <리얼>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는 이 대사가 아닐까 한다. 


"승리 따윈 아무도 기대하지 않아. '장애가 있는데도,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그것뿐이야. 진지한 것도 좋지만, 적당히 해.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차피 '장애인' 스포츠에 지나지 않아."


처음 휠체어 농구를 접하고, 농구를 했던 시절의 승부근성이 발동돼 과할 정도로 의욕을 보이는 주인공에게 동료가 하는 말이다. 짧은 한 마디지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그들이 처한 현실이 담겨 있는 냉소의 한 마디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있더라도 결국 휠체어 농구라는 것은 그들이 살아있고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라는 이야기였을 것이다. 상호모순적이지만, 이렇듯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뒤섞여 귓가에 맴돈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양하다. 촉망받던 농구선수였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잃고 장애를 '굴욕'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 자신이 저지른 오토바이 사고 때문에 장애인이 된 소녀를 보면서 괴로워하는 사람, 피아노를 강요하던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육상선수가 돼 열심히 노력했지만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사람 등 캐릭터 하나하나가 드라마다. 하지만 새삼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개개인마다 기구한 드라마를 안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의 운명이니까.


요지는 이들이 어떻게 팀워크를 다지면서 각자의 상처와 절망을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휠체어 농구는 그래서 선택된 하나의 소재에 불과하다. 황순원 선생의 <별>에서 못 생긴 누이를 미워하던 '나'가 막상 누이가 죽었다는 소식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한걸음 한걸음 성장해나갔듯이, 상처와 절망을 딛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이야기다. 그 과정에서 그려지는 비장애인들의 편견 또한 우리에게는 묵직한 경고로 남는다. "장애가 있는데도 밝게 긍정적으로 즐기고 있습니다"라는 것, 그것은 장애인을 뭔가 '특별한 존재'로 보고 반면교사를 위한 존재 이상 이하로 생각하지 않는 풍토에 대한 경종일 것이다.


결국 <리얼>은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던진 묵직한 직구같은 만화다. <슬램덩크>는 변화구라고 할 수 있다. 두 만화는 하고자 하는 말은 비슷하다. 다만 <슬램덩크>는 강백호라는 대책없을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캐릭터를 내세워 밝고 경쾌하게 그려나갔고, <리얼>은 장애인들이 세상에 대해 느끼는 마음과 고민, 걱정들을 송두리째 담아 거침없이 던진다. 각자 상처를 가지고 다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떻게 뭉쳐 앞으로 나아가는지, 다케히코 이노우에는 여전히 희망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현실적으로.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까지 


사람은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사형이 확실시되는 조직폭력배 친구에게 검사인 친구는 공수특전사 대원으로서 5.18 진압에 참여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뒤늦게 고백한다. 조직폭력배 친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참여해 아끼던 후배를 잃었던 아픈 과거가 있었다. 검사 친구는 그 이야기를 듣고 죄책감에 자신이 계엄군으로 참여했던 사실을 숨겨왔던 것이다. 그는 아프게 말했다. "너는 그동안 나한테 속아왔어."


하지만 조직폭력배 친구는 잠깐의 충격을 딛고 검사 친구에게 말했다. "중요한 건 어떻게라는 사실이야. 넌 할만큼 했어." 그말과 함께 부탁했다. 자신에 대한 사형 구형을 검사 친구가 직접 해주기를. 적어도 너처럼 한 길만 바라보고 올바르게 살아온 사람의 구형이라면 납득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상처를 딛고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지우고 살아가는 방법은 불가능하다. 결국은 딛고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 딛고 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다케히코 이노우에가 답을 제시했다. 열정을 기울일 수 있는 소재와 그것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 그리고 그들과의 화합과 융화다. 그래서 <슬램덩크>에서 북산의 센터이자 주장이었던 채치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서로 각별히 친하지도 않고

너희들에게 화가 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팀은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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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슬램덩크 독자 2012/10/15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어기.. 잠깐 딴지를 걸자면, "(나에게 있어 가장 영광의 순간은) 바로 지금" 이라고 말한 사람은 안선생이 아닌 강백호입니다만.... 그리고 <리얼>에 대해 더 낮은 곳으로, 라는 부제를 붙인 것은 그 역시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낮게 보고 있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 아닌지... 아마 글쓰신 분은 그렇게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이미 언어구조 안에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서열, 위계의식이 내포되어있다는 의미겠죠.

    • 박형준 2012/10/15 1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사를 말한 사람은 제가 착각을 한 것이 분명히 맞는 것 같습니다. 지적해주셔서 감사하고요. 그런데 다소 오해를 하신 부분이 있다면,

      "낮다"라는 것은 우리가 흔히 인식하는 서열의 의미로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알고 이해하고 있느냐는 측면으로 볼 때 휠체어 농구라는 것은 분명히 수면 아래에 있습니다. 인식의 차원에서 수면 아래 낮은 곳에 있다는 의미로 활용한 표현으로써,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낮게 본다는 의미로 활용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2. 111 2012/10/24 0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리얼에서 촉망받던 농구선수라면 다카하시일텐데 자살안했는데요...

뿌리 깊은 관습의 피해자도 난민이 될 수 있다


난민신청자 중에는 각각 태어나고 살던 나라의 관습과 거리가 먼 인생의 선택을 한 후 난민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드시 명문화된 법률이 아니더라도, 종교나 민족에 따라 독특한 관습이 있고 이것이 거의 법과 비슷한 효력을 가진 '규칙'으로 인정되는 경우는 어느 나라에서든 있을 수 있다. 


그중에는 인간의 상식으로 봤을 때 이해가 가지 않거나, 인간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인권에 반하는 관습도 있다.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명기된 명예살인처럼, 이런 관습이 아예 법률로 못 박힌 경우도 있다. 이런 관습이나 법률과 다른 선택을 했을 때, 그 나라에서 삶을 이어나가기 힘들어진 난민신청자는 타국으로 떠나 난민신청을 한다. 


우리나라의 법원은 이런 난민신청자에 대해서는 해당 국가의 정부가 이 관습을 통제할 수 있는지, 혹시 잘못된 점을 고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는지를 중요시한다. 케냐 루오족 출신 여성이 아내상속 제도(남편이 사망하면 시동생과 재혼을 하거나 성적 자기결정권을 시동생들이 좌우하는 관습)를 피하기 위해 한국에 난민신청을 한 사건에 대해 우리 법원은 "케냐 정부나 비정부기구가 아내상속제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전통이 뿌리 깊이 박혀 쉽지 않아 보인다"는 점을 주목하며 루오족 출신 여성을 난민으로 인정했다. 


관습의 피해자가 난민으로 인정받는다?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쉽게 체감할 수 없을 것이다. 한번 굳어진 특정집단의 관습이 때로는 얼마나 무서울지, 그리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자가 어떤 위험을 맞이하는지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대중문화 콘텐츠가 있다. 윤태호 만화 원작,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다.


타락한 욕망이 만들어낸 조작된 메시아


<이끼>의 주인공은 일찌감치 인연을 끊었던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아버지가 살았던 시골마을로 내려간다. 작품 속 주인공의 아버지 '류목형(허준호)'는 악으로부터 조롱당할 운명을 맞이할 꼭두각시 메시아의 길이 예정돼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류목형은 자신이 쏜 총에 맞아죽은 베트남 여자가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를 출산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무기력한 메시아 류목형(허준호)


군인으로서 벌였던 살인행위를 회개하고자 귀국 후 가족을 뿌리치고 기도원으로 향한다. 기도원에서 류목형은 메시아로 통한다. 기도원 수련생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얻으며 신(神)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신이 현실의 욕망과 굴절돼 만났을 때, 신은 꼭두각시로 조롱당하거나 좌절을 맛본다. 기도원 원장은 기부금이 기도원이 아닌 류목형에게 모이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류목형은 그린벨트의 무허가 건물을 바꾸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돈'이라는 현실적 매개체가 개입된 그 순간 기도원 수련생들은 현실적인 기도원 원장을 지지했고, 형사 천용덕(정재영)은 기도원 원장과 짜고 류목형을 감옥에 집어넣는다. 이후 기도원 수련생들은 집단으로 사망한다. 이 집단사망은 마치 그 유명한 1987년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여기서 반전. 교도소의 재소자들이 류목형을 만난 후 하나같이 류목형을 존경하면서도 두려워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 천용덕은 류목형의 무서운 감화력과 진심을 알게 된다. 기도원 원장이 '기부금'을 위해 류목형의 능력을 알면서도 적그리스도로 몰아갔다면, 천용덕은 이 판을 확대시키기로 마음먹는다. 그는 형사 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마을을 만들어 자신의 끄나풀인 전과자들을 모아 스스로 이장이 된다. 


천용덕은 마을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른다. 고립된 산 한가운데에 있는 마을은 외지인에게 그 이상 배타적일 수 없는 닫힌 마을이다. 기도원에서 기부금을 위해 버림받았던 류목형은 더 교묘한 절대자인 천용덕을 만나 더욱 비참한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순수한 이상이 현실의 욕망과 만나 철저하게 패배하는 무기력한 모습 그 자체다. 류목형의 이 무기력함은, 현실과 맞부딪칠 의지 없는 말 뿐인 이상은 교묘하게 정치화되거나 혹은 종교를 가장한 정치화된 관습과 욕망 앞에서는 힘 없이 무너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저 먼 곳의 관습이 어떻게 힘을 유지하며 발휘하는지, 류목형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결국 죽었다. 진실의 미스터리를 쥐고 그저 힘없이 죽었다. 그 숙제는 고지식한 아들 류해국(박해일)이 이어받는다.


관습과 싸우고자 했던 자들이 얻는 것


<이끼>의 원작 작가 윤태호는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아버지가 남긴 숙제를 푸는 류해국의 캐릭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한 적이 있다.


"7~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무서운 분이 있다. 편의상 A라고 지칭하겠다. A가 모 웹사이트 게시판에 자기 사연을 올려놓았다. 아주 사소한 문제로 검사와 파출소장이라는 기득권층과 지독하게 싸웠고, 이 과정을 게시판에 다 올려놓았다. A는 이 싸움을 하기 위해 이혼당하고 직장도 잃었다. 그 얘기는 작품에 하나도 안 썼다. 나도 그분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더라. 다만, 그런 일을 겪은 A가 도피처라고 할 수 있는 마을에 들어왔는데, 그곳에서도 새로운 사건에 휘말리며 원래의 근성이 다시 발현되는 줄거리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두 장면이 떠올랐다. 영지(유선 분)가 창고에서 4명의 남자에게 둘러싸인 장면과 류해국이 잠자려고 하는데 누군가 밖에서 지켜보는 장면. 두 장면을 떠올리며 만화의 콘셉트를 스릴러로 잡았다."    -<오마이뉴스> 2010년 7월 28일자 기사 <"영화 <이끼>, 내 만화와 다르지만 존중"> 중에서


검사와 파출소장이 '기득권층'으로 통하는 것 역시 관습이다. 그들이 '기득권층'이라는 것은 법전 어디에도 명문화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상식으로 알고 있는 관습이다. 저 멀리 케냐에서 온 여성이 자국에서의 관습을 피하고자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은 것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낯설지 않은 일이다. '검사'와 '파출소장'과 '사소한 문제'로 '지독하게 싸운' 결과, A라는 남자가 얻은 것은 '이혼'과 '해고'였다. 이유는 다르지만, 똑같지 않은가. 현실의 맥락을 움직이는 관습과의 싸움에 고독하게 나선 개인이 어떻게 당하는지, 작가의 해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



- 정치화된 관습의 화신 천용덕(정재영)


그리하여 <이끼>는 우리가 충분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죄를 씻으려는 류목형의 의지는 기도원 원장의 물욕과 천용덕의 권력욕을 만나 교묘하게 정치화된 종교이자 관습으로 전락한다. 적어도 그는 누구든 감화시킬 수 있는 신비한 힘이라도 가질 수 있어서 꼭두각시 노릇이나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관습과 싸우고자 할 때 얻는 것은 A라는 남자가 처한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로 인해 처한 결과가 그 사람이 더 이상 삶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의 박해로 이어지면 그 사람은 바로 난민이다.


정치화되고 종교화된 관습은 무감각하다


한동안 벽지에서 일어나는 각종 성폭행과 이후의 마을 차원의 은폐 사건이 방송매체에서 크게 다뤄진 적이 있었다. <이끼> 역시 그 매개체를 다룬다. 성(性)을 매개로 여성에 대한 억압을 행사하는 관습의 폭력성은 무척이나 일반적이다. 관습과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억압을 시도하지만, 은폐된 흑막에는 정치화되고 종교화된 관습을 통해 이득을 얻는 자들의 어긋난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이 숨어 있다. <이끼> 속 유일한 여성 등장인물 '영지(유선)'은 그 산 증인이다. 


천용덕을 포함한 마을의 모든 남자들은 영지의 몸을 이용한다. 마을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화되고 종교화되는 관습들이 궁극적으로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의 가장 전형적인 단면이다. 류목형이 특히나 무기력했던 이유는 바로 이 현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단죄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류목형'이라는 메시아는 불행히도 현실에서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존재였다. 현실의 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자칭 메시아'나 그 메시아에게 기대를 걸었던 힘 없는 여성이 겪는 무기력함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상식과 도덕성이 결여된 관습은 일종의 무감각자다. 힘 없는 자에게 큰 상처를 주며 때로는 목숨을 앗아가면서도 그것이 죄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단지 그를 명분으로 배후에 숨은 범죄적 쾌락과 힘을 유지하기 위해 앵무새가 될 따름이다. <이끼> 속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독특한 정신적 문제와 함께 삐뚫어진 욕망을 이어가고 있었다. 



-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의 정경, 하지만 그속에서 '이끼'는 자라고 있다.


삼덕기도원 원장은 일찍이 류목형을 일컬어 "가벼운 도둑은 겉을 뺏지만 진짜 악마는 마음을 훔친다"라고 평가했지만, 그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류목형만을 일컬어 정확히 표현하자면 "진짜 악마는 마음을 훔치지만, 훔치는 과정에서 길을 잃고 본연의 무기력함과 자아도취에 빠져 이도저도 아닌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엄연히 존재하는 피해자가 있지만, 류목형은 영지를 구원하지 못했고 스스로 신이라는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아도취에 빠졌을 뿐이다. 


관습의 피해자가 진정어린 친구를 만나기가 얼마나 힘든지, 그리고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다가도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지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삐뚫어진 욕망과 그로 인한 피해자, 그리고 믿음을 저버린 친구 아닌 친구, 이 모든 것은 악몽이다.


이끼는 우리에게 무엇으로 다가오는가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이끼라는 제목이 먼저 들어왔다. 이끼의 사전적 의미보다는 이끼라는 말을 어느 상황에 쓰는가에 주목했다. '너 이끼 같다. 왜 이리 칙칙하게 사냐'라는 식으로... 그런데 나중에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끼가 매우 이로운 식물이더라. 제목을 바꿀까 생각해봤는데 이끼가 주는 싸늘한 어감을 대체할 제목이 마땅치 않아서 밀고 나갔다."


제목이 왜 <이끼>인지에 대한 윤태호 작가의 해명이다. 이끼는 기본적으로 햇빛이 들지 않는 습한 곳에서 자란다. '칙칙하다'라는 느낌, 그리고 음습하다는 느낌이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또한 이끼는 번식력이 좋다. 욕망을 배후로 둔 관습의 정치화와 종교화가 우리의 일상을 어떻게 파고들지 이 이상 설명할 수 있는 제목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이끼>는 만화이자 영화이지만, 대한민국 곳곳에 음습하게 스며든 관습을 다루는 논픽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반드시 대한민국만의 이야기일까? 관습을 이용해 욕망을 채우는 사람들, 반대로 말해 욕망을 채우기 위해 관습을 정치화하고 종교화하는 사람들은 세계 어디를 가도 있다. 케냐 루오족 여성 또한 그로 인한 박해를 피해 대한민국 땅으로 왔다. <이끼>는 그렇듯 우리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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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희롱, 알프레드 히치콕의 맥거핀


서스펜스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은 영화 연출을 하면서 맥거핀 기법을 즐겨썼다. 맥거핀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마치 중요한 것처럼 위장해서 관객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일종의 트릭"


프랑스의 유명 영화감독 프랑수아 트뤼포는 알프레드 히치콕과 인터뷰를 가지면서 '맥거핀'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문답은 그의 인터뷰 모음집 <히치콕과의 대화>에도 잘 나와있다.



두 사람이 스코틀랜드행 열차를 타고 가다가 한 사람이 선반 위에서 어떤 물건을 발견한다.


A: 선반 위의 저것은 무엇입니까?

B: 저것은 맥거핀입니다.

A: 맥거핀이 뭡니까?

B: 스코틀랜드 고지대에 사는 사자를 잡기 위한 도구입니다.

A: 스코틀랜드 고지대에는 사자가 없는데요?

B: 아, 그러면 맥거핀은 아무 것도 아니군요.



이것 봐라? B는 A를 가지고 놀았다. 히치콕이 어떻게 맥거핀 기법을 영화에서 활용했는지는 그의 대표작 <싸이코>에 잘 나와있다.


회사 공금 4만 달러를 훔친 여주인공은 차를 타고 도주한다. 불안한 그녀의 심리를 파고들면서 오토바이를 탄 정복 경찰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가 차를 멈추면 정복 경찰도 오토바이를 멈추고 팔짱을 끼면서 여주인공을 바라본다. 여주인공이 차를 타고 움직이면 다시 정복 경찰도 오토바이를 타면서 그녀를 따라붙는다. 이 알듯모를듯한 추격전은 <싸이코>의 초반부의 핵심이다. 여주인공은 공금횡령 혐의로 체포됐을까? 천만에. 여주인공은 스스로 가장 안심하던 순간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람에게 끔찍한 일을 당한다. 히치콕은 "사람이 가장 안심하던 순간 느닷없이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의 공포"를 보여주기 위해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려는 충격요법의 연막장치로 맥거핀 기법을 활용한 것이다.



- <싸이코>는 관음증과 마더 콤플렉스 등 인간 내면의 음산한 본능을 다뤘다.


맥거핀은 비단 영화에만 활용되지는 않는다. 또한,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더라도 인생은 늘 맥거핀이 등장한다. 히치콕이 맥거핀을 강조했던 이유는 인생 자체가 맥거핀이라는 것. 그것을 위해 히치콕은 관객을 희롱하고 가지고 놀았다. 운명은 늘 인간을 가지고 논다. 그것도 꼭 비극을 통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그 유명한 경비행기 장면


푸슈킨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아니, 슬프거나 노여워하기 전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삶이 나를 속인다? 당장 벗어나고 싶은 생각부터 들 것이다. 히치콕은 그 본능을 파고든다. 대표작 중 하나인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를 비롯, 히치콕의 영화 속 주인공들 중 상당수가 누명을 쓴 사람인 이유일 것이다.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아주 유명한 장면은 경비행기가 주인공의 뒤를 쫓는 장면이다. 주인공은 갑작스레 살인 누명을 쓰면서 경찰의 추격 대상이 됐고, FBI까지 꼬여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실마리를 쥔 인물을 옥수수밭에서 만나야 하는데, 웬 경비행기가 꼬여들었다. 경비행기의 경계로부터 피하기 위해 주인공은 이리저리 계속 뛰지만 경비행기는 계속 주인공을 주시하며 날아든다.



-손이 안보일 정도로 뛰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의 케리 그랜트. 그 뒤를 쫓는 것은 농약살포용 경비행기. 우리의 인생이기도 하다.


이 경비행기 장면은 서스펜스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진수다.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과 긴박한 상황이 어우러져 영화사의 명장면으로 남았다. 더욱이 이 장면 속 비행기의 동선은 그 항로가 완벽하게 계산됐으며, 캘리포니아 주의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농장의 풍경과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이 장면은 이후 오우삼 감독이 할리우드에 진출해 벤 에플렉을 파트너로 <페이첵>이라는 영화를 찍을 때 비행기가 터널 속 지하철로 바뀌어 오마쥬된다. 경비행기가 주인공을 비웃듯이 헐레벌떡 피하기 위해 뛰어다니는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희롱할 때, 우리 스스로가 희롱당하는 것을 느낄지도 모른다. 상황으로부터의 희롱에 이은 하늘 위에 떠 있는 존재로부터의 알 수 없는 희롱까지. 운명은 역시 인간을 가지고 논다.



-<페이첵>의 한 장면


<새> 이유 없는 공격으로부터의 희롱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주인공을 이상하게 괴롭히는 매개체가 비행기인 것은 히치콕 개인의 성향과 연관성이 있다. 영화 <새>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 히치콕 개인의 성향이다. 히치콕은 '새'를 불길한 상징으로 자주 이용한다. 


<싸이코>에서 살인범 노먼 베이츠의 자택에 뚜렷하게 박제된 새가 관객을 노려보는가 하면, 앞서 이야기했듯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는 새를 형상화한 비행기가 나타나 주인공을 괴롭힌다. <새>에서는 아예 새가 무수히 많이 등장해 사람을 괴롭히고 세상을 뒤덮는다. 처음에는 한 두마리부터 시작했지만, 점점 수가 늘어나 세상은 온통 새의 천지가 된다.



- 새는 어느새 집안에 까지 들어와 사람을 공격했다.


이 영화 속 '새'는 형상화할 수 있는 매개체가 무척이나 많다. 접근하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은유되거나 비유될 수 있는 상징은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화면을 뒤덮고 사람들을 공격하는 새는 비극의 상징, 희롱의 상징이다. 역시나 운명은 이렇게 또다시 인간을 희롱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비극의 슬픔을 맛본다. 비극은 갑자기 찾아온다. 무엇이 됐든 비극은 사람을 정든 터에서 떠나게 만들며 이별을 맛보게 한다. <새>는 이렇게 난민 키워드로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된다. 히치콕이 맥거핀을 즐겨 쓰는 이유가 또다시 유추된다. <새>는 영화 자체가 거대한 맥거핀이다. 개인적 취향을 가미해 새를 공포와 공격으로 접근해 비중있게 접근했지만, 실상 히치콕은 영화를 희롱하고 사람을 희롱하기 위해 맥거핀을 즐겨쓴다. 새가 두려운가? 인간이 두려운가? 새는 왜 인간을 공격할까? 혹시 인간이 빌미를 제공한 것은 아닐까? 


히치콕의 진수, 프랑수아 트뤼포의 <히치콕과의 대화>


<싸이코>처럼 작심하고 음산한 분위기의 영화를 만든 경우를 제외하면, 어쨌든 히치콕 영화도 해피엔딩 공식을 활용한다. 다만 그 엔딩에 이르기까지 도무지 전개가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으며, 어떤 기법으로 우리를 희롱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히치콕이 연출한 영화 특유의 힘이 존재하는 것이다.


히치콕이 보여주는 맥거핀 기법과 희롱은 운명의 장난을 이야기하는 것일 듯하다. 운명이 장난치면 인간은 어떤 미래를 맛볼지 모른다. 그중 대부분은 비극을 맛본다. 인간은 그렇게 약한 존재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의지라는 것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의지, 포기할 수 없는 상황들, 그속에서 인간은 앞으로 나아간다. 희롱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우물 안 인간 위에 히치콕이 비죽 웃으며 바라보는 것 같은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히치콕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책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프랑스의 새로운 영화 운동 '누벨 바그'의 기수 프랑수아 트뤼포가 히치콕과 장시간 대담을 나눈 뒤 책으로 정리한 <히치콕과의 대화>다. 히치콕이 바라보는 서스펜스의 세계가 잘 제시돼 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가 영화를 보고 난 그 순간에는 반전과 클라이맥스를 위한 재미로 작용할지도 몰라도, 결국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는 것. 거장의 시선과 손길을 통해 각자 주어진 환경에서 발버둥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이 합축돼 있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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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간지계(離間之計)


잠시 <삼국지연의>를 기억해보자. 적벽에서 유비와 손권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돌아온 조조에게 또다른 우환거리가 있었다면 서북방을 차지하고 있던 마초와 한수의 기병군단이었다. 마초와 한수는 힘을 합쳐 조조군을 공격한다. 한수는 마초의 아버지 마등과 의형제를 맺은 사이로, 마초가 '작은아버지'라고 부르던 사람이다. 마등은 조조에 의해 비참하게 죽었다. 마초와 한수는 원수를 갚자며 굳게 뭉쳐 있었고, 조조는 그들의 공격에 의해 위기에 처해 있었다.


결론은 마초와 한수를 갈라놓아야 한다는 것. 골머리를 앓는 조조 앞에 모사 가후가 나타난다. 가후는 기 막힌 계략을 들고 왔다. 한수에게 편지 한 통만 보내면 된다는 것이다. 편지의 내용은 조조가 한수에게 평범한 안부를 묻는 것이었지만, 중요한 단어가 나와야 할 부분은 모두 먹칠을 해버린 것이다.


편지를 받고 영문을 알 수 없다며 갸우뚱하던 한수 앞에 마초가 나타난다. 한창 전투를 치루는 상황에서 조조가 한수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자체만으로도 꺼림칙해하던 마초는 그 편지를 보자마자 폭발한다. 먹칠이 된 부분을 보면서 한수가 내통이라도 한다고 확신한 채 한수를 다그친 것이다. 한수 역시 '조카'의 버르장머리 없는 대응에 화를 참지 못했다. 결국 둘은 갈라섰다. 갈라선 정도가 아니라 서로 죽이겠답시고 장수들끼리 칼부림을 했다. 한수는 마초의 칼에 한쪽 팔을 잃었고, 여러 부하장수들을 잃었다. 한수는 조조에게 투항했고, 마초는 이끌던 군대를 모두 잃고 남쪽으로 도망친다. 그러다가 운명적으로 만나 주군으로 모시게 된 사람이 바로 유비다.



- 실타래처럼 꼬인 상황과 그로부터 어긋난 감정은 결국 살육을 유발한다.


이 상황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보자. 조조는 당시 중국 대륙의 최강자였다. 마초와 한수는 서로 힘을 합쳐 대응했기 때문에, 조조에게 공격적으로 나설 수 있었다. 가후는 그들이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간 본연의 의심을 자극한 기 막힌 계략을 제시한 것이다. 강자가 약자를 밟을 때 대처하는 기본적인 방법이 여기에 나온다. 요지는 바로 '뭉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조금 더 거시적으로 봤을 때, 중국 대륙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조조의 위나라에 유비의 촉한과 손권의 오나라가 그래도 수십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둘의 동맹을 오랫동안 유지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 후투와 투치


르완다를 식민통치했던 벨기에도 비슷한 수법을 썼다. 조조와 가후가 마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부담스러운 한수를 선택해 계략을 구사했듯이, 벨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르완다 전체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후투족과 10%의 투치족 중 투치족을 우대하면서 후투족을 거칠게 탄압했던 것이다. 투치족은 15세기 무렵 르완다에 정착했던 전사 집단이었고, 벨기에에 의해 선택돼 귀족집단으로 군림해 후투족을 통치한다. 하지만 세상은 곧 달라졌다. 벨기에가 르완다를 떠나면서 억눌려 있던 후투족이 행동을 게시한다. 투치족 출신 르완다 국왕이 쫓겨나고 수많은 투치족이 죽는다. 


투치족이라고 가만히 있을까? 이웃나라 부룬디에 살던 투치족들이 르완다를 공격했고, 그를 빌미로 다시 한번 후투족이 투치족을 학살한다. 이후 투치족의 쿠데타와 후투족의 역쿠데타가 반복됐으며, 후투족 출신 대통령이 탄 비행기가 추락해 대통령이 사망함으로써, 강경 성향의 후투족 민병대 인터함웨는 투치족을 대량학살한다. 영화 <호텔 르완다>는 인터함웨에 의한 투치족 대량학살 상황을 배경으로 제작됐다.


독일에서 벨기에로, 르완다는 아프리카 내 약소국으로서 유럽 강국의 식민지배를 받는 전형적인 역사를 가졌다. 그들 특유의 식민지배 노하우는 르완다에서도 여전히 큰 후유증을 갖는 상황으로까지 가게끔 기 막히게 발휘된다. 르완다 내 후투족과 투치족은 모두 독립의 기쁨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눌 여지도 없이 교묘한 분열조장정책으로 인한 감정다툼을 서로간의 대량학살로 표출한 것이다. 요지는 바로 감정이다. 후투족의 가슴 속에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특혜를 부당하게 누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가 자리잡고 있었다. 실제로 투치족은 벨기에에 협력한 댓가로 르완다 내 부를 독점하고 있었다.



- 와킨 피닉스가 서구 출신 언론인으로 출연한다. 그의 카메라에는 미치광이 후투족의 학살극이 끊임없이 담긴다.


후투족이 바라보는 투치족이란, 일제에 협력함으로써 민중을 핍박하던 친일파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비슷했을 것이다. 투치족이 바라보는 후투족도 그와 크게 다르진 않아서 "너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는 대상" 이상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돌아보기도 전에 뒤덮여버린 증오와 미움의 감정은 그렇듯 생존욕구까지 겹쳐 더 멀리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치'를 알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삼국지연의> 에피소드를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제갈량은 손권의 오나라와의 동맹 유지를 중요시했다. 촉한이 오나라에 원한이 없던 것은 아니다. 영토전쟁 와중에 유비의 의형제 관우가 비참하게 죽었고, 원수를 갚기 위해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공격하던 유비는 오나라의 육손이 주도한 불공격에 수많은 군대를 잃고 실의에 빠져 죽었다. 하지만 현실적 상황에서 더 큰 적이 누구인지, 진짜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한 제갈량의 냉정한 고민의 결과가 오나라와의 동맹 유지였던 것이다. 


#3. 일방적으로 악마로 묘사된 후투족


<호텔 르완다>는 오스카 쉰들러와 존 라베의 뒤를 잇는 휴머니스트 폴 루세사바기나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후투족에 의한 투치족 대량학살 상황에서 호텔로 피신하러 온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을 지키기 위한 1급 호텔 지배인 폴 루세사바기나의 힘겨운 싸움을 그려나간다. 그러나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다. 후투족의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는 것이다.


폴 루세사바기나, 1급호텔의 지배인으로서 '잘 나가는' 후투족이다. 하지만 투치족 아내를 두고 있으며, 매너와 효율을 중시하는 서구인의 성향이 몸에 배어 있지만, 한편으로 부패한 정국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고급 승용차를 뇌물로 바칠 줄도 아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필요할 때는 프랑스 대통령과도 선이 닿는 호텔 사장과 직통으로 전화를 하며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고위급'이기도 하다. 투치족과 온건 후투족을 보호하기 위해 지배인으로서의 직권으로 호텔을 개방하고 고급 양주와 돈을 뇌물로 바쳐가며 사력을 다 한다.



- 영화 속 후투족 정규군과 민병대는 주인공만 보면 뇌물을 달라고 아우성친다.


사람을 구하기 위한 그의 노력에 돌을 던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냉정하게 지켜봐야 할 것은 거시적인 상황들이다. 후투족은 왜 투치족을 죽이려고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철저하게 배제돼 있다. 후투족 라디오 방송의 살벌한 학살 경고로 영화를 시작될 때부터 <호텔 르완다>는 최소한의 중립성조차 배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영화 속 후투족들은 피에 굶주린 미치광이들이며, 그런 주제에 틈만 나면 받아챙기거나 빼앗기에 혈안이 되는 등 뇌물과 절도를 몹시 좋아하기도 한다. 그에 못지 않게 후투족을 학살했던 투치족에 관한 어두운 이야기는 어디에도 제시돼 있지 않다. 미치광이 후투족에 의해 위기에 몰린 불쌍한 사람들일 뿐이며, 보다 서구화됐기에 후투족에 비해 '보다 교양있는' 사람들이다. 


이유 없는 결과는 없다. 하물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그것도 수십만·수백만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다. 과연 이유가 아무것도 없을까? 그 수많은 후투족들이 그저 미개하고 미쳐버린 아프리카인이기에 함부로 살육을 벌인 것일까? 후투족의 공격이 옳다는 이야기는 결코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최소한의 중립성과 객관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4. 휴머니즘, 그 야누스의 얼굴


인간에 대한 사랑과 감동, 참 좋은 이야기들이다. 날로 험악해지는 세상에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밝음이 있다면 어두움이 있는 것. 객관적으로, 그리고 거시적으로 본질을 직시해야 할 상황에서 휴머니즘은 넓은 시야를 막는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호텔 르완다>가 제시하는 휴머니즘이 딱 그렇다. 수백만명의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에서 소위 강대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무책임한 대응과 속셈은 따로 둔 채 앵무새처럼 떠드는 '인도적 개입의 필요성', 그리고 참상이 벌어지기까지의 역사와 과정 등 모든 것이 실타래처럼 얽혀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음에도 <호텔 르완다>는 이 모든 것을 외면한 채 객관성과 중립성을 잃고 벨기에가 르완다를 악랄하게 통치했던 그 수법 그대로 현상을 바라보고 있다. 



- 이 감동적인 장면 속 진짜 다뤄야 할 이야기는 쏙 빠졌다. 미치광이가 된 것이 사실이라고 친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는지 짚어보는 것도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서구화된 투치족을 학살하는 미개하고 야만적인 후투족으로부터 일찍부터 후투족의 야만을 참회하고 돌아선 후투족 남자의 휴머니즘, 이것이 <호텔 르완다>가 전하는 이야기다. 이런 휴머니즘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휴머니즘 역시 객관성과 모든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돼야 빛을 발할 수 있다. 휴머니즘의 직접적 제시만이 휴머니즘 전달의 유일한 방법인 것도 아니다. 역으로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관객에게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해준 <쉰들러 리스트>가 빛이 났던 이유이기도 하다. <호텔 르완다>의 감독은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공동각본을 맡기도 했던 테리 조지 감독이다.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함께 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길 바란다. 1970년대의 암울했던 아일랜드 정국, 억울한 누명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웠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던 그때 그 시절의 테리 조지 감독은 어디로 갔을까? <호텔 르완다>의 뒷맛은 그래서 더욱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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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


조국에 쿠데타가 일어나 일시적으로 유령국가가 됐고 해당 국가 출신 입국자도 졸지에 무국적자가 돼 공항에서 지낸다는 줄거리의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는 실화다.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18년(1988년 8월~2006년 7월)을 지낸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의 이야기다. 그의 기구한 인생유전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1. 영국 브래포드 대학에서 3년간 유학생활하며 팔레비 정권에 저항

2. 1975년에 유학비용 장만을 위해 테헤란 공항을 통해 입국하려다가 붙잡혀 감옥에 투옥된 후 3~4개월 뒤 추방 (여기까지는 그의 증언이다)

3. 서독, 네덜란드, 프랑스,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영국 등에 망명 신청했으나 거절

4. 1980년 10월 7일에 UNHCR에서 망명 요청 받아들여져 1986년까지 벨기에에 거주

5. 영국으로 가던 중 경유지였던 프랑스 파리 샤를 드골 공항행 RER 기차역에서 여권 포함 소지품 도난

6. 런던 히드로 공항 간신히 도착했으나 신분 증명 서류 없어서 샤를 드골 공항에 추방

7. 샤를 드골 공항 내 무국적자 체류지역에서 지내게 됨

8. 1992년에 일시 망명자 자격으로 프랑스 입국이 허용됐지만, 프랑스 법원에 의해 다시 공항 여객터미널 체류지역으로 가게 됨

9. 벨기에 정부에 망명 신분회복 요청했으나, "망명자가 자국을 떠나면 재입국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벨기에 정부 방침에 따라 거절당함.

10. 1999년 프랑스 정부가 임시 망명여권 부여 후 프랑스 거주 허용. 하지만 영국으로 가고 싶을 뿐이라며 제의 거절. 스스로 이란 사람임을 부인하기 시작.

11. 2006년 7월에 병원 입원 후 현재 프랑스 파리 내 자선단체 제공 쉼터에서 거주중



영화 <터미널>은 공식적으로 그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모티브만 빌려왔을 뿐, 스스로 난민임을 주장했던 메르한과는 달리 <터미널>의 주인공 빅토르 나보르스키(톰 행크스)는 단순입국자였다. 하지만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르한으로부터 공식적으로 25만 달러에 판권을 구입해 모티브를 설정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샤를 드골 공항에서의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Mehran Karimi Nasseri)


공항 생활에 적응한 그는 공항을 자신의 거처처럼 생각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주변을 청소했다. 공항 직원들도 그에게 편의를 제공해줬다. 대부분의 시간을 독서로 보낸 그는 일기를 쓰면서 자서전을 썼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판매하는 공항 내 서점에서 그를 알아본 사람들에게 싸인을 요청받기도 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비운의 망명객으로서 불운까지 꼬였지만 그 불운마저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면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이야기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았다.


#2. 빅터 나보르스키


앞서 이야기했듯이, 빅터 나보르스키는 동유럽의 가상국가 크로코지아 출신으로서, 조국에 갑작스런 내전이 일어나 유령국가가 되면서 덩달아 무국적자가 돼 공항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조국의 불안한 미래와 두고 온 가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울먹이던 그는 이내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여 공항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밥을 사먹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공항 내 카트 정리를 자처해 승객들이 미처 챙겨가지 않은 카트 환급금을 챙겨 점심식사를 하는가 하면, 아예 공항 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공항 면세점에 이력서를 내기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자신의 그림 솜씨를 발견한 공사 현장 감독에 의해 취직도 하는가 하면, 미모의 스튜어디스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 공항에서의 삶을 적응하기 시작하는 빅터 나보르스키


스티븐 스필버그는 <터미널>을 10대 천재사기꾼과 그를 쫓는 FBI요원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구도로 이끌어나간다. 보통 사람과는 뭔가 다른 주인공을 내세우면서, 그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사람이 주인공을 내쫓거나 혹은 붙잡기 위해 갖은 방법을 생각해내지만 주인공에게 오히려 말려든다는 식의 이야기다. 톰 행크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 FBI 요원으로 출연해 '당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터미널>에서는   정반대의 역할을 맡았다. 지능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려는 사람을 순박함으로써 역으로 골탕먹이는 전형성이 배어 있다.


휴머니즘을 중시하는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것을 전제할 때, <터미널>에서는 그 휴머니즘을 위해 다소 무리를 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우연과 우연, 또 우연이 이어지고, 개연성이 다소 부족한 설정들을 끌어들이면서 훈훈함이라는 오로지 하나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달린 것이다. 물론, 공항이라는 '용광로'를 배경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저마다 어떤 사연을 안고 공항을 오고 나가는지를 그린 장면도 있다. 하지만 그 장면에 대한 비중이 지나치게 약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있다. 그조차도 빅터가 공항에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기 위한 보조적 장면이었다.


빅터가 뉴욕에 온 이유는 중요하지만 소박했다. 이것은 양날의 칼이다. 무국적자와 입국거부자의 실제 현실을 흐리는 억지 설정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국가와 사회의 상황에 따라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메시지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도 생각보다 많은 수의 입국거부자가 있다. 다음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2009년~2012년 6월까지의 입국거부자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에 대한 결과다.


#3. 입국거부자 현황


다음은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에 2009년~2012년 6월까지의 입국거부자 현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것에 대한 결과다.


 2009년도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1,386

 133

 155

 22

 1,076

 몽 골

 495

 41

 26

 28

 400

 필리핀

 301

 19

 44

 9

 229

 타 이

 2,852

 256

 600

 1

 1,995

 베트남

 250

 19

 36

 8

 187

 러시아(연방)

 187

 8

 11

 16

 152

 기 타

 1940

 155

 351

 33

 1,401

 합 계

 7,411

 631

 1,223

 117

 5,440

                                                                                                 

2010년도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3,415

 394

 392

 38

 2,591

 몽 골

 459

 45

 44

 22

 348

 필리핀

 482

 29

 78

 14

 361

 타 이

 4,747

 306

 548

 2

 3,891

 베트남

 333

 22

 77

 4

 230

 러시아(연방)

 249

 6

 4

 16

 223

 기 타

 1,775

 120

 268

 26

 1,361

 합 계

 11,460

 922

 1,411

 122

 9,005

                                                                                                 


2011년도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3,743

 203

 528

 35

 2,977

 몽 골

 404

 46

 65

 21

 272

 필리핀

 328

 30

 53

 11

 234

 타 이

 4,085

 184

 359

 0

 3,812

 베트남

 276

 23

 87

 6

 160

 러시아(연방)

 270

 6

 5

 11

 248

 기 타

 2,082

 146

 474

 24

 1,438

 합 계

 11,188

 638

 1,571

 108

 8,871

                                                                                                 

2012년 1~6월 입국거부자 현황


(단위 : 명)


 

 총계

 입국규제자

 위·변조

 사증미소지

 입국목적 불분명 등 사유

 중 국

 2,301

 71

 1,145

 45

 1,040

 몽 골

 347

 34

 103

 27

 183

 필리핀

 270

 8

 69

 14

 179

 타 이

 2,767

 48

 239

 0

 2,480

 베트남

 198

 5

 93

 5

 95

 러시아(연방)

 139

 1

 14

 14

 110

 기 타

 1,570

 87

 685

 39

 759

 합 계

 7,592

 254

 2,348

 144

 4,846

                                       

- 출처 : 인천공항출입국관리사무소 정보공개청구 결과


생각보다 많은 숫자다. 입국목적 불분명 사유자들이 늘상 많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몽골-필리핀-타이-베트남-러시아 연방 등은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들의 출신국가와는 비교적 거리가 있지만, '기타'에 포함된 수치도 만만치 않게 만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르한 카리미 나세리는 수년간 여러 나라에 난민신청을 했지만 불허됐고, UNHCR에서 간신히 난민으로 인정돼 벨기에에서 거주할 수 있었다. <터미널>의 빅터도 실상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에서 난민으로서의 요건을 객관적으로 심사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휴머니즘 코미디의 도구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았다. 영화 <터미널>의 '빅터'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어필 김종철 변호사님의 <터미널: 영화 이름 혹은 공항 난민신청자의 운명>을 보면 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터미널>에서 공항 출입국 검색 관리자 '프랭크'는 '빅터'가 난민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귀찮을 뿐이다. 난민협약을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영어에 익숙하지 못한 빅터를 쫓아내기 위해 난민신청서류라면서 엉뚱한 서류를 내밀어 빅터를 강제출국시킬 빌미를 만들고자 한다. 뿐만 아니라 몰래 빠져나갈 기회를 주겠다고 속이면서 CCTV를 움직여 그가 무단으로 공항 밖으로 나가는 순간을 포착하려고 함으로써, 역시나 강제출국시킬 빌미를 만들고자 한다. 


과연 이것이 영화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입국이 거부된 기타 국적의 1,570명 중 특히 입국목적 불분명 사유자 759명과 위명 여권 소유자 685명 중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단 1명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까? 휴머니즘을 위한 억지 설정과 우연이 지나치게 많았다는 아쉬움이 있었던 <터미널>이지만, '빅터'를 쫓아내기 위해 갖은 수를 내는 '프랭크'만큼은 나름의 현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4. 메르한의 스트레스


199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임시 망명여권을 부여받고 거주 자격을 얻었지만, 메르한은 이를 받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영국 귀족 알프레드 경이라면서 정신적인 문제가 찾아왔다. <터미널>의 빅터는 역경 속에서도 떼 묻지 않은 순수함을 유지하며 해피엔딩을 이끌었지만, 영화는 영화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메르한이 18년 동안의 공항에서의 삶을 마치고 간 곳은 바로 병원이었다. 독서를 하고 자서전을 쓰고 공항에서의 일상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람인 이상 어떻게 스트레스가 없었을까? 말 없이 견뎌냈던 스트레스들이 결국 쌓이고 쌓여 건강상의 문제까지 일으킨 것이다. 


단지 재밌어하고 호기심을 갖기만 했을 뿐 이 부분에 대해서 지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 대한 판권을 사들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제작사 드림웍스가 <터미널>과 메르한의 관련성에 대해 공식적인 제기를 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 빅터와 친구가 된 공항의 모든 근무자들이 그를 환송한다. 영화는 영화인 이유다.


영화는 영화고, 현실은 현실이다. 영화는 해피엔딩이었지만, 현실은 현실로 흘러간다. 입국거부자 속에서 절박한 이유로 난민신청을 위해 입국했던 사람이 과연 하나도 없을까 라는 의문과, 더불어 <터미널>의 이면에서 진실로 자리잡고 있었던 메르한의 스트레스를 짚어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현실은 현실인 이유다. 


영화를 살아가는 것은 캐릭터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은 감정이 있고 때로는 절박할 수 있으며 극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애써 참아야만 하는 때가 있다. <터미널>에서 짚어내야 할 것은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 현실을 살아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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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끔찍한 미래, 그 이후


지극히 많은 이유들로 인해 지구의 미래는 가끔씩 암담하게 예측된다. 각종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상의 이상변화, 복제인간과 로봇의 탄생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문제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이야기들 등, 영화에서는 꽤나 오래 전부터 제기된 고전들이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은 < A.I > 제작을 자신의 염원으로 여겼다. 어느 복제인간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지능공학의 미래 예시"라는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한 파트너로 선택했던 사람이 바로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그것은 스탠리 큐브릭의 꿈이었다고 한다. "제작 스탠리 큐브릭,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하지만 스탠리 큐브릭은 시도를 해보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염원을 잘 알았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자신이 제작 겸 연출하기로 마음먹는다. 스탠리 큐브릭이 제시하고 싶어했던 "지능공학의 미래 예시"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발상했던 "과학과 휴머니티의 조심스러운 결합"은 그렇게 < A.I >를 꾸려나간다. 


마이클 베이의 <아일랜드>는 이렇듯 뭉클한 거장들의 꿈은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시운이 따랐다고 할까? <아일랜드> 개봉 당시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안고 격론을 벌이고 있었다. < A.I >와 <아일랜드>를 묶은 이유는 무엇일까? 복제인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지만 그 '서로 다른 방식'을 통해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베이, 두 감독의 평소 스타일이 철저하게 배어나오는 영화들이라 더욱 흥미롭다. 





복제인간의 태동 배경은 끔찍하다. 두 영화 모두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파괴를 복제인간의 태동 배경으로 제시한다. (물론 이 설정은 아일랜드의 이후 '반전'을 위한 하나의 양념으로 작용한다) 빙하의 해빙,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도시 파괴, 대규모 인명 피해 이후의 자원 부족 문제로 인한 인구 수 조절 등, 인구를 늘이지 않으면서도 노동력을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나온 것이 바로 '복제인간'의 존재였다.


두 영화는 여기서 주인공들의 존재에 대해 미세한 엇갈림을 나눈다. <아일랜드>는 유전자를 바탕으로 직접 인간을 복제해 사육하는 반면, < A.I >의 존재들은 로봇, 그것도 인공지능 로봇들이다. < A.I >는 야심차게 '감정이 있는 로봇'을 제시하면서 인공지능 로봇 데이비드(할리 조엘 오스먼트)를 전면에 등장시킨다.


#2. 조작된 현실과 끔찍한 진실, 앎으로부터 비롯되는 고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 중 하나는 내가 진실이라고 믿어왔던 것이 사실은 조작된 거짓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알았던 가치와 현실이 무너지고, 내가 소중하게 여겨왔던 것이 무너지고, 심지어 그것이 내 목숨과 그에 버금가는 가치들을 없애려고 노력할 때, 인생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느낄 것이다. 아니, 그것은 인생이 무너지는 것이다. 


두 영화는 끔찍한 비극을 제시한다. < A.I >의 데이비드는 여태껏 엄마라고 여겼던 사람으로부터 버림받는다. 데이비드는 사실 불치병에 걸린 아들을 대신할 아들이 필요했던 집에 '아들의 대용품'으로 '구입'됐을 뿐이었다. 하지만 치료약이 개발되면서 아들은 다시 집으로 돌아왔고, 데이비드의 이용가치는 거기까지였다. 데이비드는 울면서 하소연한다. 


"내가 인간이 되면 사랑해 줄 건가요?"

"인간이 아니어서 죄송해요. 허락하시면 인간이 될께요."





데이비드는 인간이 아니면서 인간으로 자랐다가 인간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이용가치가 있어서 인간으로 사육됐다가, 진짜 인간이 돌아오면서 울타리로부터 쫓겨난 것이다. 그들은 데이비드가 인간과 로봇을 구분지을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로봇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데이비드는 그렇게 로봇도, 인간도 아닌 존재였다. 감정을 주고 받을 수 있는만큼 그는 엄연한 인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로봇이었다. 울타리로부터 내쫓긴 데이비드는 그렇게 혼자가 됐다.


<아일랜드>의 '링컨 6-에코(이완 맥그리거)'와 '조던2-델타(스칼렛 요한슨)'는 스스로 살아남은 지구인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의 생태 재앙으로 인류의 일부만 살아남았고, 의료와 식사, 잠자리에 이르기까지 빈틈없는 관리를 받고 있다. 빈틈없는 관리의 이유는, 그들 중 선택된 누군가가 희망의 땅 '아일랜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일랜드'는 죽음의 공간이었다. 그들은 복제인간이었다. 같은 모습을 한 주인이 따로 있었고, 그들이 받고 있는 것은 관리가 아니고 '사육'이었다. 체계가 잡힌 '사육'을 통해 건강한 신체를 만들어나가면서 결국은 주인에게 장기를 제공하고 죽음을 맞이할 운명에 처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역시 사람이었지만, 사람이 아닌 존재였다. 그들이 꿈꾸던 '아일랜드'는 희망의 땅이 아니라, 주인에게 장기를 제공하기 위해 죽으러 가는 지옥이었다. 믿음이 무너졌을 때, 그리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을 때, 인생은 궁지에 몰린다. 궁지 끝에 그들이 한 선택은 '탈출'이었다. 거짓된 유토피아를 기다리던 통제된 삶에서 진실을 찾으러 나선 것이다. 


#3.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


이제 남은 것은 진실을 찾는 것이다. 현대판 피노키오 데이비드는 진실한 엄마의 사랑이 필요했고, 링컨과 조던은 자기들이 어디에서 비롯된 사람이었고, 어떻게 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탈출을 선택한 그 순간, 인간 복제 업체를 비롯 그들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들이 걸어나간 세상은 너무도 낯설고 무서운 곳이었다. 


데이비드와 링컨-조던, 그들은 연출자의 성향에 맞게 다른 여정을 선택한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자 모험담이라는 공통점은 있다. 데이비드는 마치 피노키오처럼 '푸른 요정'에 대한 꿈을 꾸며 절망 속에서도 꿈과 희망에 대한 의지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하지만 인종갈등처럼 로봇을 혐오하는 인간의 공격으로 데이비드는 끊임없이 위험에 처한다. 링컨과 조던이 찾아가는 여정 또한 그야말로 죽음의 위협 투성이다. 온갖 무기와 총성이 난무하는 가운데 덕분에 부서진 자동차들이 몇 대인지 세기 어려울 정도로 많을 것이다. 꿈을 찾아가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위험의 연속이었다.




진실을 찾아간다는 큰 공통점은 있더라도 저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찾아가는 길과 맞이할 수 있는 위험은 각각 다를 것이다. 인간의 삶을,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처할 수 있는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도 각각 다를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같은 운명을 맞이했다. 쫓기고 있으며, 진실을 찾기 위해 위험을 마다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개인의 힘으로 큰 힘을 가진 집단에 저항해 삶을 지키고 꿈을 찾아가는 그 과정 또한 각각 로봇과 인조인간이라는 특별함만 있을 뿐, 우리 모두 처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닐까?


오로지 그 자신 밖에 없기 때문에 그들은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도울 수 없다. 그들 스스로를 돕는 것은 오로지 삶에 대한 열망과 따뜻한 사랑에 대한 갈구, 그것 뿐이다. 하지만 그 작은 힘이 때로는 큰 기적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 기적을 행운이라고 한다. 그 기적마저 없다면 무슨 희망으로 삶을 살아갈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행운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자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사랑을 찾기 위해, 혹은 스스로의 존재를 찾기 위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길을 떠나고 싸우는 그 순간, 행운의 여신이 짓는 미소는 그래도 조금은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을까?


#4. 피노키오의 꿈


< A.I >의 '데이비드'가 엄마의 사랑을 찾아가는 여정은 피노키오의 그것과 비슷하다. 피노키오는 요정을 만나 감동시킴으로써 사람이 된다. 자신을 만들어준 할아버지와 그럼으로써 가족이 될 수 있었다. 희망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고립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가족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꿈을 이루기까지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힘을 빌려왔던 것이다. < A.I >의 데이비드도 그랬다. 데이비드에게 주어진 기다림의 시간은 무려 2,000년이었다.


매미는 7년을 땅 속에서 기다리다가 1주일 동안 나무에서 소리높여 목청을 내다가 죽는다. 한 순간의 외침을 위해 너무나도 긴 시간을 참아야 하는 것이다. 매미의 삶은 이토록 처절한 시간의 이어짐이었다. 데이비드도 마찬가지였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동화의 틀을 빌렸지만, 한편으로는 그토록 잔인한 현실을 은유한 것이기도 하다.


비현실적인 환상과 오랜 기다림, 하지만 그조차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언젠가는"이라는 말로 시작되는 희망에 대한 염원일 것이다. 할리 조엘 오스먼트의 서글픈 외침도 그 "언젠가는"에 대한 염원을 느낄 수 있기에 울림이 강하다. 희망과 미련은 종이 한장 차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미련으로 느껴질지라도 당사자에게는 간절한 희망일 수도 있는 법. 그 간절한 희망은 그에게 때때로 삶의 원동력이 되곤 한다. 그것이 바로 피노키오의 꿈이었다.


"내가 인간이 되면 사랑해 줄 건가요?"

"인간이 아니어서 죄송해요. 허락하시면 인간이 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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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로사와 아키라와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 주인공들은 늘 고뇌한다. 뭔가 독특한 결함을 가진 주인공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고민하며 때로는 투쟁하다가 결국 그 고뇌 때문에 자멸한다. 


대표작 <햄릿>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대결구도는 대체로 개인과 그를 둘러싼 환경의 대립이다. 환경으로부터 비롯된 운명에 대해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고뇌한다. 어머니와 작은아버지의 재혼과 아버지의 망령이 부탁한 작은아버지를 향한 복수 등, 환경은 햄릿으로 하여금 오로지 작은아버지를 향한 복수만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그리하여 햄릿은 뜻을 이루려 하다가 파멸했다. 


셰익스피어의 이런 세계관을 독특하게 받아들인 영화감독이 바로 구로사와 아키라였다. 집단주의가 강한 일본 사회에서 구로사와 아키라는 집단과 개인을 대비시켜 개인을 부각시키는 내용의 영화를 주로 연출했다. 


좀도둑 출신의 그림자무사가 점차 영주 다케다 신겐에 동화되는 과정을 그린 <카게무샤>, 산적의 횡포로부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농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7인의 사무라이> 등이 대표적이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에서 주로 엿보였던 대결구도에 휴머니즘을 입힌 구로사와 아키라 특유의 변주곡들이다.


그런 이유로, 오즈 야스지로 등의 동시대 활동했던 일본의 거장들에 비해 일본에서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 명성은 누렸지만 말년에는 상대적으로 흥행을 보장받지 못하면서 투자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자살시도까지 했던 것이다. 


그조차도 일본 사회와는 다소 맞지 않는 서구식 휴머니즘을 선택한 그의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등 그의 제자를 자처한 할리우드의 거장들이 제작비를 지원해서 연출한 <카게무샤> 촬영 과정에서 같은 세트장을 이용해 몰래 또다른 영화 <란>을 연출하다가 제자들의 분노를 산 적도 있을 정도다. 그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해가는 웃지 못할 방식이었던 것 같다. 


#2. 시한부 암환자 공무원의 절망적인 일상



그런 의미에서 <이키루>(1952)를 주목할 만 하다. 이키루(生きる)란 우리 말로 '살다'라는 의미다. 산다는 것,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키루>는 내용으로 봤을 때는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시한부 말기 암에 걸린 만년 과장 공무원 와타나베의 지루한 일상이 이어진다. 와타나베의 주변에는 자신의 병에 대해 툭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들놈은 며느리의 말만 듣고 아버지는 뒷전에 둔지 오래였으며, 부하직원에게 있어 자신은 서류결제 도장 찍어주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연기자에게 있어 최고의 연기는 강렬한 성격파 연기가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몸에 맞은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펼쳐나갈 수 있는 연기일 것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불특정다수의 관객에게 뭔가 돌아볼 수 있는 틈을 준다면 최고의 연기라고 할 만하다.


<이키루>가 남다른 이유 역시 그럴 것이다. <이키루>는 초반에 와타나베의 찌들어버린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집중한다. 하지만 의미가 있다. 그토록 평범하고도 지루한 장면들을 본다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딪쳐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외로움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단면을 누구라도 확인할 수 있다. 


매일매일 얼굴을 마주하지만 그가 시한부 암환자라는 사실은 조금도 알지도 못하고 관심조차 없는 부하직원들과 가족들, 그리하여 와타나베는 절망한다. 남은 인생이 3개월로 단축됐기에 느끼는 절망은 더욱 클 것이다.


#3. 삶의 행복이란 사소한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이키루>는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주변의 사소함으로부터 삶의 진짜 의미와 행복을 찾아본 적이 있냐고. 그저 관성대로 살아온 것은 아니냐고.


구로사와 아키라가 보여준 <이키루>의 와타나베는 특정한 개인이 아니다. 현대인의 무미건조한 일상이 스며든 전형적인 인물 유형이다. 굳이 그에게 '시한부 3개월'이라는 끔찍한 조건을 부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제공하려 함일 것이다. 소설 <아버지>도 그랬다. 췌장암 말기에 걸린 아버지와 가족의 눈물겨운 이별을 통해 아버지의 의미, 가족의 의미를 새삼스레 찾아가는 과정을 부각시켰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던진 터닝 포인트란 "사소함으로부터의 행복"이다. 아무 가치 없어보이는 개펄이 우리에게는 생명의 젖줄이듯이, 또한 쌀알 하나를 틔우기 위해 많은 정성이 들어가 있듯이, 너무 사소해서 쉽게 지나치기 쉬운 것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 것이다. 


와타나베는 죽기 전 자신만의 표식을 남기고자 마음먹는다. 죽기 전, 자신의 삶이 가치 있었다는 증거를 남기고자 한 것이다. 버려진 땅에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민원서류를 발견한 와타나베는 눈이 번쩍 뜨인다. 


'공무원 와타나베'였다면 평소처럼 도장을 찍고 휙 내던졌을 서류였지만, '시한부 암환자 와타나베'는 "내가 세상에 잠시 살았다 간 이유"가 될지도 모를 서류였기 때문이다. 놀이터를 만들기 위해 와타나베는 "이해가 안간다"는 주변의 반응을 뒤로 한 채 열정을 바쳐 일한다. 뻔하디 뻔한 정책 추진과정과 책임미루기 등 각종 구태들조차 구로사와 아키라가 부여한 조건과 터닝 포인트로 인해 알듯 모를듯한 눈물겨움이 배어든다.





#4. 집단의 힘, 개인을 짓밟다


<이키루>의 DVD 겉표지에는 눈 오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는 와타나베가 그려져 있다. 이 포스터에 모든 영화의 내용이 담겨 있다. 때때로 집단은 개인의 영광을 빼앗아간다. 영광 뿐만이 아니라 눈물어린 노력도 빼앗아간다. 집단의 폭력 속에서 개인은 아무도 모르는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거나 씁쓸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받아들인 셰익스피어식 세계관의 흔적은 <이키루>의 엔딩에서 엿볼 수 있다. 차이가 있다면, 개인이 운명이나 거대한 상황과 싸우다가 실패하거나 외면당했을 때, 파멸만이 그 결말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와타나베는 달관한다. 조용히 눈 오는 놀이터에서 그네를 탄다. 그러나 슬프다. 직접적인 이야기보다 더욱 슬프며 씁쓸하다. 바로 이것이 구로사와 아키라가 말년에 일본사회로부터 간접적인 거부를 당한 이유다.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며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일본사회와는 다른 풍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구로사와 아키라는 애프터서비스 또한 잊지 않는다. <이키루>는 와타나베의 장례식 시퀀스에 무려 40분 넘게 할애한다.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와타나베의 정열과 마지막 노력이 집단으로부터 어떻게 난도질당하고 무시당하는지 그 속에도 자세히 스며들어 있다. 한 사람이 그렇듯 살다가 갔지만, 아무도 모르게 정열을 바쳐 일을 하고 소박한 결과라도 많은 사람들이 웃을 수 있게끔 노력하다가 갔음을 돌아보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결국 집단으로부터 이렇듯 무시당하는 힘 없는 개인에 불과한 것일까? 그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면 구로사와 아키라는 단순한 냉소주의자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래도 서로가 서로를 알아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구로사와 아키라가 즐겨 활용하는 암시의 기법은 우리에게 암시 그 이상의 의미를 안겨준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나? 서로가 서로를 조금이라도 돌아본 적은 있는가? 집단이 가하는 유무형의 폭력과 무시 속에서 우리는 조금이라도 뒤를 돌아보며 의미를 찾으려 한 적은 있는가? 와타나베가 쓸쓸히 그네를 타다가 죽어가는 장면은 그래서 눈물겹다. 소외된 이의 모습이지만, 한편으로 우리 모두의 모습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삶은 찰나의 것 소녀여, 빨리 사랑에 빠져라 

그대의 입술이 아직 붉은색으로 빛날 때 

그대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을 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삶은 찰나의 것 소녀여, 빨리 사랑에 빠져라 

그대의 머릿결이 아직 눈부시게 빛날 때 

사랑의 불꽃이 아직 다하지 않았을 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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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온 트로츠키

삶은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특히나 정적에게 쫓겨 먼 곳으로 떠난 이에게 있어 원칙이란 닿을 수 없는 저 먼곳에 있는 아득한 것이다. 레닌의 사망 이후 스탈린에게 쫓긴 트로츠키는 저 멀리 멕시코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멕시코의 따가운 햇살을 느끼며 트로츠키는 레닌의 얼굴을 떠올린다. 

"자네의 영구혁명론은 들어보면 말은 그럴듯해. 하지만 현재 소련 현실에는 가당치도 않아."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각오를 다졌다. 죽음을 예감한 시점에서도 그 각오는 변하지 않았다. "죽음은 신념을 지킬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며 독을 들이킨 소크라테스도 있었다. 확고한 신념만이 평생을 혁명가이자 사상가로 살아왔던 트로츠키에게는 유일한 생명줄이다.

확고한 신념을 돌아보니 정신이 더욱 맑아졌다. 인민의 적이라, 스탈린이 자신에게 붙여준 별명 아닌 별명을 되뇌이며 트로츠키는 쓴웃음을 지었다. 불쌍한 친구 같으니...

아내 나타샤도 벌써 일어난 모양이다. 마당을 질러와 창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따사로운 공기가 나를 감싼다. 햇발에 닿아 벽 아래로 빛나는 연초록 잔디밭과 눈부시게 푸른 하늘, 트로츠키의 눈 앞에 황홀경이 펼쳐졌다. 그렇다. 인생은 아름다웠다.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트로츠키는 새삼스레 되뇌었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

확고한 신념과 가슴 속에 품을 수 있는 희망이 있는 한, 어떤 가시밭길이 펼쳐진다고 할지라도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어 유언을 썼다.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


#2. 아버지와 아들

그저 사랑하는 아내와 하나뿐인 소중한 아들을 위해 살고 싶었던 한 남자가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하는 산뜻한 아침 출근길도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그렇듯 소박한 행복만이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그들을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 남자 '귀도'는 유태인이었다.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유태인은 죄 아닌 죄였다. 죽음의 길을 떠나야 했으며, 하나뿐인 아들 조슈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소박하게만 살아온 그들이었다. 그리고 티 없이 맑게 자라온 아들이었다. 귀도에게 있어 죽음보다 더욱 두려운 것은 조슈아의 맑은 꿈이 무너지는 것. 누구보다 소중한 아들 조슈아를 빼앗기는 것이었다. 죽음의 길로 향하면서 귀도는 조슈아를 위해 그렇게 되뇌었을 것이다.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보내기 위한 기차에 타면서, 절망과 공포 속에서 귀도는 평소보다 더욱 수다스럽게 아들의 귀에 속삭인다. 신나는 게임이 시작됐다고. 제일 먼저 1,000점을 얻는 사람이 진짜 탱크를 선물로 받게 된다고. 조슈아는 아빠의 말을 믿었다. 

부모에게 나올 수 있는 힘이란 무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 스스로도 사람인 이상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지만, 하나뿐인 희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힘이든 낼 수 있는 것 같다. 아들은 죽음과 절망의 공포를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무엇보다 아들도 소중한 삶을 잃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할 수 밖에. 

귀도는 평소보다 과장된 행동으로, 평소보다 더 떠들썩한 말과 웃음소리로 아들을 안심시킨다. <인생은 아름다워> 속 코믹은 그래서 더욱 서글프다. 그것은 단순한 코믹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들을 지키기 위한 한 남자의 사투였다.



#3. 로베르토 베니니, 코미디의 본질을 살리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영화적 소재로 다루려고 할 때 늘 벽에 부딪쳤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쉰들러 리스트>를 연출할 때 역시 그랬다. 투자자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것이다.

워낙 비극적인 소재였기 때문에 현실적인 흥행이 보장되지 않기도 했지만, 스필버그가 한사코 흑백영화를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스필버그답지 않은 차가운 시선은 관객에게 있어 비극을 더욱 비극으로 부각시키는 역발상의 장치였고, 흑백화면 속에서 한 유태인 아이의 붉은 코트만이 유독 컬러로 부각되면서 스필버그가 굳이 흑백을 고집한 이유도 관객은 남김없이 흡수했다. <쉰들러 리스트>는 세계의 명작으로 역사에 남았다.

로베르토 베니니가 <인생은 아름다워>를 연출할 때도 우려는 있었다. 특히 그가 코미디 영화를 제작한다고 하면서 우려는 더욱 커졌다. 비극의 역사와 코미디가 어떻게 조화될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베르토 베니니는 코미디의 본질을 살렸다. 웃음과 슬픔을 함께 버무리면서, 웃음 속에서 더욱 큰 슬픔을 느끼게끔 했던 것이다. 

사람이란, 때로는 직접 말하기보다 '보여주는 것'을 통해서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아들을 지키기 위한 한 아버지의 과장된 몸짓과 목소리 하나하나가 처절한 싸움이라는 것을 누구라도 쉽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인생은 아름다워>를 향한 우려는 눈물어린 감동으로 살아났다.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코믹과 함께 호흡하며 애써 묻혀두었던 감정이 폭발하는 것을 느낀 분들이 많았을 것이다. 



#4.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가 왜 굳이 제목을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정했는지 짐작하실 것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소중한 희망이 있고, 그 희망을 가슴 속에 묻어두고 지켜나갈 때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이다. 트로츠키가 죽음을 앞에 두고 아침의 풍경과 아내의 뒷모습을 보며 인생은 아름답다고 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그래서 트로츠키의 유언을 제목으로 따왔다.

<인생은 아름다워>의 또다른 백미는 OST 메인 테마곡 <La vita e bella>이다. 첼로와 피아노음이 밝고 경쾌한 음을 연출하지만, 영화를 음미하며 이 곡을 듣는다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지는 것이 느껴진다. 영화의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지막, 아버지의 사투를 추억하는 아들의 회상이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었다."

희망이란 그렇듯 멀리멀리 퍼지는 것이다. 내가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한다면, 아이들은 또 자신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할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을 선물한다면, 그 누군가는 또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을 선물할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가 가슴아린 감동을 주면서도 한편으로 희망을 주는 이유일 것이다.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멀리멀리 퍼져 세상을 조금은 더 따뜻하게 만들어나간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그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소중한 희망과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인하여, 그리하여 인생은 여전히 아름답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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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그 시절 이야기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 어린이들은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놀며 우정을 쌓았다. "밥 먹으러 들어오라"던 엄마의 외침이 왜 그리도 싫었던지 모르겠던 그 시절이 기억나실 것 같다. 


컴퓨터와 인터넷이 없어서 심심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아니, 반대로 시간가는 줄 몰랐을 것 같다. 얼음땡, 숨바꼭질, 공기놀이, 고무줄놀이 등 놀거리가 무궁무진하게 많았다. 


모험을 좋아하는 친구였다면 으쓱한 골목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안잡혀보겠다고 살금살금 숨어다니기도 했고, 가까운 곳에 습지나 풀밭, 개천이 있던 곳이라면 송사리라도 잡아보겠다고 물을 흠뻑 묻히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 손에 잡힌 잠자리들은 결국 죽어버렸다는 것은 기억하시는지? 그들이 좋은 곳으로 갔기를 바랄 뿐이다.


그뿐이 아니다. 학교 어딘가에는 귀신이 있다는 이야기가 우리를 무섭게 했다. 가서는 안되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도 떠돌아다녔다. 


지금 돌아보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한 이야기들이지만, 그 시절에는 정말 무서웠다. 그렇게 우리는 추억을 먹어가며 나이를 채워왔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어른이 된다.


그러면서 우리가 알아가는 것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다. 사람을 만나 친해지고 결국 친구가 된다.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돌림당하는 사람이 있고, 따돌리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없기에 무의식적으로 한 행동 하나와 말 하나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때도 있다. 그 마음아픔이 깊은 상처가 됐다면 원한이 되기도 한다.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작만화 <20세기 소년>(결말 부분을 담은 후속편은 <21세기 소년>, 이하 통칭 <20세기 소년>) 은 우리의 소중한 추억을 '악몽'으로 엮어나간다. 만화 마니아라면 한번쯤 읽었을 <20세기 소년>이 우리에게는 어떤 전환점으로 와닿는 것일까?


#2. 악몽으로 실현된 어린 날의 '예언의 서'


어린이들은 엉뚱한 상상을 즐겨한다. 심형래와 김정식 등의 개그맨들이 출연한 과거 우리 어린이 영화들은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엉뚱한 상상을 고전동화와 연결시켜 영화로 풀어 이야기했다. 일본에서는 어린이의 엉뚱한 상상과 어른의 구미에 맞는 줄거리 구조를 연결시킨 '특수촬영물(흔히 특촬물이라고 한다)'이 장르로 굳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도 <E.T>를 연출하면서, 상상력과 감정이 풍부한 어린이배우들의 연기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있는 그대로의 반응을 카메라에 담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20세기 소년>도 그렇게 시작한다. 지구를 지키고 싶었고, 지구를 노리는 악당을 물리치고 싶었던 꿈 많은 어린이들은 그 꿈을 풀어내기 위해 '예언의 서'를 쓴다. 누가 무엇을 통해 어떻게 지구를 뒤흔들고 지배하는지, 모두의 의견이 모이고 모여 '예언의 서'가 완성된다. 

1. 악의 조직이 세균병기로 샌프란시스코와 런던, 오사카와 하네다 공항을 습격한다.

2. 2000년 12월 31일에는 도쿄에서 원자력 거대 로봇이 솟아오르며 세균을 살포하고 지구 곳곳을 파괴하고 멸망시킨다.

3. 악의 조직은 세계를 지배한다.


선악 개념이 분명해 악을 물리치는 선의 멋진 모습을 기대하는 어린 아이들의 상상에 맞는 스케일 큰 상상들이다. 문제는 30년이 지나 이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3. '친구'의 우정 강박관념


그리하여 세계는 위기를 맞았다. 일본에서는 '친구'라는 정체불명의 가면쓴 인물이 나타나 독재정치를 시작한다. 그가 쓰는 정체불명의 가면에는 30년 전 그 어린이들이 고안해 낸 괴상한 그림이 그려졌다. 소년만화 월간지 <소년 선데이>의 "다음 장을 넘기라"는 의미의 손가락 표시와 동그란 눈 모양을 합친 모양이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 '예언의 서'의 내용을 하나하나 현실화하면서 마침내 1인자가 된 것이다. 


친구가 만든 세상은 실베스타 스탤론 주연의 영화 <데몰리션 맨>을 연상시킨다. <데몰리션 맨>은 극단적인 도덕을 내세운 '콕토'라는 사람이 주도하는 독재정치를 그려나갔다. <20세기 소년>에서 '친구'가 지배하는 세상도 그와 비슷하다. 우정과 관계를 중시하는 신흥종교로부터 시작해 우민당이라는 정당조직을 곁들여 일본을 지배하는 '친구'는, 반대파를 제거하는 수단으로 '절교'를 사용한다. 그의 입에서 '절교'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그 말을 들은 사람은 처형당한다. 


<20세기 소년>은 어린이들의 엉뚱한 상상력으로부터 시작해 제2차 세계대전 배경의 독일과 프랑스를 연상시키는 역사적 배경까지 활용하며 규모를 확대한다. 어린 날의 상상이 모인 '예언의 서'가 세계를 뒤흔들며 위기로 몰고 가자 책임감을 느낀 그 시절의 친구들이 다시 모여 '친구'에 저항한다는 것은 레지스탕스 집단을 연상시킨다. 일본의 사무라이극이나 미국의 서부극을 연상시키는 측면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인문학적 배경을 이야기로 활용했고, 우라사와 나오키 특유의 암시와 복선 위주의 이야기 구조가 전개되면서, <20세기 소년>은 걸작으로 남을 조건들을 갖춰나간다. 줄거리로만 봤을 때는 황당함으로 다가올 여지는 있지만, 이런 조건들이 <20세기 소년>을 풍성하게 꾸며나간다. 장면 배치와 화면 분할 등도 독자의 호흡을 서스펜스 스릴러 방식에 맞게 조율해나간다. 


#4. 소외로부터 비롯된 절규


<20세기 소년>은 독자에게 다양한 숙제를 내준다. 그 시절 '예언의서'를 썼던 무리들 중에서 과연 '친구'가 누구냐는 의문으로부터 누가 '친구'를 돕느냐는 의문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숙제를 내준다.  하지만 거시적인 의문이 있다. 무엇이 '친구'를 괴물로 만들었냐는 것이다. 


<20세기 소년>과 <올드보이>(박찬욱 감독의 영화로 유명하지만 원작은 일본만화다)는 같은 주제를 안고 있다. 바로 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오해다. 사람은 제각각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때때로 서로를 오해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은 오해와 사소한 잘못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라고 했던가. 


두 작품을 관통하는 코드가 보인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때로는 누군가가 소외될 수도 있는 것. 두 작품은 소외된 자의 반란을 그린 것이다. 소외된 자가 결국 그 오해를 풀지 못하고 뒤틀린 감정을 잊지 못한 채 엄청난 선택을 했을 때, 세상은 큰 댓가를 치룰 수도 있다.





<올드보이>에는 가두는 자와 갇히는 자가 있다. 과거로부터 비롯된 오해 속에서 두 사람은 갑자기 역활이 뒤바뀐다. <20세기 소년>에서는 소외된 자가 힘을 길러 뒤틀린 욕망을 대규모로 드러내면서 친구들의 관계를 주도하던 사람들이 소수의 저항자로 남는다.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일까? 딱히 나눌 수는 없다. 관계가 어긋나 큰 오해를 불렀을 때,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소외로부터 비롯된 절규라고 할 만하다. 소외된 자는 자신의 폭주를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빠져들고, 관계가 역전된 소외한 자는 이번에는 그 자신이 피해자가 돼 억압의 테두리에서 빠져나가고자 허우적거린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죄수의 딜레마'다. 서로가 협력하면 보다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자신의 생각만 앞세웠을 때 결국 더욱 불리한 결과가 만들어진다. <20세기 소년>에서는 그 결과가 '친구'의 독재와 인류의 위험으로 드러났다. 제로섬 게임이었다.


#5. 불신과 오해가 '난민'을 만든다


불신과 오해, 대화 단절은 반드시 박해를 만든다. 강자와 약자로 나뉘어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고, 약자는 선택의 여지 없이 큰 용기를 내어 먼 곳으로 도망가야 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난다. 그 약자를 우리는 '난민'이라고 한다. '난민'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늘 비슷하다. 오해와 불신, 대화 단절, 소수에 대한 몰이해 등 공통의 관념이나 관습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는 폭력이지만, 다수를 형성하는 집단이 그것을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할 때 일어난다. 


<20세기 소년>은 "무관심도 폭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감정의 골이 깊어졌을 때, 약자도 거칠게 반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결과는 제로섬 게임이다. 제로섬 게임에 가지 않길 바란다면 서로에 대한 이해와 폭 넓은 대화가 필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꿈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쳐나갈 수 있는 동물이 아니던가. 그것을 믿고 꿈 같은 이야기라도 한번쯤 믿고 밀어붙일 수도 있다. 현실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되, 불가능한 꿈을 꾸라고 했던가. <20세기 소년>의 씁쓸함은 한편으로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또다른 꿈을 시작한다. 오해와 불신의 벽이 허물어지고, 사람들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하며 대화하면서, 바로 이 세상에서 '난민'이라는 사람들이 먼 역사 속 존재가 되길 바라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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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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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벽 3시 50분의 반복


"탕!"


A씨는 눈을 뜬다. 오늘도 역시 식은땀을 흘린다. 그 꿈이다. 오늘도 그 꿈을 꾸었다. 습관처럼 불편한 포즈로 몸을 구석구석 매만진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되는 꿈에 이은 반복되는 행동이다. A씨는 시계를 보았다. 새벽 3시 50분이다. 


문 틈이 살짝 열린 화장실의 불은 커져 있다. 아내가 곧 일하러 갈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 새벽에 몰래 하는 일이지만 아내는 늘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A씨는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낀다. 무엇을 위해 한국에 왔는지, 그 굳은 결심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


"일어났어?"


아내가 미소를 지으며 A씨를 바라본다. 아내의 미소는 슬프다. A씨가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악몽을 꾸고 일어났더니 아내가 자신을 부여잡고 서럽게 울고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매일밤 지긋지긋할 만도 하지만, 아내는 그러지 않았다. 그 서러운 울음 이후 아내는 애써 더더욱 웃으며 A씨의 아침을 맞이해준다. A씨는 불편한 몸을 일으키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이제 일 가는거야?"


"응. 그래야지. 벌써 4시 다 돼가. 당신 허리는 좀 어때?"


"뭐, 그렇지 뭐. 아침은 먹었고?"


"아니, 금방 다녀올텐데 뭐. 아이들 깨고 다 같이 먹자."


부실한 아침이 될텐데, A씨는 다시 마음이 씁쓸해진다. A씨의 조국 B에서 큰 위험을 겪은 이후, 제대로 된 밥을 먹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할 수 없었다. A씨는 물끄러미 낡은 식탁을 바라본다. 며칠 전에 산 빵들이 아직 식탁에 이리저리 놓여 있었다. 이마저도 귀하디 귀한 식사다. 아내의 수입은 한국 돈으로 40만원 안팎. 오로지 이 돈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쪽방의 집세와 아이들을 위한 분유를 구입하고 나면 A씨 부부는 빵 하나로 하루를 버티는 식의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아내는 아내대로 A씨가 안쓰럽다. 불편한 몸으로 힘겨운 일상을 버텨가는 남편은 오히려 자신을 더욱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행복할 줄만 알았던 고향의 삶이 한순간에 멈춘 뒤로, 이들의 삶은 몹시 팍팍해졌다. 하지만 삶이 팍팍하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향한 마음까지 팍팍해질 수는 없었다. 사랑은 서서히 식을 수도 있다고 하지만, 반드시 사랑만이 한 부부의 일평생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연민과 존중이 어느 순간 마음에 자리잡으면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팍팍한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새벽 3시 50분이었다. 아내는 신문을 배달하러 간다. 운동화를 주섬주섬 챙겨신은 아내는 A씨의 얼굴을 한번 더 바라본다. 복잡한 표정이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했지만, 운이 나빠 한국 정부에 발각될 때를 생각하면 아이들까지 추방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한국의 높은 아파트와 갖가지 건물이 너무 낯설어 실수투성이라 늘 매니저인 중년 한국인 남성에게 크게 혼이 났던 아내는 이제 제법 익숙하게 어둠을 헤치고 신문을 배달한다고 한다. 다친 허리만 아니었다면….


"당신 아침에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출입국관리사무소) 가지?"


"응. 그래서 잠이 더 안오네."


"잘 될거야. 걱정하지 마. 늘 함께 기도하자. 그럼 다녀올께."


허름한 문을 밀고 나간 아내가 지하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희미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소리도 잠깐 들렸다. 아내를 배웅한 A씨는 아이들의 방으로 간다. 어린 천사들의 꿈나라는 여전한가보다. 불편한 몸을 조심스레 움직인 A씨는 아이들의 곁으로 다가가 눕는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온다. 아내를 보내고 아이들의 천사같은 모습을 보면 A씨는 남몰래 눈물을 흘린다. 무엇이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갔는가?


 #2. 악몽


A씨는 아프리카 대륙의 B국에서 변호사였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어렵게 변호사까지 됐지만, B국에서는 두 종족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었다. 급기야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 총을 들고 칼을 들었다. 사소한 충돌로 몇 사람이 죽는 사건 정도는 언론에 보도도 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UN이 이웃나라에 세운 난민캠프로 향했다. 하지만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먼 길을 가면서 운나쁘게 충돌상황과 마주친다면 애써 몸을 피하는 보람도 없이 죽는 경우도 많았던 것이다. 


두 종족은 번갈아가면서 정부를 차지했다. 한쪽이 정부를 차지하면, 다른 한쪽은 반군이 된다. 정부군과 반군이라는 이름을 번갈아가면서 차지한다고 하더라도, 폭력의 희생양은 양쪽 모두가 된다. A씨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렵게 변호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아내는 그때도 A씨의 생각을 존중해줬다. A씨의 고향은 B국의 어느 해안가 작은 마을이었다. 가진 것이 많지는 않아도 평화롭고 행복했던 그 시절을 생각했다. A씨 부부는 세 아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로부터 잠시동안은 평화로웠던 것 같다. B국의 혼란상황과는 별개로 A씨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 정과 여유는 여전히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고향에 오길 잘했다며 행복을 느낄 것 같던 찰나였지만, 그 꿈은 곧 무너졌다.


A씨는 정치란 끊임없는 탐욕임을 그때 알게 됐다. 정부군이 되든, 반군이 되든, 정부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싸우는 실체들은 소수의 군 실력자와 정치인임을 A씨는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만들어낸 감정의 괴물을 가슴 속에 담고 이유없는 전쟁을 치루는 것이 바로 내전의 실체였다. 그 내전의 여파는 A씨가 그토록 꿈꿨던 고향 마을까지 찾아왔던 것이다.


한밤중이었다. 평화로운 꿈나라로 향했던 A씨 부부는 섬찟한 쇠의 촉감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얼굴에 복면을 둘러쓴 사내들이 마을을 휘젓고 있었고, A씨 부부의 집에도 쳐들어와 총을 겨누고 있었다. 복면을 썼지만 A씨는 알아볼 수 있었다. D종족 군대의 마크를 어깨에 달고 있었다는 사실을. 군복 너머로 힐끗 보이는 D종족 고유의 문신도. A씨 부부는 C종족이었다.


"이봐. 당신 변호사야?"


"네. 그렇습니다만."


"긴 말하지 않겠어. 더러운 벌레같은 C종족은 모두 죽여야 하지만, 우리는 능력있는 사람이 아쉬워. 우릴 위해 일해줘야겠어."


"죄송합니다만 저는 변호사 일을 그만둔지 오래입니다.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 돈이라면 원하시는대로…"


퍽!


총기의 개머리판이 A씨의 턱을 가격한다. A씨의 뺨에 붉은 피가 흘려내렸다. 아내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이 새끼가 누굴 거지로 알아? 건방진 새끼!"


이윽고 사내들이 모두 A씨를 발로 짓밟고 있었다. A씨를 아예 죽이려 들었다. 정신이 혼미해진 A씨의 눈동자에는 아내의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과 사내들의 총구가 이마 가까이에 다가오는 모습만이 박힌 채 서서히 눈이 감기고 있었다. 



-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잠시 후 A씨는 깨어났다. 눈을 뜨자마자 소스라치게 일어서려다가 가격당한 늑골뼈의 통증을 느끼며 신음했다. 그의 신음소리를 듣고 아내가 다가왔다. 옷과 머리는 모두 헝클어져 있었다. 아내는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런 아내를 보며 A씨는 기절해있는 사이 아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말없이 같이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안아줄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아이들은 안전했다. 하지만, 하지만 B국 어디에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비록 C종족이었지만, A씨는 C종족이든 D종족이든 살상이 벌어지는 자체가 끔찍했다. 


A씨는 편지가 한 통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네놈은 변호사라서 살려둔다. 2일 후 다시 오겠다. 그때도 이런 식이면 네놈과 가족들도 모두 죽이겠다."


A씨는 분노가 치밀어 편지를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 힘겹게 아내와 함께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은 A씨 가족만 살려두었던 것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반갑게 인사했던 소중한 이웃들이 모두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어린 아이들까지 남김없이 다 죽인 것이다. 


절망에 빠져 눈물이 얼굴에 범벅이 된 가운데 그의 뇌리에 스치는 곳이 있었다. 법대생 시절 강의에서 들은 적 있는 나라 '한국'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제도를 거쳐 짧은 시간 만에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는 나라였고, 여러 번의 민주혁명을 통해 독재자를 쫓아내고 굴복시켰다는 민주주의의 나라였다. 그래, 가자 한국으로. 다행히 달러가 조금 있었다. 비자든 여권이든 받아서 한국으로 가고 싶은 생각 뿐이었다.


#3. 지하철


따사로운 햇살이 A씨를 감돌고 있었다. 언젠가 저 따사로운 햇살이 가족 모두에게 축복처럼 다가올 것이라고 믿으며 신을 향해 마음속으로 기도드리며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A씨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은 한국의 아침 풍경이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고 있었다. 마치 군대 수송열차를 보는 것 같은 광경이었다. 괜히 겁이 났던 A씨는 영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젊은이에게 물었다. 


"제가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서 궁금한건데, 이 많은 사람들이 다들 어디로 가는건가요? 한국에 혹시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건가요?"


"아니에요. 일하러 출근하거나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에요."


A씨는 다시 한번 놀랐다. 조국 B에서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상황들이었기 때문이다. 매너있는 질문이 기분좋았던지 젊은이는 친절하게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해줬다. 


"한국은 나라는 좁은데 사람이 많아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지 않으면 살기가 힘들어요. 이렇게 아침일찍 가서는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놀라움과 두려움이 동시에 몰려왔다. 사람들의 표정에는 여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 젊은이의 답변이 고마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억을 떠올린 A씨는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지하철에 탔다. 오늘도 지하철에는 군대 수송열차처럼 사람으로 가득차 있었다. 숨이 막혔다. 허리가 조여왔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A씨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의 면담은 오후 2시였다. 하지만 굳이 아침에 가는 이유는 조급하기 때문이었다. A씨 부부에게 있어 고향 마을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곳이었다. 꿈을 꾸며 찾아온 한국이었고, 난민으로 인정해달라는 신청을 했지만 몇 달째 답변이 없더니 겨우 찾아온 기회였다. 


난민으로 인정되기 전까지는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A씨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정착하다가 언젠가 조국 B를 위해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것을 감수했다. 하지만 힘겨웠다. 그래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늘 면담에서 내가 조국에서 겪은 일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희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에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서 뒤를 돌아보니 한국 사람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이 그들에게 뭔가 불쾌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봤다. 차라리 한국 욕이라도 날아왔다면 궁금하지라도 않을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A씨를 노려보면서 코를 막고 있었다. 


#4. 인터뷰


점심을 언제 먹었는지 기억도 할 수 없을만큼 점심을 건너뛰는 일은 A씨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다. A씨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의 벤치에서 오후 2시가 되기를 마냥 기다렸다. 


A씨가 아까부터 희망을 갖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B국의 공용어는 영어와 고유어 E였다. 힘없는 나라의 고유언어 E는 한국에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란 생각은 애초부터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열심히 영어로 말할 준비를 했다가 반가운 정보를 알게 됐다. A씨와의 면담에는 E언어를 말할 수 있는 통역자가 함께 한다는 것이었다.


내 나라 내 민족의 언어로 먼 타국에서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로 기대에 부풀어올랐다. A씨가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고 싶은 이유는 가족의 안전 문제 뿐만이 아니었다. A씨에게 한국은 꿈의 나라였다. 한국이 어떻게 짧은 시간 동안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동시에 성숙한 민주주의의 나라가 될 수 있었는지, 그 비결을 배워 언젠가는 조국 B로 돌아가 조국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오후 2시가 되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에 들어선 A씨는 면담실 밖 대기의자로 찾아가 깍지를 끼고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 면담을 잘 하느냐에 따라 A씨와 남은 가족의 삶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A씨가 잘 해야 나중에 아내도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의 면담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B국에 두고 온 큰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또다시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겸연쩍었다. 한국에 오고 난 이후, A씨의 눈물샘은 자주 젖곤 했다.


"A씨, 들어오세요."


무미건조한 영어가 들려왔다. 이제 시작이다. 면담실에 들어선 A씨는 의자에 앉았다. 심호흡을 한다. 이윽고 무표정한 얼굴의 한국인 남성과 흑인 남성이 들어섰다. 그가 통역자인가 보다. 누구인지는 몰라도 나의 이야기를 전해줄 사람이며 같은 조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로,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A씨는 그에게 눈인사를 전한다. 하지만 흑인 남성 또한 무표정했다. A씨의 눈인사를 가볍게 외면해버렸다.


"이번 면담은 1951년 난민협약에 따른 난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필요한 자료를 얻는데 있습니다."


한국인 남성은 자리에 앉자마자 사무적인 말을 했다. 한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단어들이 무척 어려웠다. 흑인 남성이 무표정하게 그 말들을 A씨에게 전했다. 눈짓으로 대답을 강요한다.


"예."


엉겁결에 A씨는 대답했다. 한국어와 통역자의 말이 다시 A씨의 귀로 매섭게 찾아온다.


"면담 중 충분히 진술할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며 신청인은 자신의 진술을 입증하기 위해 성실히 노력하여야 합니다."


"예."


"진술한 내용은 외부에 비밀로 유지되며, 면담 종료 후 통역인을 통하여 진술을 다시 확인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됩니다. 면담 중에 질문할 수 있으며 휴식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예."


"신청인이 사용 가능한 언어를 말하시오."


"E언어, 영어를 할 줄 압니다."


"통역인이 통역하는데 동의합니까?"


"예."


통역 이야기가 나오면서 A씨의 대답은 약간 커졌다. 희망을 가졌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통역자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A씨의 희망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통역자의 팔을 스치듯 바라보면서였다. 반팔 와이셔츠를 통해 언뜻 보았던 그의 팔에는 작은 문신의 일부가 노출됐다. 그것은 상징이었다. 바로 A씨와 다른 종족이었던 D종족 남성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문신이었다. 끔찍했던 그날 A씨의 눈에 충격적으로 꽂혔던 그 문신이었다. 이런, 한국 정부는 종족 갈등을 겪는 타종족 출신자를 같은 국적이라는 이유로 통역자로 배치한 것이다.


한국인 관리와 흑인 남성의 목소리가 A씨의 귀를 날카롭게 후벼파기 시작했다. A씨는 현기증을 느꼈다.


#5. 모욕


면담은 오후 5시 넘어 끝났다. 현기증과의 싸움 때문에 A씨는 스스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무지 기억을 할 수가 없었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한줄기 빛에 의지해 출구를 찾다가 빛이 사라졌을 때의 당혹감과도 같았다. 허리 때문에 불편한 걸음을 걸으면서 다리까지 후들거렸다. 절뚝절뚝, A씨는 그렇게 걷고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내려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천천히 움직이면서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한국에 온 이후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A씨는 이미그레이션 오피스와 집을 오갈 수 있는 교통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버스가 오고 있었다. A씨의 엉성한 걸음걸이가 빨라진다. 버스가 냉정하게 지나치려 하자 A씨의 몸짓은 기괴해질 수 밖에 없었다. 버스가 출발한다. A씨가 고함을 지른다. 헤이 헤이, 다행히 버스가 다시 멈췄다. 


"그냥 다음 차를 타지 뭘 그렇게 서둘러? 엉?"


운전사가 버럭 화를 냈다. A씨는 운전사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버스를 멈춰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그에게 땡큐, 땡큐를 연발했다. 버스는 한가했다. 서둘러 가장 가까운 의자에 앉았다.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것 같았다. 희망이 무너지면서 찾아온 스트레스가 A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 몸에 힘이 풀린다. 버스가 영원히 멈추지 않고 어디론가 계속 가 주길 바람마저도 A씨의 머릿속을 채웠다.


"이 깜둥이 새끼는 뭐야?"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 A씨가 한국어를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알아듣는 한국어는 있었다. 바로 '깜둥이 새끼'라는 표현이었다. 흑인에 대한 비하의 욕설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A씨는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국인 중년 남성이었다. 술에 취해 있었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비틀비틀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A씨는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온몸이 마비될 정도로 지치고 힘든 그는 그 남성을 피할 수 없었다. 


"이 깜둥이 새끼들 왜 자꾸 한국에 기어오는거야? 엉? 이 새끼들 말야. 엉?"


그가 팔을 번쩍 들더니 오른손 집게손가락으로 그를 가리킨다. 비틀거리면서도 A씨를 노려보는 그 눈빛만은 뚜렷했다. 


"Hey, Negro fuck you!!"


술에 취한게 맞나 갑작스러운 의심이 들 정도로 뚜렷한 목소리로 A씨를 향해 영어 욕설을 내뱉었다. A씨는 울컥 뭔가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억눌렀다. 기력도 없었고, 현실적으로 그를 제지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A씨는 눈을 감아버린다.


"이 새끼들 자꾸 한국에 기어들어오는 이유가 뭐야? 애새끼들은 마구 낳고 말야. 엉? 이 새끼야, 나랑 한번 붙어볼래? 깜둥이 주먹 맛 좀 보자. 엉? 헤이, 니그로?"


아무도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A씨도 그러려니 했다. 가끔은 신이 원망스럽다. 왜 그를 가난한 눈물의 대륙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B국에서 태어나게 했는지 말이다. 그의 고성이 귓전을 계속 때려왔지만, A씨는 스르르 잠이 들으려고 했다. 귓전을 어지럽히는 한국 욕설과 혼란스러운 머릿속, A씨를 잠으로 이끌려는 자석이 동시에 A씨를 뒤흔들었다. 스르르 눈을 감는 A씨의 눈동자의 마지막 잔영으로 중년 남성을 제지하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 힘이 드는구나.



- <크래쉬>의 한 장면


#6. 행복한 천변풍경


깊이 잠이 들어 하마터면 버스에서 제대로 내리지 못할 뻔 했다. 갑자기 잠에서 깬 A씨는 소스라치게 놀라 내리는 문을 닫으려던 기사에게 손짓으로 싹싹 빌어가며 "오픈 더 도어 플리즈"를 연발했다. 기사는 짜증을 내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래도 그 기사가 고마웠다. 짜증을 내면서도 그의 부탁을 들어줬기는 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집에서 A씨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A씨는 이대로 집에 갈 수 없었다. 분노와 실망감, 무기력감이 모두 뒤엉킨 A씨의 가슴 속은 얼굴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이 얼굴로 집에 간다면, 한 줄기 희망만으로 힘든 일상을 버티고 있는 아내는 말하지 않아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것이 분명했다. 평생에 남을 상처를 가슴에 담고 남편을 생각해 묵묵히 참아온 아내였기 때문에 늘 안쓰러웠다. A씨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눈을 떼었다.


힘겹게 발을 내딛으며 음료수 자판기 앞에 선 A는 바지 호주머니에서 있는 동전을 모두 털어 700원을 맞췄다. 겨우 캔커피 하나를 뽑아선 그는 벤치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원이었다. 혹시라도 한국 사람들이 그를 향해 이상한 눈빛을 보낼까봐 가장자리 끄트머리에 있는 벤치로 향한다. 


벤치 앞에선 작은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호수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게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지나간다. 누군가는 가족과 소풍을 나왔는지 풀밭 위에서 간단한 간식을 즐긴다. 누군가는 책을 엎고 누워 있다. 


의자에 앉으면서 허리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낀다. 처음 한국에 와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얼마 없는 돈으로 겨우겨우 버티다가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막일을 하게 됐다. 대학 시절 파트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번 이후 처음으로 파트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트럭에 타고 건설현장으로 갔다. 


하지만 서툴게 돌을 나르고 지게가 헝클어지면서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고층이라는 것을 잊고 지게를 바로 잡으려다가 다리를 헛디뎌 그만 떨어지고 말았다. A씨의 허리는 그 이후 망가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인 것은 한국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비싼 병원비를 낼 수 없어 응급치료만 받고 그 상태로 계속 지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신은 아무래도 괜찮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프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 늘 눈앞이 캄캄했다. 특히 자신이 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A씨는 혹시라도 가족이 아플까봐 늘 가슴을 졸이고 살았다. 


저녁해가 저물어가면서 여전한 햇살이 따갑게 피부를 때리고 있지만, 그래도 잠깐의 여유를 방해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행복해보인다. Be Happy,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저 일상의 행복을 즐길 여유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스스로를 돌아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조국의 위험을 피해 한국으로 어렵게 왔을 뿐인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차가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A씨의 초조한 목을 적셔주고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A씨는 그 행복한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볼 때마다 고개를 떨구었다. B국에 두고 온 큰 아이가 생각나서였다. 끔찍했던 그날 이후, 서둘러 한국으로 떠날 준비를 하던 찰나에 큰 아이는 홍역에 걸려 앓아눕게 되었다. 


급하게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이의 상태가 심각해 도저히 비행을 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 급한대로 아내의 가족에게 아이를 맡기고 나중에 다시 찾으러 오겠다는 말만 남겨놓았다. 고개를 떨군 A씨의 눈에 작은 이슬이 맺혀 있다. 행복한 풍경 속 복잡한 실타래에 얽힌 한 남자의 마음이 새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큰 아이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과연 한국에 들어올 수는 있을까 그러기 위해선 일단 난민으로 인정받아야 하는데, 오늘 면담 이후 A씨의 기대가 산산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노을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노을을 배경으로 산책을 즐기고 대화를 나누는 저 사람들은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행복한 평일 저녁의 천변풍경이었다. 저녁해가 아스라이 멀어지면서 행복한 천변풍경 속 A씨의 서글픈 뒷모습에도 그림자가 업혀지기 시작했다. 


#7. D-7


아내는 이미 빵을 준비해놓고 있었다. A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당신 오늘 고생 많았지?"


"고생은 무슨…, 늘 미안해. 내가 허리만 다치지 않았어도…."


"별 이야기를 다 한다. 조금만 참고 기다리자. 좋은 날이 올거야."


아내는 빵을 내놓는다. 한 입 베어문 A씨를 향해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당신 이야기 잘 들어주는 것 같아?"


"뭐 그렇지, 당신도 곧 연락이 올 것 같은데?"


"응.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무섭기도 하고."


"걱정하지 마. 잘 될거야."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반드시 이야기해야 했지만, 어떻게 이야기할 지 몰랐다. B국의 C언어는 소수국가 언어였기 때문에 아내가 면담을 할 때도, 그 통역자가 나올 것임이 분명하다. 게다가 아내가 당했던 그 폭력을 남성 면담관과 남성 통역자에게 가감없이 이야기하는 장면까지 떠올랐다. 분명히 말을 이야기줘야 하는데, 목구멍에서 그 이야기를 자꾸만 막는다. 아내가 느낄 실망감과 공포가 벌써부터 예상된다. 


"분유가 떨어져 가네."


아이를 안은 아내가 말을 걸어왔다. A씨도 아침부터 걱정하던 일 중 하나였다.


"응, 아침에 먹이고 나니까 바닥이 보이더라고."


"내 아르바이트 월급날이 한 일주일 정도 남았는데…."


"지금 가진 돈 다 털면 분유 한 통 사올 돈은 될거야. 내가 내일 사올께. 미안해. 오늘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


분유를 사고 나면 A씨와 아내가 먹을 빵을 살 돈이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가 그 이야기를 피했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들은 굶겨서는 안되었다. 어떻게 해서라도 말이다. 


#8. Over the rainbow


아내는 잠이 들었다. 분유를 먹고 한참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며 놀던 두 아이도 잠이 들었다. A씨도 아내의 옆에 누웠다. 하지만 한참동안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내일 새벽 3시 50분이면 다시 같은 꿈을 꾸다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두려웠다. 그 싸늘한 총구의 촉감은 평생 잊지 못할 공포로 마음 속에 남았다. 


큰 아이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큰 아이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A씨는 혼란스러웠다. 아프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같이 한국에 왔어야 했을까? 아니, 지금 이렇게 식사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라면 아이까지 무리해서 데려오는 것은 분명히 무리였을거야. 아냐, 아내의 가족에게 맡기고 오길 그나마 잘한거야. 그런데 거기에도 정부군과 반군이 뒤엉켜 찾아오면 어떡하지? 


큰 아이와는 한달에 1번씩 통화한다. 국제전화요금이 비싸 큰 맘 먹고 전화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가 "아르바이트 월급날이 일주일 남았다"고 말한 또다른 의미를 A씨도 잘 알고 있다. 바로 그 날이 큰 아이와 단 1~2분이라도 통화할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밥은 잘 먹고 있을까? 어렵고 힘들더라도 공부는 계속 하고 있을까? 누가 해코지는 하지 않을까? 1~2분은 그것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A씨 부부에게 그 1~2분은 가장 귀중한 시간이었다.


A씨는 눈을 감았다. 눈꺼풀이 닫히면서 마치 연극의 막이 새로 시작되듯 고향의 풍경이 떠올랐다. 잔잔하고 맑고 투명한 바다, 그 위에 뛰노는 아이들과 순박한 고향의 이웃들, 무성한 야자 열매와 저녁이면 마을 전체에 퍼지는 생선 굽는 냄새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단지 소박한 삶을 꿈꾸었을 뿐인데 그조차도 신은 들어주지 않았다. 신에게 무슨 죄를 지은 것일까? 아니면 신은 우리를 버린 것일까? A씨의 상념은 멈추지 않는다.


아내는 옆에서 끙끙 앓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A씨를 대신해 새벽같이 일어나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아이들까지 기르고 있는 아내에게 무척이나 미안했다.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그 하나의 꿈만 가지고 버텨왔다.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허리도 치료하고 큰 아이도 데려오고 소박하나마 일자리도 어서 구해야 하고, 이제 아이들도 자랄텐데 유모차도 구입해야 할 것이고, A씨의 생각은 끝없이 펼쳐진다. 


하지만 한국 정부로부터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그 가슴졸임과 시간의 흐름은 무한정 이어진다. 통역자의 그 팔뚝 문신이 눈 앞에 갑자기 나타나며 큰 아이의 얼굴을 치워버렸다. A씨는 흠칫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방의 천장이 보였다. 다행히 의식을 모아 그 문신을 치워버리고 다른 것을 불러오려 애썼다. 흐릿한 눈가로 고향마을의 잔잔한 파도가 다시 펼쳐졌다.



- <호텔 르완다>의 한 장면


A씨는 <Over the rainbow>라는 노래를 좋아했다. 영화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노래다. 마법이라도 부려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노래는 A씨의 소박한 꿈이 담긴 꿈의 결정체였다. 


A씨의 눈가에 잔잔한 파도가 치는 고향마을의 바다가 보이는 사이, 귓가에는 <Over the rainbow>가 스르륵 흘러나오고 있었다. A씨는 미소를 지으며 무거운 눈꺼풀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새벽 3시 50분이면 총구와 문신이 찾아와 자신을 깨우겠지만, 잠들기 전만이라도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Over the rainbow, 무지개빛 봄날은 언젠가 A씨 가족에게 찾아올 것이라고 믿고 싶다. 무지개 저 너머 행복한 세상으로, A씨는 겨우 잠이 들었다. 큰 아이를 만나고 싶다. 큰 아이를….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Somewhere, over the rainbow, skies are blue, 

And the dreams that you dare to dream really do come true. 


One(some) day I'll wish upon a star 

And wake up where the clouds are far behind me. 

Where troubles melt like lemon drops 

Away above the chimney tops 

That's where you'll find me. 


Somewhere over the rainbow, blue birds fly,

Birds fly over the rainbow,

Why, oh why can't I?


if happy little blue birds fly

beyond the rainbow

why, oh why can't I?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 너머에, 저 높은 곳에

자장가에 가끔 나오는 나라가 있다고 들었어

저기 어딘가에, 무지개 너머에, 푸른 하늘에

네가 감히 꿈꿔왔던 일들이 정말 현실이 되는 나라.


어느날 나는 별에게 소원을 빌었어

그리고 구름 저 건너에 일어났지

걱정은 마치 레몬즙처럼 녹아버리고

굴뚝 저 높이에

그곳이 바로 네가 나를 찾을 곳이야.


무지개 저 너머 어딘가에, 파랑새는 날아다니고,

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


행복한 작은 파랑새는

무지개 너머로 날아갈 수 있는데 

왜, 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



-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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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지개 2012/06/13 21: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이야기가 너무 슬퍼 표현이 좋았다고 할 수도 없는...... 작지만 송금구좌로 익명으로 혹은 무지개라는 이름으로 송금하겠으니, A씨에게 꼭 전해 주세요. (10만원) 6/14일 보내겠습니다.

    • 박형준 2012/06/14 14:46  댓글주소  수정/삭제

      긴 글 꼼꼼이 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A씨들이 조금이라도 웃을 수 있게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1. 독재의 추억


"권력은 칼집없는 칼이다. 칼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힘이 있다. 하지만 칼집이 없기 때문에 함부로 휘두르면 결국 그 자신도 다친다."


모 사극에서 본 대사였다. 권력의 속성을, 특히 한 사람이 모든 권력을 가지고 휘두를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이렇게 잘 정의한 대사도 없을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재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 상당수는 국민의 손에 응징당하거나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또다른 쿠데타에 의해 쫓겨나서 쓸쓸히 죽었다. 뻔히 예상되는 독재의 결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 결말을 그대로 걸었다. 왜일까? 왜 그 불행을 반복했던 것일까?


권력을 가진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두려움의 연속이다. 권력의 아이러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반대로 그 힘을 가졌기 때문에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조국의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지만, 그 초심은 뒤로 빠진다. 


힘을 가지고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은 어느새 사라진 채, 힘 그 자체만을 위해 살아간다. 누군가 자신이 가진 그 힘을 빼앗으려 하지 않을까 큰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다 보니 정적에 대한 철저한 숙청과 학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경제적 독점은 부가서비스다. 쾌락에 쾌락을 거듭하고 두려움에 두려움을 거듭하며 취하다가 길을 잃는 것이다. 


명연기자 김갑수씨가 연기했던 모 사극 속 최충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고려 무인집권자였던 최충헌은 그 이전의 집권자 이의민을 몰아내고 20여 년 이상의 장기집권을 했다. 그 과정에서 친동생을 죽이고 조카의 뒤꿈치를 잘랐으며, 2명의 왕을 폐위시켰다. 그에게 도전한 사람은 누구라도 철저하게 응징당했다. 그가 움직이면 호위병력만 수천명이 넘었고, 그의 집은 왕궁보다 더 컸다. 독재자가 누릴 수 있는 쾌락은 모두 독점했던 것이다.


하지만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 젊은 시절의 최충헌 환영이 찾아와 그를 꾸짖는다. 젊은 최충헌은 늙은 최충헌에게 이의민의 횡포를 끝내고 어려움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겠다는 그 다짐은 어디로 사라지고 권력의 단맛에 취한 초라한 노인만이 남았다며 한탄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역적의 오명을 쓰더라도 고려왕실을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열었을 것이라고 후회한다. 


훗날 역사는 최충헌의 이름을 역사서의 '반역자 열전'에 기록해 후세에 전했다. 편히 누워 죽음을 맞이했지만, 그 이름은 역사에 '반역자'로 남은 것이다. 독재의 오명이다.  


#2. 이디 아민



포레스트 휘태커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의 영예를 안긴 <라스트 킹>(2006)이라는 영화가 있다. 원제는 < The Last King Of Scotland >이다.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을 다룬 영화였다. 독재자 1인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나름의 패기와 객기를 가진 젊은 서구인의 개인적 시각에서 바라본 독재자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이 신선했다.


<라스트 킹> 속 이디 아민은 독재자의 탄생부터 몰락에 이르기까지 명확하게 변화한다. 이디 아민과 우연히 만나 그의 호감을 얻어 개인주치의로 고용된 니콜라스 개리건(제임스 맥어보이)의 눈으로 본 초기의 이디 아민은 유머와 열정이 넘치며 대중과도 완벽하게 호흡하는 준비된 정치인이다. 매력적인 대중정치인의 요소를 그대로 갖춘 통치자라고 할 만했다. 


하지만 그 역시 모든 것을 갖추었기 때문에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쿠데타로 집권했다는 태생적 약점은 국제무대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한계로 작용해 서방세계의 감시어린 시선 한 가운데에 노출될 수 밖에 없었으며, 아프리카 대륙의 많은 나라들이 흔히 그렇듯 역쿠데타를 일으키려는 세력도 실제로 존재했다. 


그런 위험을 이겨내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통치자로서 해야 할 본질적인 임무가 무엇인지 철저하게 성찰하며 그 시대에 맞는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가장 궁극적인 답변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의 시야는 그리 넓지 않다. 화려한 금빛이 마음의 맑은 창을 가려버리기 때문이다. 오로지 자신만 보이게 만든다. 그래서 이디 아민 역시 뻔한 길을 걷는다. 점차 그는 철저하게 정적을 숙청하며 반대세력을 학살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날이 줄어들어 의심은 더욱 커지게 되고, 그 의심만큼 많은 사람이 죽는다. 본질적인 고민이 빠진 뻔한 독재의 길이다.


<라스트 킹>은 아프리카 대륙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처럼 휴머니즘을 제시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이디 아민에 초점을 맞춰 그의 성격이 어떻게 증폭되며 그 증폭의 크기에 따라 어떻게 파멸해나가는지, 냉정하게 조명할 뿐이다. 그를 관찰하는 젊은 서구인 의사도 객기에 취해 이디 아민의 아내와 불륜에 빠짐으로써  2인자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쾌락을 맛보다가 수렁에 빠진다. 그 수렁은 결국 두 사람 모두를 위기에 빠트린다.





포레스트 휘태커는 그야말로 완벽하게 이디 아민으로 변신한다. 정열과 잔인함의 경계선에서, 호탕함과 의심의 경계선을 유유히 오가며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불안한 삶을 사는 한 인간을 조명하는데에 집중한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본질이 엿보인다. 아프리카 대륙을 지배하는 가난과 질병과 내전, 그럼으로써 발생되는 숱한 살인과 폭력 등이 비롯되는 가장 원초적인 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가진 것을 잃을까봐 두려움에 빠진 한 인간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되는 비극이다.


#3. 혹세무민의 끝


앞서 <라스트 킹>이라는 제목을 소개하면서 굳이 영문 원제목을 붙인 이유는 그 영문 원제목에 이디 아민의 독재 형태가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이라고 과시했다. 연설 도중 자신이 스코틀랜드의 마지막 왕으로 추대됐다고 허황된 거짓말을 한 것이다. 혹세무민이다. 독재자의 대중선동이 당시에는 그럴듯하게 들릴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뻔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대륙을 함부로 침범해 식민지로 착취했던 유럽의 역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나라들이 독립했다. 하지만 나라별로 가졌던 다양한 특성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편의에 맞게 국경을 확정하고 몰아치듯 독립을 확정지음으로써 혼란을 불러왔다. 


독립 이후의 혼란은 결국 독재자들의 출현을 불러왔다. 그들은 각각 자신의 탐욕만을 채웠을 뿐이다. 그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맛보았다. 누군가는 목숨을 잃었고, 누군가는 끔찍한 폭력의 희생자가 됐다.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으며, 심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아이들은 굶어 죽어가고 정부군과 반군은 모두 그 아이들을 징집하지 못해 혈안이다. 소수의 탐욕을 위해 다수가 영문도 모른채 희생되는  혹세무민의 비극이다.





이디 아민은 결국 자신을 쫓아내기 위한 쿠데타군에게 패배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로 도망쳤다. 그에게 남은 것은 작은 빌라 한 채였다.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조건 아래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제공한 것이다. 질병에 시달린 그는 결국 조용히 숨을 거둔다. 


8년간의 광폭한 독재는 30만 명 이상의 목숨을 잃는 끔찍한 결과와 함께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우간다의 혼란을 남겼다. 모두를 잡아먹는 비극에 불과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쥔 자의 탐욕이 낳은 결과다. 이디 아민은 역사를 수놓았던 수많은 독재자들이 그랬듯 오명만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79년 마침내 그가 무너졌을 때, 기쁨에 찬 군중들이 거리를 매웠다. 그의 정권은 30만명 이상의 우간다인을 살해하였다. 아민은 2003년 8월 16일 사우디 아라비아 망명 중에 사망하였다. 그가 꿈을 꿨다는 날짜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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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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