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하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스티비 스미스

 

아무도 그의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죽은 이의.

그런데 그가 여전히 신음하고 있다.

난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멀리 와 버렸어.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불쌍한 녀석, 늘 장난치길 좋아했는데.

이젠 저 세상에 가 버렸네.

견디기엔 너무 추웠을 거야. 그래서 심장도 멈춰 버린 거지.

그들은 말했다.

 

,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어느 때고 예외없이 너무 추웠어.

(아직도 그 죽은 이는 신음하고 있다.)

난 삶의 모든 것에게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렸어.

손짓하고 있는 게 아니야.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거라고.


 

 

Not Waving but Drowning

 

                                           Stevie Smith

 

Nobody heard him, the dead man,

But still he lay moaning:

I was much further out than you thought

And not waving but drowning.

 

Poor chap, he always loved larking

And now he's dead

It must have been too cold for him his heart gave way,

They said.

 

Oh, no no no, it was too cold always

(Still the dead one lay moaning)

I was much too far out all my life

And not waving but drowning.






2013 2 20일 오후 1 12.

 

한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올해 나이 만 42.

43세가 되는 날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습니다.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조국 카메룬을 떠나온 지는 이제 1년하고 반이 조금 넘었습니다.

아내와 자식들을 두고 온 그 나라에 그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난민인정신청자가 되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병실에서 처음 만났던 날,

그는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무심한 표정에 경계의 눈빛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회복을 믿습니다.

기적을 믿어요.’

희망을 얘기했던 그 순간이 유일하게 온전한 미소를 띠어 준 순간입니다.

 


위암 4.

, , 복막까지 전이.

기침, 가래, 구토, 오한, 발열, 호흡 곤란, 근육 통증 호소.


 

난민지위신청자라는 불안정한 신분으로 한 달 사이 두 차례 병원을 옮긴 그.

구급차에 실려 세 번째 병원으로 이송된 그가 휠체어에 앉아 말합니다.

잠깐 창 밖을 보고 싶어요.’

커다란 로비 한 켠 통유리를 통해 바깥을 내다 보던 그는 이윽고,

눈이 왔네요. 바깥은 많이 춥겠죠?’

그리고 5, 10, 15한참을 시선을 거두지 못한 채 그렇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 대신 출입국사무소에 다녀 왔습니다.

5월까지 3개월 체류연장을 받아 왔다는 소식에 안도합니다.

보일 듯 말 듯한 웃음까지 입가에 떠오릅니다.

마치 그 기간만큼은 보통의 날들처럼 살아낼 수 있는 것마냥, 그렇게 말입니다.


 

늦은 저녁, 입원해 있는 병실을 찾아갔습니다.

반색을 합니다.

한참을 이 얘기 저 얘기 토막토막 풀어 놓습니다.

그러더니 손을 잡아 달라 합니다.

잠깐 복도를 한 바퀴 돌고 싶어요.’

손을 꼭 붙들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내딛습니다.

중간중간 만나는 환자들에게 인사도 하고,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보며 자기는 생선 요리를 좋아한다고 한 마디 툭 던지기도 하고,

간호사들이 일하는 공간도 한번 기웃거려 보고.

다시 돌아온 병실에서 그가 내민 우유 한 팩.

거듭 괜찮다 사양하는데도 꼭 가지고 가라 합니다.

아픈 사람들한테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나눠 줄 수 있는 것이 정말 기쁨을 주는 일이에요.’

언제 또 올 거냐고, 얼른 또 와 달라고 채근도 합니다.

곧 또 뵐 수 있을 거라, 그렇게 답했습니다.


 

며칠 사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야 했습니다.

너무 이른걸요(Too early).’

그에게서 들은 두 마디 답. 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루만에 혼수 상태에 빠진 그.

그 곁에서 지킨 한 시간. 마지막 거두는 숨을 지켜 보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죽음은 삶을 마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란다.(Death ends a life, not a relationship.)"

 

타국에서 난민지위신청자의 신분으로 숨을 거둔 그의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는 가슴이 먹먹합니다.

죽음에 직면하여 더 깊이 만나게 된 그와의 인연에 조금이라도 부끄럽지 않고 싶은 것은,

세상과 하직한 지금 이 순간만이, 혹은 지난 한 달 여의 시간만이 아닌

실상 해를 넘기는 긴 시간 동안 춥게 살아 왔을, 그 외롭게 울리는 신음소리를 여전히 홀로 울리게 하고 싶지 않은 이유에서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난민인권센터(NANCEN) 일동

 



 


*현재 난민인권센터와 고인의 벗들은 그 동안의 치료 과정들을 마무리 하고 연이어 진행할 장례 절차 및 본국에 있는 가족들과 연락을 취하는 단계를 밟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치료 과정에 들어간 비용과 최소한의 장례를 위한 비용, 그리고 본국으로 시신을 운구하는 과정에 필요한 비용으로 최소 1,000만 원을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해당 기금 마련을 위한 여러분의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후원계좌: 국민은행 233001-04-225116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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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inu 2013/02/26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무영 2013/03/06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윗에 올렸는데 들어가보니 이 페이지가 안전하지 않은 사이트로 나와요...
    이 페이지가 그런지, 센터 홈피가 그런건지 모르겠네요..
    일정이 조속히 잘 마무리 되고, 가시는 길이나마 편안하셨으면 합니다..



난센은 사례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난민 아동 가정을 방문하고 있는데요.

추위가 유난히 매서웠던 2013년 겨울,

마음에 따뜻함을 한아름 안겨준 두 꼬마 천사를 만나고 왔습니다.


먼저 소개시켜 드릴 친구는 춤추기를 좋아하는 조나스(가명) 입니다.


조나스를 만나러 가는 길 룰루♪


꽁꽁 얼어 붙은 길을 살금살금 걸어,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들을 헤치고 가니

조나스의 어머니께서 문 앞까지 나와 난센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낯설었던지 엄마 옆에만 찰싹 붙어있던 조나스.


하지만 낯가림도 잠시!!




조나스의 숨겨진 댄스 본능이 폭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조나스가 아직은 어눌한 프랑스어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출 동안

동행한 인턴은 뮤직뱅크PD인냥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야 했다죠...ㅋㅋㅋ



오랜만에 친구가 생겨 즐거운 듯


조나스는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뛰고, 돌고, 앉았다가, 일어났다가를 무한반복 했답니다.


조나스의 에너지가 느껴지시나요? 




어린이집을 가지 못하는 조나스에게 유일한 친구는


고작 2m밖에 타지 못하는 작은 자전거 한 대.


어린 조나스에게서 '친구'의 간절함이 느껴져 마음 한 켠이 찡하기도 했습니다. 


조나스 비행기 태워주고 같이 뛰느라 힘이 쪽 빠졌던 유유도 


조나스의 신난 모습을 보고 피로가 다 가셨답니다.




두 번째로 소개시켜드릴 친구는 똘망똘망한 눈이 너~~~무 예쁜 엘레나(가명)입니다.




엘레나는 새침한 개구쟁이입니다.


앙증맞게 묶은 머리가 너무 잘 어울리지 않나요?



엘레나는 분유대신 먹는다는 토마토 주스보다도  




아이들의 대통령 뽀롱 x 8 뽀로로♬를 백만배 더 사랑한다고 하네요.



엘레나도 뽀로로 노래만 나오면




♪무브무브 점프점프♬ 흥에겨워 몸을 주체하지 못한답니다.


아무래도 이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댄스 유전자를 타고 나나봐요...




난센에게 선물받은 물품까지 스스로 챙기는 똑부러지는 엘레나.


작은 손으로 조물거리며 가방에 넣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습니다.




난센 식구들이 떠날 시간이 되자 같이 가겠다며


옷까지 챙겨입고 신발까지 든 엘레나였지만,


같이 가지 못하기에 난센 식구들은 엘레나의 울음 소리를 들으며 발길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답니다...엉엉





여느 아이들처럼 '뽀로로'와 '친구'를 좋아하는 조나스와 엘레나와 함께 놀면서


난센 식구들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습니다. >0<


하지만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과 달리


아이의 기저귀 값부터 불안정한 미래까지 걱정해야 하는 부모들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는데요,


난민, 흑인, 부모라는 정체성으로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긍정의 힘!!이 많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자기와 놀아주는 단 한 사람이 그리운 아이들,


누구보다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


박해와 불확실한 상황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꿈을 품어야 할 이 아이들을 응원해주세요.


난센도 이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고, 응원하겠습니다!!


 


아이들의 마음 만큼은 추운 겨울이 아닌 따뜻한 봄이기를 바라며


겨울 이야기 끄읕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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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인권센터는 행정정보공개청구를 통하여 공개된 

[2013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운용명세서]의 내용 중 난민관련 예산으로 편성된 부분을 정리하였습니다.

 

 

2013년 법무부 난민관련 예산 현황

                                                                                             단위: 천원

분  류

소  계

적  요

금  액

내  역

난민지원센터 운영비

35,140

자원봉사자활동비

7,200

30,000 * 2* 20* 6

난민여행증명서발급

11,250

250* 45,000

난민어울림행사

2,500

2,500,000* 1

난민인정신청서식

1,182

1,182,000

안내물

2,000

1,000* 2,000

현수막

400

100,000* 2* 2

수용경비

10,608

136* 13,000* 6

난민지원센터 기타직보수

142,476

전기원

11,165

1* 71,570* 26* 6

청사관리원

27,078

3* 57,859* 26* 6

방호원

18,052

2* 57,859* 26* 6

긴급자동차운전원

21,088

2* 57,590* 26* 6

영양사

10,937

1* 70,110* 26* 6

식당운영원

54,156

6* 57,859* 26* 6

난민지원센터 공공요금

60,391

전기요금

44,303

기본요금 5,610 * 2,580Kw = 14,474,000

가을철요금 60,1* 45,000Kwh *2=5,409,000

겨울철요금 83,3* 61,200Kwh * 4= 20,392,000

부가세 40,275,000* 10% = 4,028,000

상수도요금

9,350

680* 27,500* 1/2

하수도요금

3,438

250* 27,500* 1/2

물이용부담금

1,650

120* 27,500* 1/2

청사화재보험료

1,650

500* 6,600* 1/2

난민지원센터 청소용역비

40,075

청소용역비

40,075

6,600평방미터 * 1,012* 6

난민지원센터 시설비

598,000

민원실, 사무실 OA설치

315,000

315,000,000

면담녹음실

125,000

5* 25,000,000

방송시설

40,000

2* 20,000,000

안내간판 등 설치

52,000

52,000,000

CCTV, 랜공사

30,000

30,000,000

전화회선공사

6,000

6,000,000

모빌렉 설치

30,000

2* 15,000,000

난민지원센터 자산취득

431,000

중형승합차량(25인승)

50,000

50,000,000* 1

대형승합차량

140,000

140,000,000* 1

소형승용차량

50,000

25,000,000* 2

텔레비젼(강의실)

5,000

2* 2,500,000

텔레비젼(사무실, 민원실)

7,200

12* 600,000

냉장고

4,000

8* 500,000

청소기

7,040

32* 220,000

대형세탁기

18,000

1* 18,000,000

건조기

13,000

2* 6,500,000

소형세탁기

3,500

10* 350,000

소독기

7,260

3* 2,420,000

정수기

2,700

5* 540,000

소방보안장비

14,000

14,000,000

의료기구

12,000

12,000,000

주방용품

40,000

40,000,000

복사기

10,000

2* 5,000,000

모사전송기

2,000

2* 1,000,000

문서세단기

2,000

2* 1,000,000

제본기

540

1* 540,000

키폰전화기

18,750

75* 250,000

운동기구

13,000

13,000,000

민원용 집기

11,010

11,010,000

난민교육

52,800

한국어 및 한국사회이해

28,800

4시간 * 30,000* 2* 120

문화 체육 오락 등 특강

24,000

2시간 * 50,000* 2* 120

연구개발비

10,000

난민교육 교재 및 프로그램 개발

10,000

10,000,000

구료비

137,856

난민지원센터 구료비

110,556

136* 4,418* 184

인천공항 난민신청자 구료비

13,650

6,500* 3* 7* 100

김해공항 난민신청자 구료비

6,825

6,500* 3* 7* 50

제주공항 난민신청자 구료비

6,825

6,500* 3* 7* 50

난민의료비

13,000

난민의료비

13,000

13,000,000

난민전문통역비

288,000

난민전문통역비

288,000

50,000* 4시간 * 5* 48* 6

난민소송

101,164

항소 송달료

1,022

73,000* 14

상고 송달료

392

49,000* 8

패소비용(1, 2)

8,250

1,650,000* 5

패소비용(3)

1,500

1,500,000

소송 위임비용

90,000

2,000,000 * 45

난민소송출장비

14,000

난민소송출장비

14,000

14,000,000

난민신청자 등 의료비

22,939

진료비용 등

22,939

22,939,000

난민위원회 위원 수당

9,600

위원수당

9,600

200,000 * 8* 6

난민위원회 운영

6,000

난민위원회 운영

6,000

6,000,000

난민담당자 회의

19,000

난민담당자 회의

19,000

19,000,000

특정업무경비

87,600

난민조사관 활동비

87,600

87,600,000

총    액

2,069,041,000


[2013년도 법무부 예산 및 기금운용 명세서]상에 난민관련 예산으로 명기된 예산은 총 2,069,041,000원이며 

2013년 난민관련 예산에서 주목할만한 특징은 난민법 통과로 인하여 소요되는 사업예산 19억 8천만원의 신규 편성입니다.


신규확보된 19억 8천만원 예산의 대부분은 난민지원센터의 운영을 위한 예산이며

2013년 7월부터 시행될 난민법에 의거하여 난민신청자에게 지원할 수 있는 생계와 주거지원 등을 위한 예산은 전무합니다.



신규예산 대부분은 난민지원센터 운영비 


법무부가 밝힌 난민지원센터의 적정 수용 규모는 3개월씩 100명 수용이며, 이를 근거로 1년에 400명 수용이 가능함을 알 수 있습니다.

2012년 난민신청자는 총 1,143명으로 난민지원센터에서 수용 가능한 400명을 제외한 나머지 신청자 600-700명과 난민지원센터에서 3개월 수용 후 사회에 나오게 될 난민신청자의 사회적 처우를 위한 별도의 대책과 예산은 없습니다.

 

이는 생계와 주거의 지원을 사실상 난민지원센터 수용에 동의하는 신청자로 제한하는 조건부 지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각종 박해의 피해자와 가해자를, 그리고 이질적인 문화와 종교적 배경을 가진 난민신청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대규모 수용시설에 함께 수용하는 방식만 고집하는 행태는 위험하고 잘못된 발상임니다.

 


예산 낭비적이고 사회통합에 반하는 난민지원센터


어떤 경우에도 인간으로서 생존권 보장을 위한 수단이 단절되어서는 안됩니다.

난민법의 의미 중 하나는 지금까지 문제로 지적되어 온 난민신청자의 사회적 처우의 근거를 마련하였다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법무부 예산은 난민지원센터 운영비, 시설비 그리고 자산취득비 등이 대부분으로 신청자에게 직접 혜택이 돌아가는 항목은 극히 적습니다.

난민관련 예산이 대부분 난민지원센터 운영비로 난민지원센터에서 3개월, 난민지원센터 이후의 생활을 위한 예산, 그리고 난민지원센터에 수용할 수 없는 신청자를 위한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난민지원센터만을 통한 난민신청자 지원은 2중, 3중으로 추가 예산을 투입해야하는 전형적인 예산 낭비임과 아울러 사회통합에 반하는 방식입니다.

 

난민지원센터는 전 세계 분쟁과 갈등의 총 집합체가 될 것이며 수용된 난민신청자들 사이에 크고 작은 마찰이 예상됩니다. 이를 억누르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통제수단을 동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난민지원센터를 자유시설로 운영한다는 법무부의 주장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따라서 난민에 대한 이해와 인권 감수성으로 준비된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가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난민지원센터의 일부 기능을 민간에 위탁할 수 있다는 법무부의 입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위한 예산 또한 전무합니다.

 


2013년 예산 중 환영할만한 부분은 난민전문통역비로 288,000,000원의 편성한 부분입니다.


 

심사인력의 확충을 통한 심사기간 단축이 최선의 방법


난민신청자의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시간을 줄여주는 심사기간 단축이 난민신청자를 위한 최고의 사회적 처우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출입국 사무소의 1단계 심사인력은 사실상 3명 뿐이어서 2년 연속 1천명이 넘어선 신청자를 빠르게 심사하기엔 절대적으로 역부족 입니다. 인간으로서 자존감과 자립의지가 곤두박질한 상태에서 난민인정을 받아도 이를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 어려움은 본인에게나 사회적으로도 치러야할 비용이 너무 큽니다.

난민지원센터 운영을 위한 수십억원 예산보다 심사인력 확충을 통한 심사기간 단축이 난민신청자의 사회적 지원을 위한 최선의 방법임을 법무부는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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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6일. 

난센 활동가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뚝딱뚝딱 싹뚝싹뚝 

8기 인턴들이 난센 1층 벽을 새롭게 꾸미기 위해 

예쁜 색지를 오려 붙이는 모습입니다! 

(미소짓고 있는 인턴들의 모습은 절대 설정이 아닙니다. 

힘들어도 항상 웃는 우리 8기 인턴들!완전이뻐)





짜잔~~~ 떡국 감독님, 은숙씨입니다. 

샤방샤방~~ 샤방

30인분의 떡국을 만드셔야 하는 은숙쉐프는 

육수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준비하는 내내

난센과 꿈을 같이 꾸고, 난센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시는 

여러분을 만난다는 설레임에 

활동가들은 무~~척 설레었답니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17일. 




부엌에서는 구수~한 육수 냄새가 활동가들의 코를 쿡쿡 찌르고 있고, 




또, 강은숙 요리사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박은정(왼쪽), 봉점순(오른쪽) 보조요리사들의 모습! 

참잘했어요




점순씨는 칼로 당근을 써는 것이 아닌

매서운 눈으로 당근을 썰면서 

손님들이 언제 오는지 체크를 하고 있었습니다.. 





활동가들도 방명록도 손님들이 빨리 오시길 기다리고 있었고, 




새롭게 디자인이 바뀌었지만, 

완성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나무와 담벼락 또한 

손님들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고

저에게 살짝 말해주더군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채널고정!! )




12시가 되자,


드디어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손님이 모이면 모일수록 얼굴이 창백해지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녀는 바로... 





접니다...엉엉





하지만, 긴장도 잠시, 꿋꿋하게 행사를 진행했답니다. 궁디팡팡



 

 

국장님의 인사말씀에 이어 손님들, 난센 가족분들의 소개를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통번역 자원활동가, 전 기수 인턴, 학생, 난민, 회원, 협력기관 멤버 등등 

난센을 지지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난센 떡국잔치에 함께 해주셨습니다. 




짧지만 길었던 자기소개 시간이 끝나고 .....



왔습니다~ 왔어요! 

맛있~고 따끈따근한 떡국이 왔습니다~ ><





맛있게 떡국을 만들어준 "은숙쉐프와 아이들" 덕분에 모두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행사 담당자로서 참가자분들이 서로를 몰라서 어색해 할까봐 걱정 했었는데, 

막상 행사가 시작되고, 자기소개하고 떡국까지 같이 먹다보니 

모르는 사이어도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았고, 

더군다나 관심이 많이 필요한 난민 분들과 담소 나누는 흐뭇한 장면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서프라이즈 생일 파뤼 도 열렸습니다!! 

고향에 있었다면 가족과 했을 A씨의 생일 파티를 

저희 난센 가족들이 준비해서 함께 축하해 주었습니다. 



사실 A씨는 이 행사에 오고싶지 않았다고 합니다. 

집에서 쉬고싶은 생각이 더 컸는데 무언가가 자기를 이곳으로 오게 했고,

난센에 오는 도중에서야 자신의 생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하네요.. 



매번 자신의 생일이면 엄마가 먼저 생일 축하해주곤 했는데, 

이번 년도에는 엄마의 생일 축하메세지를 받지 못했고, 

대신 난센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하시는 

A씨의 진심어린 말에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A씨의 생일 축하를 해 주었고, 

모두가 A씨가 하는 말에 귀기울여 주었습니다. 

난센과 관계가 깊은 난민 분들의 생일을 축하해 주는 것은 난센활동가의 몫이었는데,

이번 떡국잔치 기회를 빌어 활동가뿐만 아니라 '난센가족'분들도 함께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감동은 여기서 끝이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집니다~! 




무엇을 그리 열심히 쓰고 계신가요?? 


      


바로 난센&난민에게 전하는 메세지를 각자 나뭇잎에 담고 계신데요. 


과연 이 나뭇잎은 어디에 자리잡게 될지

기대해주세요!!! 



이어지는 벤트벤트 이베~~~엔트! 


       


     


바로 "난센"으로 이행시 짓기!!! 


처음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찍어드린 폴라로이드 사진 밑에 

'난센'으로 이행시를 짓고 발표해서 

인기를 많이 얻은 분께 '난센컵'을 선물로 드리는 행사인데요, 



  

        

    


난센 컵을 받아가신 6팀들의 난센 이행시 공유합니다. 

*주의* 앞으로는 진행자의 환심을 얻어 상을 받기 위해 '진행자에게 고백'하는 

그런 불상사한 일은 삼가해주세요~~;;;;



이렇게 해서 17일 떡국행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끝은 났지만, 한 분 한 분, 다녀갔던 흔적이 계속해서 

난센활동가들의 마음이 따뜻할 수 있도록 유지시켜 주었습니다. 


  


  

  

   






'난센가족'분들이 직접 완성해 주신 1층 벽 다시 꾸미기. 


사실 이 '나무와 담벼락' 디자인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월담"! 

한 달에 한 번씩 난센에서 열리는 월담 행사의 비전이듯, 

벽을 넘는다는 뜻인데요.

저 나무가 담을 넘었듯, 난민분들이 한국에 온 후 맞닥뜨리게 된 

벽을 넘는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와 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같이 있었던 난민 분들이 벽을 넘을 수 있는 원동력을 얻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또한 저희도 계속해서 저 벽에 걸린 여러분들의 메세지와 사진들을 보고 되새기면서 

열심히 열심히 난민 분들이 벽을 넘을 수 있는 디딤돌이 되도록 

2013년에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일 때문에 바빠서 못오신 다른 가족 여러분들도 다음번에 꼭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고, 

모두모두 감사드립니다. 


2013년 여러분도 난센도 화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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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Yo 2013/02/09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떡국! 맛있게따!
    저두 담에 기회되면 꼭 갈게요:))

  2. Yo 2013/02/09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떡국! 맛있게따!
    저두 담에 기회되면 꼭 갈게요:))

난센 힐링캠프

Activities 2012/12/20 16:07

안녕하세요 여러분 :) 


올해의 마지막 달, 12월. 

2012년을 마무리하기 위해 

자신을 되돌아 보고,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을 치유하고

 2013년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난센에서는 난민과 활동가들을 위한 힐링캠프를 준비했습니다. 



12월 19일 오전 10시.




 난센활동가들과 난민분들은 이곳, 사람마음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합니다.



사람마음?? 과연 뭘 하는 곳일까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일반 가정집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난센활동가들과 난민분들이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명절에 모인 "가족" 같아 보이지 않나요 ^-^ 




도대체 뭐하는 곳이냐구요?? 



바로, 트라우마 치료센터 "사람마음" 

 난센에 오신 난민분들 중 심리상담이 필요하신 분들을 상담해주는 곳입니다.


난민분 개개인이 받았던 트라우마, 

또 난센 활동가들도 사람이기에 당연히 받을 수 있었던 상처들을 

떨쳐버리기 위해 사람마음에 모여 

최현정 선생님께서 들려주시는 "트라우마 강의"를 들었습니다:) 






난민들도, 난센활동가들도 귀 귀울여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각자가 겪었던 트라우마를 떠올려보고 

그 뒤의 삶을 되돌아 봤습니다.



 

 


 

트라우마. 

전쟁, 환경재해, 학교폭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 내 자신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닌 

외부로부터 일어난 상황에 충격을 받는 현상입니다. 


사람이기에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고 합니다.

또 그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 여러분들을 알고 계신가요? 




최현정 선생님의 강의에 이어 그룹 활동이 있었습니다. 

두 그룹으로 나뉘어, 트라우마를 받은 직후에 

내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그 경험을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봤습니다. 




소외감,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충동, 뒤바뀐 세계관, 실망감, 불면증, 환청 등이 

트라우마로 인한 휴유증이었습니다. 



트라우마로인한 상처로 자기 방어를 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굳게 닫아버리기도 하고 

깊은 절망에 빠져 자기 자신을 탓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난민분들은 다시금 이겨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자기 자신을 탓하지 말고 사랑해줘야 해요" 

"차별 받음은 내탓이 아니었어요. 그냥 문화가 다름으로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절대 제 잘못이 아닌거에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로 "자책"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다시금 일어서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말 처럼 들리지만, 

현실에서는 받아들이기 싫은 일도 많고, 받아들이기가 쉽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히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을만큼 큰 상처를 받은 그들은 

이미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시금 일어나고 있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들은 



너무나도 큰 배움이자 크리스마스 선물을 "난민"으로부터 얻었습니다. :) 



이렇게 트라우마 강의를 마치고,

이제는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는 일만 남아있습니다.^0^

고고씽



허기진 배를 달래주기 위해 우리가 출동한 곳은 바로 



봉. X. 찜. 닭. 헉


다들 배가고파 맛있게 먹다보니 

순식간에 접시 바닥이 보였습니다.. ㅎㅎ 


여기서 우리의 힐링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 



이곳은 바로 볼링장입니다 꺅 


잠시 활동가들과 난민분들의 볼링 실력을 감상해보겠습니다! 







난민 분들이 물만난 고기처럼 

너무 즐거워 하셨습니다. 

 처음 해보는 볼링이라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다가도 

점점 시간이 지날 수록 자신의 스트레스를 볼링공과 함께 

던져버리셨답니다. 


난센 활동가들도 오늘만큼은 업무일 다 잊어버리고 

볼링공에 쌓아뒀던 스트레스를 담아 

힘차게! 

공을 던저버렸습니다. 


아직 채널 고정해주세요 여러분!!


우리가 즐겼던 스포츠 한가지 더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구    &   포켓볼 


당구 경험이 있던  난민분들은 볼링보다 당구를 더 좋아하셨습니다. 









매일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만 보다가  

난민분들과 당구 대결을 이루고 있는 

난센활동가들의 새로운 면모도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들 당구에 몰입하느라 저녁 늦게까지 남아있었답니다.. ^^;;; 


그 결과, 우리 모두가 

거의 100% 힐.링.을 할 수 있었다는 저~엄! 


처음으로 난민분들과 스포츠를 해보고 느낀점은 

"난민들이 스스로 이런 스포츠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볼링을 한 번도 쳐보지 못했고, 쳐볼 생각도 못했어요, 난센 덕분에 처음으로 해보니 너무너무 즐거워요" 

한 난민분이 볼링을 치면서 저에게 말해주신 내용입니다. 


애초에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우리가 같이 가자고 권유하고, 

같이가서 막상 해보니, 

즐길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같이 즐기다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 힐링 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힐링 된 마음으로 난민도 열심히, 활동가들도 열심히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습니다 ^^ 


이미 트라우마를 겪은 경험이 있었기에 다시금 일어서는 방법을 이제는 알고있습니다.  

상처는 열매를 맺는다고 하지요. 

가령 난민분들에게 또 우리 모두에게 힘든 일이 찾아와도 

그 지혜의 열매로 이겨낼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올 한해를 마무리 하기 위해 

어떻게 힐링 하고 싶으신가요?? 


또, 2012년을 마무리하면서 그동안 받아왔던 상처들을 지혜롭게 이겨낼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고, 

2013년도 난센과 함께 치유하고 힐링 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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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센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 며칠 간 난센 식구 중 일부 팀은 태국과 홍콩을 방문하고 돌아왔습니다~!




엥? 갑자기 왜 홍콩과 태국을 방문하였냐구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난센은 올해부터 법률 지원 뿐만 아니라


교육 및 양육, 심리지원, 취업연계 등의 서비스를 통합한 


사례관리 시스템으로써의 전환을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그동안 국내의 '홈리스행동', '안산westart글로벌아동센터' 등의 다양한 단체를 통해 


난센만의 사례관리시스템을 그려보았었지요..






그러나 난민만을 지원하며 사례관리를 하는 단체는 국내에 전무하기 때문에


난센의 사례관리 시스템을 그리는데 한계가 있어


결국 난센은 해외의 난민지원 단체를 방문하기로 결정,


 518재단의 후원을 받아 홍콩을 방문하게되었습니다!







그 여정에서 난센을 찾는 아시아 난민 중 다수를 차지하는 버마 난민들이 많은 태국도 들러


격변(?)하고 있는 버마의 정세에 따른 현지의 상황과 진실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왔답니다~








살포시 담아본 장장 10일간의 좌충우돌 여정 과정, 


여러분~ 함께 보러 가실래요? 후비고우~!




  


약 9시간의 비행을 거쳐 도착한 태국 현지는 


섭씨30도를 넘는 뜨거운 열기로 난센활동가들을 맞이하여주었습니다!







버마와 태국의 대표적인 국경지역 메솟



지난 번 난센 식구들이 방문을 하기도 하였었지요~


버마 난민들과 지원 단체가 많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인 메솟을 활동가들이 다녀왔는데요~


 






여러분도 언론을 통해 버마의 소식을 들으셨나요?




버마의 아웅산수치 여사가 가택 연금에서 풀려나고, 국회에 입성하는 등


버마의 정치 민주화가 올해 크게 진전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옴과 함께


태국 난민촌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도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이랍니다.








그것 뿐만 아니라 변하는 버마의 정세에 따라 


메솟 내의 단체들과 난민 사이에서의 입장도 천차만별,


결국 정말 버마는 변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메솟에 있는 버마 난민과 이주민들의 생각은 어떠한 것인지?



콕콕! 캐내어 한국을 찾는 버마 난민들을 효과적으로 조력 하기 위해 


다양한 단체를 방문하여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습니다.




  


버마에서 구금된 정치범들을 지원하는 AAPP(Assistance Association for Political Prisoners), 


태국으로 이주해온 버마노동자들의 그룹인 YCO, 



  


버마의 화합과 평화를 지향하는 8888항쟁 대학생들이 세운 정당 DPNS(Democratic Party for New Society)와 


메솟에 이주해 온 버마 여성과 아이들을 지원하는 SAW(Social Action for Women),


신디아 박사의 얼마 전 인터뷰로 한국 사회에 더 널리 알려진 Mae Tao Clinic,





그리고 카렌 난민의 수도라고 불리우는



멜라 난민캠프 등 까지를 방문하며 버마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돌아왔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아직 버마가 변화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지금 당장 돌아갈 수 없는, 그러나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줄어들어 


그들이 더욱 힘든 처지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태국에서의 일정을 마친 일원들은


난센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방문을 하기로 큰 결심을 하게 되었던


홍콩에 발을 들여다 놓게 되었습니다~!





화려한 야경으로 유명한 홍콩








그에 걸맞는 화려한 외관으로 난센 활동가들을 맞아주었던 숙소 '청킹맨션'




가장 저렴한 숙소를 택한 것과는 달리 


화려하고 높은 건물의 외관과 명품샵들이 즐비한 거리에 


활동가 일동은 어안이 벙벙 했는데요..




그러나 청킹맨션에 가까워 올 수록, 청킹맨션의 진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청킹맨션 앞의 수 많은 인도인, 아랍인, 베트남인, 아프리카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필리핀인, 중남미인, 중국인 들을 만난 이후였습니다.





   

청킹맨션에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다양한 식당들


(할랄음식 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상점을 지나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답니다)







(겉에서 본 화려함과는 다른 내부 환경)











사실 청킹맨션은 "작은 지구 마을"이라고도 불릴 만큼, 


홍콩 드림을 꿈꾸며 사는 외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배낭여행자, 난민, 미등록체류자, 도박꾼, 마약거래자, 홍콩주민 등


홍콩의 모든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맨션이라고 하였습니다.


심지어 저희가 방문할 'Christian Action'도 청킹맨션에 있었지요~







영화 '중경삼림'과 '타락천사'를 찍기도 하였던 청킹맨션은


1961년에 처음 지어져 당시에는 부자들이 사는 곳이었으나, 


중국반환이 가까워지자 부자들이 타국으로 이민가게 되면서 빈 집이 늘어나


다양한 국가에서 온 육체노동자들과 싸구려 여인숙, 인도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불과 몇년 전 까지만 해도 홍콩 현지인들도 두려워 하는 청킹맨션이었다고 하네요~









난센 활동가들은 덕분에 홍콩 다문화의 상징인 청킹맨션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답니다. 












홍콩에서의 첫날은 



홍콩에서 유일한 난민 법률 지원 단체인 'Hong Kong Refugee Advice Centre'와


 

 


HKRAC의 주 협력 사회 지원 단체인 'Christian Action Chunking Mansions Service Centre'를 방문하였는데요~







  


두 단체의 방문을 통해 홍콩의 난민 지원 시스템을 파악하고, 각 단체의 사례관리 시스템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장시간의 인터뷰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홍콩은 한국과는 달리 난민협약국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이며 


CAT(고문방지협약)에 준거하여 난민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고문방지협약 전문 보러 가기





하지만 CAT는 난민을 '보호'하는 것 보다 본국으로의 '강제송환'을 금하는 것에 더욱 초점을 맞춘 국제 협약이기에


사실상 난민들이 홍콩에서 정착하고 살아가기 위한 기반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었습니다.


(CAT에 준거하여 인정된 난민이 지금까지 딱 1명 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CA 난민지원센터의 부엌과 거실)




그래서 홍콩으로 오는 모든 난민들은 UNHCR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 받은 후 


제 3국에 정착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그 기한이 적게는 3년에서 많게는 20년도 더 걸린다는 것이었습니다.










20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다른 나라로의 재정착을 기다린다는 것은


홍콩난민들에게 또 다른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홍콩을 지원하는 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특히 둘째날에 찾았던 단체인 



ISSHK(International Social Service Hong Kong Branch)의 ASTC(Assistance to Asylum Seekers and Torture Claimants Project)는


80%이상의 예산을 정부를 통해 지원 받아 운영되고 있는 단체였습니다.







   

(ASTC의 내부 전경)



ASTC는 지금까지 약 5800여명의 난민 신청자를 대상으로 


그들이 제 3국에 재정착 하기 전까지의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취업교육, 언어교육, 의료, 의식주 지원 등을 통해 다양한 방면에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는데요~






(접수 순서를 기다리는 난민들)




총 48명의 사회복지사가 1사람당 130명 정도의 사례 관리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42개의 나라에서 온 132명 가량의 전문 통역 인프라가 ASTC내부의 직원으로써 언제나 함께 있으며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각각 싱글여성과 남성에게 지원해 주는 생필품 패키지)






그러나 ISS의 ASTC외의 다른 많은 단체들은 그들의(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비판하고


부족한 부분의 지원을 상호 보완하며 보충 지원하고 있었습니다.








그 외에 



홍콩이주민들의 정착을 지원하는 단체 중 하나인 HOPE,






그리고 난센과 비슷한 재정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사뭇 다른 운영구조로 꾸려진 Vision First 등을 방문하며 


다양한 사례관리 지원 사례와 체계의 영감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낯선 땅에서,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온 몸이 떨릴 만큼 초보활동가들에게 많은 긴장을 안겨다 주었지만




그 속에서 자신만의 열정과 신념으로 난민을 지원하고, 정착하는 과정을 


몸과 마음을 다해 돕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열정도 전해 받을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번 방문의 경험을 앞으로 어떻게 난센만의 튼튼한 사례관리체계로 적용하고 만들어갈 수 있을지 


어떤 난센의 새로운 도약과 변화를 일구어 낼 수 있을지



활동가들의 고민도 사뭇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과 관련한 더욱 자세한 사안은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다시 올리겠습니다!)




지난 10일간의 좌충우돌 탐방을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난센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앞으로도 난민인권센터는 난센만의 사례관리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변화해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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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난민과 함께 한 10월 월담


 



 이번 월담에는 개최 이래 가장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신 월담이 되었습니다.^^ 학부 수업이 없는 주간임에도 성공회대학교의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서 열띤 관심을 보여주셨고,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참석해 주신 많은 분들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__^



 

 

 



아시아 난민은 세계 난민의 3분의1

 

  이번 행사에서는 로넬 씨의 발표에 앞서 아시아 난민 발생 현황을 훑어 볼 수 있었는데요. 아시아의 난민은 4천만 명이 훨씬 넘는 숫자로 추산되는 전세계 난민 가운데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는 아직까지 다수의 국가에서 종식되지 않은 독재정권의 탄압 및 정치적 갈등 상황이 난민을 양산하는 조건이 되고 있었습니다.



  지역 별로는 그 패턴이 조금씩 다른데, 서남아시아(중동)의 경우는 전쟁과 테러(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의한 이유가 주되며, 동아시아의 경우는 중국 정부에 대해 자치를 원하는 선주민들의 난민화(티베트, 위구르 등)가 주된 경향이었습니다. 동남아시아의 경우는 독재정권 하에서 종족적, 종교적 소수자성(미얀마의 친족, 카렌족 및 로힝야족, 방글라데시의 줌머족, 스리랑카의 타밀족 등)이 탄압의 기제로 작용하면서 난민화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아시아 난민 중 팔레스타인(480만명), 아프가니스탄(280만명) 그리고 이라크(170만명)의 난민이 아시아 난민의 압도적인 규모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전세계 난민 4250만명 중아시아난민은600만명, 난민 3명 중 1명이 아시아에서 발생 (2011년 기준)  -출처:UNHCR

 

 



애매한 나의 소개

 

 로넬 씨는 어딜가서나 이름을 여러차례 얘기해야만 하는 애매한 나의 소개에 대한 이야기로 발표를 시작해 주셨습니다. 로넬 씨는 한국에서 난민으로서, 이주노동자로서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질 수밖에 없으며, 방글라데시에서도 줌머선주민이자, 차크마인이자 방글라데시인으로서의 여러 가지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한국인 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을 지닌 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로넬 씨의 정체성은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은 복잡한 느낌이었지요. 국가의 경계를 넘고, 문화적 차이를 넘나들며, 여러 가지 사회적 조건들을 수용하고 공존하려는 노력들이 이와 같은 풍부한정체성들을 간직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요?

 

 

 

 

로넬 씨는 보트피플 속의 난처한 사람들이나, 굶주리고 처량한 사람들만이 난민이 아니라 태국의 탁신 총리나 위키리크스의 줄리앙 어산지 같은 사람도 난민의 처지라고 하며, 정치적 망명자들처럼 자신의 신변을 위해 적극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난민임을 강조하셨습니다. 로넬 씨는 그 이유는 다르지만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고 정치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한국행을 선택하셨던 것이지요.







 

치타공 산악지대에서 벌어진 일

 

줌머인은 방글라데시의 선주민으로서 약 70만명이며, 그 안에는 12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줌머인은 방글라데시 역사에 있어 독자적인 문화와 종교를 가진 또다른 왕국임을 강조하셨습니다. 1860년에 시작된 영국의 식민지 지배 시기를 지나자, 1947년 파키스탄의 식민지가 시작되었는데, 그 기간 동안에 치타공 산악지대에 캅타이 댐 건설을 시작하면서 줌머인들은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1971년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방글라데시 정부는 치타공산악지대에 벵갈인들을 정착시키고, 선주민들의 토지와 재산이 강탈되는 것을 묵인하거나 지지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방글라데시의 줌머인에 대한 인종청소 정책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방화, 체포, 고문, 성폭력 등에 시달렸습니다. 1997년 평화협정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13번의 대량학살이 있었다면 그 이후에는 9번의 크고작은 학살이 있었습니다.

 


로넬 씨는 1986년 학생으로서 줌머인 자치권 운동에 참여하다가 방글라데시 군대와 정보원에 의해 체포되어 1989년까지 감옥에서 생활하셨습니다. 이 시기는 가장 많은 줌머인들이 대량학살과 인권유린에 시달리던 시기였고, 그래서 망명의 길을 떠나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로넬 씨는 감옥에서 풀려나신 후 다른 줌머인들처럼 인도 등 여러나라를 거쳐 망명생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2002년에 난민신청을 하셨습니다.







 

한국에서의 생활과 재한줌머인연대

 

로넬 씨는 한국에 들어온 후 가장 힘들었던 일 가운데 하나는 다른 난민들처럼 자신의 박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여러차례의 인터뷰에 시달렸고, 법무부로부터 난민신청을 거부당하셨던 것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사회적인 안전망이 부족한 가운데 노동을 해야 하고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과정들도 쉽지 않았습니다. 로넬 씨는 결국 난민불인정에 대해 다시 행정소송을 통해 최종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받으셨지요.



하지만, 인정 후에도 교육과 양육 등 전반적인 사회복지 혜택을 받기가 어려워 정착생활을 많은 어려움을 겪으셨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부모가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도 아이의 법적 지위가 등록되는데 수년이 걸려, 전혀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것 등이었습니다.

 

 

 


한편 이와 동시에 로넬 씨는 동료들과 줌머인의 인권·사회·문화적인 자조를 위해서 재한줌머인연대를 결성하였습니다. 재한줌머인연대는 자립뿐만 아니라 본국에서의 인권상황을 알리고, 한국사회와의 상호문화적인 교류를 하고자하는 노력이었습니다. 그리하여 현재에는 70여명의 줌머인들이 김포시 양현면에 함께 모여 살며, 작지만 소중한 줌머인 공동체를 만들고, 방글라데시 인권개선 및 한국사회에서의 정착과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줌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유창한 한국어로 진행된 로넬 씨의 열정적인 발표가 끝나자, 많은 분들이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먼저 한 분은 여러나라들 중 한국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하셨습니다. 이에 대해 로넬 씨는 한국이 불교 문화이자, 몽골계 인종이라는 환경적 친밀감이 큰 계기로 작용했고, 그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줌머인들이 거의 없었고, 알려진 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한국에서의 줌머인 인권운동에 뿌리를 내리려는 뜻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재일교포로서 참석하신 한 분은 재일조선인은 대부분은 국적이 있기에 난민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해 주셨고, 이와 더불어 이들을 난민으로 간주하는 것이 오히려 한국인으로 포용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밝혀주셨습니다. 이에 대해 사회자는 대부분의 재일교포는 국적(일본, 남한, 북한 중 하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국적이 없는 소수의 무국적 조선인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이들이 난민에 해당된다는 점을 언급하였습니다. 또한 그 분께서는 질문하셨습니다.



 

스스로를 한국인이라고 말하면서 아프지 않으셨나요?”



 

이에 대해 로넬 씨는 잘 살고, 똑똑한 한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랑스러운 문화를 가진 줌머인이 되고자 한다는 말로서 본인이 한국 국적을 가지고 살고, 많은 점에서 한국인의 생활을 배우고자 하지만, 내면에 줌머인으로서의 긍지와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가고 싶고 그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분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국적을 가졌지만, 혹은 같은 한인(같은 민족)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아무렇지 않게 동화되기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공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주민의 자치권

 

한국 사회내 방글라데시인과 줌머인의 관계가 어떠한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는데요, 로넬 씨는 직접적인 관계를 맺을 기회가 많지 않기에 특별히 관계가 좋거나, 나쁘지 않으며, 다만 본국에서 그랬듯이 사회문화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른 해외 줌머인들의 상황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줌머 난민들 중 프랑스에 사는 사람들이 제일 많고, 캐나다, 미국 등지에서도 거주하고 있으나, 실제 통계가 존재하지 않아 정확한 분포는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셨습니다.



 

줌머인의 자치를 주장하는 이유가 다수민족으로 편입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인지, 또는 주류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려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로넬 씨는 한 나라 내에서 특정지역(치타공)이 그 자신의 독립적인 지위를 누리길 원하는 것이며, 이것은 중앙정부가 직접적으로 간섭하는 것에 반대하고, 줌머인이 스스로 살고 있는 지역의 자치를 해야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지면에 모두 소개하지 못한 다양한 질문과 토론으로 월담행사는 풍성하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월담에서는 여러 가지 박해와 정착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질적인 민족과 문화를 지닌 사람이 낯선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한국인’, ‘한국국민들이 어떻게 공존하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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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난민과 함께 한 '9월 월담' 후기

 



 

9월 20일 해질녁부터 시작된 월담은 처음에는 다소 적은 인원이었지만, 열기가 무르익어 가면서 많은 분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워 주셔서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밤늦게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월담에서 발표를 해 주신 우전룽 씨는 200811, 중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난민지위판결(대법원)을 받은 중국 난민 다섯 명 중의 한 분입니다. 우전룽 씨는 중국에서 오랜 기간 동안 민주화를 위해 활동을 해오시다가 정부의 탄압을 피해 한국으로 건너오셨습니다. 그동안 난민의 이야기가 박해로 인한 고통과 생활의 어려움 중심이었다면, 우전룽 씨의 이야기에서는 정치적 신념과 가치를 지키고, 삶의 주체로서 살아가고 있는 난민의 존재를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참가자들이 중국정치 및 사회, 마오쩌둥, 한국의 민주화 등에 대해 다양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가 되기도 했지요.





 

우전룽 씨는 젊은 시절부터 63세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사다난한 생애사를 통해 다양한 경험들을 들려 주셨습니다. 우전룽 씨는 젊은 시절, 군대의 정치교관이자 공산당 당원이었지만, 중국이 정치적으로 억압되어 있음을 느끼고 이를 비판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이 발각되는 순간 그의 인생은 끝이었기에 작성한 원고를 고향 땅 밑에 묻어 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글을 한 번쓰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었기에그 후로도 2002년까지 800만자, 30권의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중국에서는 단 한 글자도 발표할 수 없었지만요. 우전룽 씨는 중국에 있었던 2002년까지도 정부에 비판적인 내용의 글을 출판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일은 사상죄비방죄로 처벌당하기에 문자옥이 존재했었는데, 이것은 현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며 중국의 현실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자신의 이론과 사상을 표현하고, 알리기 위한 자유를 찾아 이 곳 한국에 오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쓰셨던 필사본 책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한국에 입국할 때 들고 오지 못했지만 나중에 인편을 통해서 가져올 수 있었답니다.



우전룽 씨는 저작활동만을 한 것이 아니라 89년 천안문 시위가 일어날 당시 고향인 센양시에서도 벌어진 시위에 참가하였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시위를 주도했었는데, 시위를 비판하는 다른 시민의 주장을 듣고 있을 수가 없어 학생들의 시위를 옹호하며 연설을 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지지를 받으셨습니다. 물론 이 일로 인해 그는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갔고고향에 피신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 후 저술활동을 계속 하시며, 한편으로는 비밀리에 민주화 운동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 활동을 모색해 오던 중 중국공안의 감시가 심해지자, 등윤비 씨와 함께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200211월 한국 오신 후에도 그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중국 민주화 운동 조직의 한국지부에 가담하고 이끌며 한국에서 중국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천안문 사건 14주년을 맞아 주한중국영사관 앞에서 중국 공산당 일당체제에 반대하는 시위를 감행했습니다. 2005년에도 같은 장소에서 독재를 없애고 국민에게 정치를 돌려주자는 구호로 시위를 진행해 해외에 그들의 존재가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저희 활동을 통해 중국에 민주의 씨앗이 뿌려졌다고 생각합니다. 아직은 눈에 보이지 않게 땅속에 묻혀 있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싹이 트고 꽃을 피며 열매가 맺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 이후에도 그는 2009년 동북아 집단학살 종식 국제대회, 2012년 파룬궁 수련생에 대한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범국민대회 등에 참가하며 꾸준하고 일관되게 자유와 민주주의의 신념을 실천해 오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전룽 씨는 한국에 있으면서 글을 쓰는 자유를 얻었지만생활고라는 문제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의 특별한 직업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처럼 돈을 벌 수 없어 생활 자체가 어려움이 되었습니다. 한국지부 조직에서 주었던 생활 보조금이 사라지고 난 뒤, 그는 현재까지 동사무소에서 지급하는 기초생활 보조금으로 생활을 해오고 있지만, 그 돈으로는 방세, 식비, 인터넷과 전화비용 등을 내기에도 빠듯하기에 여전히 생활은 힘겹습니다.

 

 


발표를 듣자마자 한 참가자가 질문을 했습니다. “만약 중국이 민주화가 된다면 돌아가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에 대해 그는

 

저는 지금 중국으로 돌아가면 아무런 희망이 없기에 갈 수는 없는 처지입니다. 하지만, 제가 중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 날은 민주화가 된 이후가 아니라, 민주화 운동이 시작되는 때일 것입니다. 중국이 민주화의 물결이 일어난다면 저는 당장 중국으로 가서 그 물결에 참가할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의 대답 속에서 우리는 난민의 삶이 단지 박해와 두려움을 피해오는 과정만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삶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국과 고향에서 잃어버린 가치와 자유를 되찾는 그날을 꿈꾸는, 희망이 가슴 안에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난민이자 이주민으로서 한국정부에 대해 느끼는 한계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대해 우전룽 씨는민주화 된한국에서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이곳에 왔지만, 6년에 걸친 난민신청 및 소송과정에서 자신의 진실을 한국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아 많이 힘드셨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당시 난민인정을 받기 위해 50여명의 중국인들이 신청을 했지만, 오직 5명만이 난민으로 판결받을 수 있었습니다. 큰 기대를 갖고 찾아온 한국 땅에서 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과정은 자신이 난민인지 의심을 당하는 일부터 시작되었으며, 기본적인 생활 자체가 어려웠기에 여러가지로 힘들었던 심경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함께 참가한 등윤비 씨의 경우는 중국에 있을 때 한국의 5.18광주민주화운동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큰 감동을 느꼈다고 하셨습니다. 독재정권에 맞선 민주화의 물결뿐만 아니라 20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정치체제를 바꾸고 민주화인사들이 권리를 회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지요. 그렇기에 우전룽 씨와 등윤비 씨는 한국의 민주화 모델이 자신들이 배워가야 할 모델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계셨습니다. “환심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진심으로 한국 민주화에 대해 훌륭하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 한국정부의 미래가 밝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시민사회의 미래를 의미한다는 단서를 달으셨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분들이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해 주셨습니다. 중국정부의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은 적절한지, 댜오위다오 섬 분쟁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한국에 오기 전과 이후의 한국에 대한 생각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현재 한국정부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등등. 일반 대중 매체나 뉴스가 전하는 쟁점들에 대해 중국민주화인사의 입장과 생각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고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다만, 시간이 무척 부족했기에, 이 많은 질문들을 깊이 있게 토론하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지요.

 

안면장애 때문에 열띤 발표를 하시면서 우전룽 씨는 하얗던 얼굴 피부가 발그스레 변하셨지만, 해맑은 웃음을 잃지 않고 우리들에게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한글교실에 참가해 오며 조금은 과묵한 모습을 보여주셨던 등윤비 씨도 그 날 만큼은 열정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전해주셨기에 저희는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받을 수 있었답니다.



 

아직까지 한국과 중국 두 정부간의 정치적 관계 등으로 인해, 중국난민이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입니다. 가족과 이별하고, 생활고를 홀홀단신으로 감내해야만 하기도 하며, 한국인들의 관심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한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자신의 신념과 강한 삶의 의지를로 살아오고 계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월담을 마무리하여 언젠가 우전룽 씨 일생의 소중한 보물인 6권짜리 필사본 책이 출간될 날이 조만간 오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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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빵따 2012/09/21 2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느끼는 바가 큽니다. 제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요.

    이 후기 만으로도 우전롱 씨의 우직함이 느껴집니다.

    존경스럽습니다.



여러분~ 'My Little Story Photovoice'프로젝트, 기억하시나요?








'My Little Story Photovoice'프로젝트는 Save the Children의 지원을 받아


 난민의 가족구성원과 공동체간의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부모교육 프로그램입니다^^






올해엔 줌머족 부모님들과 함께 6회기를 거쳐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데요~


 


한 주 한 주, 새로운 주제와 함께 사진을 통해 부모님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되고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설레이는 마음 안고 시작했던 포토보이스 수업이 마지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쏜살 같이 지나간 시간들에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동안의 시간들을 마무리하고 함께 회포를 푸는 시간을 가질까 합니다.






수업이 시작한 첫 째날은 돌잔치로 줌머족 분들께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대접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은 부족하지만 난센 식구들이 직접 요리를 준비해서 줌머족 분들과 함께 식사를 할까 합니다.




시간되시는 난센 가족 여러분도 오시어


함께 줌머부모님들과 소통하고, 식사할 수 있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일시: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오후 5시



장소: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 428-2, 2층 JPNK재한줌머연대 사무실







그 외 문의 사항은 02)712-0620, refucenter@gmail.com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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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성명>
현병철 연임재가, 국가인권위 죽이기 선언
이명박 정권은 반인권, 불통정권으로 길이 남을 것



이명박 대통령이 8월 13일, 현병철씨를 기어이 국가인권위원장에 연임 재가했다. 청와대가 오늘 밝힌 사유는 “그동안 제기된 문제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서 시간이 걸렸고 제기된 의혹도 일부 사실과 다른 부분도 있고, 업무수행에 큰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가 전부이다. 

청와대는 귀에 말뚝을 박은 것인가. 국민 무시도 이 정도일 순 없다. 현병철씨는 국민 83%가 반대하고 국회에서 최초로 인사청문경과보고서조차 채택받지 못했다. 국가인권위 내부에서도 90%이상이 반대했고 국제사회 우려 여론도 그 어느때보다 드높았다. 과연 무슨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기에 임명을 강행한다는 것인가!

결국 이번 결정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인권위원회 죽이기 선언이다. 당선자시절부터 국가인권위를 뒤흔들더니 결국 정권 말기까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정권의 권력감시를 해야 할 자리에 이 정권의 반인권 작태와 치부, 부도덕을 감추기 위해 청와대 말만 잘듣는 애완견을 앉히려는 것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 

긴급행동은 이번 결정을 강력 규탄하며 지금이라도 즉각 재가철회를 요구한다. 현병철씨는 임명된다해도 실제로 어느 국민에게도 국가인권위원장이 아니다. 국가인권위의 비정상적인 작동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이는 국민적 비극이며 국가적 낭비이다. 

올림픽처럼 국제인권사회에도 국격이 있다. 국민이 그나마 의지하고 세계적으로 추앙받던 국가인권기구를 이처럼 망가뜨리면서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지위를 기대한다면 큰 오산이다. 임명강행은 반인권, 불통정권으로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일이며 현병철 또한 이명박 정권의 불행한 말로와 같이 하게 될 것임을 경고한다. 

현병철 반대긴급행동은 현병철 연임에 반대했던 국민, 제 시민사회와 함께 이명박 정권의 행보를 끝까지 주시하고 심판할 것이다. 새누리당이 현병철 반대입장을 뒤집고 청와대에 함께 가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한통속으로 분명히 기억하고 국민에 널리 알려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인권무능 무자격 현병철의 자진사퇴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2012.8.13.

현병철 인권위원장 연임반대와 국가인권위 바로세우기 전국 긴급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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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2/08/17 04: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기요 난민단체분들
    한국인 인권이나 좀 어떻게 해보세요
    필리핀에서 한해 죽어나가는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리고 아프리카 난민 증가하면 한국 살곳 못됩니다
    인권단체분들 배불르려고 한국을 망하게 할려고 합니까?
    아프리카 에이즈 걸린 사람도 많은데 다 난민신청하면 한국의 미래는 어두워요
    정말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라는걸 난민단체 분들을 보면서 느낍니다

    • 더불어함께 2012/08/18 21:3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극단적 민족주의를 내포한 님의 글을 보고 지나칠 수가 있어야지요.. 다음에는 꼭 아프리카 분쟁지역에서 태어나셔서 해당국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주시기를.

    • 아딜 2012/09/06 09:01  댓글주소  수정/삭제

      언어도단입니다. 일부러 난민단체를 도발하려는 작태로밖에 보이지 않네요. 왜 난민단체에 한국인 인권 문제 해결을 요구합니까? 주소를 지나치게 잘못 찾으셨군요. 배부른다고요? 대꾸할 가치를 못 느끼게 하시네요.

"군은 국민에게 총구를 향한다."


1962년 쿠데타를 일으켜 버마의 독재자가 된 네 윈 장군. 1981년에 대통령에서 물러났지만, 여당의 당의장 직을 고수하던 네 윈 장군의 힘은 막강했다. 대통령은 허수아비였고, 네 윈 장군을 중심으로 한 군부의 통치는 계속됐다. 


위의 끔찍한 멘트는 1988년 8월 8일 평화적인 민주화시위가 버마 전국으로 확산되자, 네 윈 장군이 내뱉은 한마디였다. 위의 말처럼 네 윈 장군이 이끄는 국가평화발전위원회 중심의 군부 정권은 시위참여자들을 가혹하게 탄압했고, 민주화세력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1988년 무렵, 대학생들은 공작새가 새겨진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을 할 때부터 공작새는 자유와 인권과 독립의 상징으로 통했다. 군부는 총격을 가했고, 당시 통용화폐의 일부를 강제로 빼앗는 등 군부 정권의 경제적 탄압까지 짊어졌던 버마 국민들의 분노는 이로 인해 폭발했다. 1988년 8월 8일 아침 8시, 대학생과 불교 승려, 시민이 모두 뭉쳐 시위에 참여했고, 군부의 총구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8888 항쟁은 결국 진압됐지만, 버마의 민주화를 갈망하던 버마인들의 염원은 한 사람을 정치 현장으로 불러냈다. 바로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 치 여사였다. 항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아웅산 수 치는 그해 8월 26일에 거리로 나섰다. 사망한 시위참여자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 앞 수십만 버마 국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아웅산 수 치의 기나긴 투쟁이 시작된 것이다.



유명 중국배우 양자경이 아웅산 수 치 여사 역으로 출연한 <더 레이디>의 한 장면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버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세상으로 나오게 된 계기이기도 하지만, 독립투쟁에 이은 군부독재세력을 향한 민주화 운동, 대규모 거리시위 등 어디선가 많이 보던 모습이다. 버마의 모습은 우리의 옛 모습을 닮았다.  


지난 8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프란치스고 교육회관에서는 "버마 8888민주항쟁 24주년 기념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버마 NLD(민족민주동맹-수치 여사가 이끄는 버마의 정당) 한국지부장 내 툰 나잉씨가 패널로 참여했다. 그 역시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들이 누구보다 버마를 잘 이해할 것"이라며 버마 민주화를 위한 한국 시민사회의 연대를 촉구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사회의 어두운 이면에 대해서도 따끔한 지적을 아끼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 민주화세력들보다 버마에 장기집권했던 독재정부와 아주 친했다. 정부 관계자들이나 친정부세력만 한국의 정부·대학교에서 경험과 기술을 배워갔다. 앞으로는 비정부기관·소수민족들도 한국의 좋은 경험과 기술을 배워 버마가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잘 이룰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다음은 내툰나잉씨의 토론회 참여 발언 전문이다. 


한국에 연대를 바란다

                                                      

 내 툰 나잉



한국은 버마와 비슷한 역사, 그리고 현재 버마가 고통 받고 있는 것처럼 군사독재라는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마의 현 상황을 누구보다 한국인들이 잘 이해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 시민사회에 다음과 같이 요청하고 싶습니다.


1. 한국 정부는 버마정부에 아직도 감옥에 수감되어있는 500명 이상의 정치수감자의 석방을 요구해주기 바랍니다. 단 한 사람의 수감자라도 우 테인 세인의 민주정부 통치권 안에 있어야 합니다. 


2. 한국정부는 국제사회와 함께 책임감을 갖고 주의 깊게 버마의 민주개혁을 지켜보고 버마의 민주화과정에 좀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랍니다.  


3. 한국국회와 진보적 민주정당은 버마국회의원들을 한국에 초대하여 자신들의 경험과 민주적 가치를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서로 협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4. 한국시민기구는 버마의 동지들과 함께 버마시민사회, 버마의 미래를 보장할 훌륭한 통치를 강화하는 데 협력해주시기 바랍니다. 


5. 우리는 버마의 정치와 민주개혁을 지원하고 사회 복지를 향상시킬 한국정부차원의 개발원조와 그 외 다른 종류의 원조 그리고 친 민주적 투자가 필요합니다. 한국의 투자는 투명함과 책임, 직업창출, 인권과 노동권, 환경문제 등을 고려해야 합니다. 


6. 한국의 학계는 우리들이 배울 민주화와 경제발전 문제, 교육 개혁, 법조항의 입법방법과 과도기극복방법 등의 경험을 보여주는 책을 제공해주시기 바랍니다. 


7. 한국시민사회는 버마 정부 관계자뿐 아니라 버마 젊은이들에게도 장학금, 역량강화와 인적자원개발 프로그램을 제공해주시기 바랍니다.  


8. 한국 언론은 현재 버마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버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한국인들이 좀 더 잘 이해하도록 보도해주시기 바랍니다.


9. 한국사회는 버마현지의 활동가들과 같이 버마의 민주화과정을 증진하기 위한 공동의 전략적 계획을 세워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201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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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소송으로 인정된 난민 58명이 주는 의미


1997년부터 2012년 5월말까지 총 4516명이 난민인정신청을 하였고 290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이 중 단 154명이 법무부에 의해서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법무부에 의한 난민인정율은 단 3.4%이다. 신청자 수에 비해서 인정율이 지나치게 낮다. 반면 2005년부터 2012년 5월말까지 난민인정불허처분을 받은 난민신청자 중 644명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58명이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소송건수 대비 9%에 이른다. 법무부가 부당한 행정처분으로 인정받아 마땅한 난민 58명이 행정소송이라는 또다른 절차를 거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 자료 출처 : 법무부 정보공개청구 결과

- 필자 주 : 난민신청 수 총합에는 1994~1996년 사이 난민신청자 11명의 수가 반영되면서 4,516명으로 계산되었습니다.




<난민불인정처분 관련 행정소송 연도별 건수>

 2005

 2006년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5월

 총합

 7

   21

 22

 15

 223

 170

 62

 124

 644

* 총644명 중 58명 인정                                                                                                                           - 자료 출처 : 서울행정법원



법무부는 이에 대해 644명 중 나머지 행정소송 패소자 586명의 수치를 근거로 "행정소송 제기자 중 91%의 거짓난민에게 올바른 행정처분을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법무부 국적난민과는 이미 "근로를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체류연장을 하기 위해서 난민인증을 신청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말이 정답일까? 


다음 조항을 살펴보자.



법무부장관은 대한민국에 있는 외국인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난민의 인정에 관한 신청을 하면 심사를 거쳐 그 외국인을 난민으로 인정할 수 있다. - 출입국관리법 제76조의2 제1항



출입국관리법은 이처럼 법무부 장관에게 난민 인정에 관한 재량권을 주고 있다. 한국은 난민협약에 가입하면서 협약의 모든 사항에 대해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비준(이에 대해 법률적으로는 '유보가 없다'고 표현한다)"했기 때문에 난민협약에 규정된 난민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난민협약에 없는 근거를 가지고 난민에 대한 보호를 거부하는 것 역시 국제법 위반이다. 가입한 국제법은 헌법에 의해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가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법을 어기는 것이다. 


난민협약상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에 대해 규정된 사항은 다음과 같다.



(a) 평화에 대한 범죄, 전쟁범죄 또는 인도에 대한 범죄에 관하여 규정하는 국제문서에 정하여진 범죄를 범한 사람

(b) 난민으로서 피난국에 입국하는 것이 허가되기 전에 그 국가 밖에서 중대한 비정치적 범죄를 범한 사람

(c) 국제연합의 목적과 원칙에 반하는 행위를 행한 사람                                                                               -난민협약 제1조 제F항



물론, 법무부는 다음 조항을 이용해 난민불인정처분 권한을 행사한다.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 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및 이들 사건의 결과로서 상주국가 밖에 있는 무국적자로서 종전의 상주 국가로 돌아갈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종전의 상주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원하지 아니하는 자. -난민협약 제1조 제A항 2



"면담을 해보니 위의 사항에 해당되지 않는 자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라는 것이, 법무부가 난민불인정처분을 하는 주된 근거였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법무부가 이 근거를 활용해 난민불인정처분을 했다가 행정소송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이 58명이나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난민으로 인정해야 할 사람에 대한 근거로 활용돼야 할 국제협약 상의 조항이 난민불인정처분을 남발할 법적 근거로 악용되는 측면이 더욱 강했다는 의미다.


난민인정자는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고, 체류 자격 유지와 기초생활수급 등의 복지 혜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미등록체류자의 불안한 신분으로 전락하거나, 외국인보호소 구금 혹은 본국으로의 강제출국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난민지위신청자에게 있어 본국으로의 강제출국이란 죽음 혹은 그에 준하는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지위신청자에게 있어 난민불인정이란 '사형선고'에 준하는 위험으로 여겨질 수 있다. 다른 분야에서의 행정처분과는 그 질적 효과가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근로를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체류연장을 하기 위해서 난민인증을 신청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면서 58명을 외면한다면, 법무부는 자신들이 하고 있는 난민 업무에 대해 기본부터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한 사람의 생명과 자유, 나아가 한 가족의 생명과 자유가 달려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악용에 대한 의심보다 인권친화적 신뢰부터


58명이 주는 또다른 의미는 행정부가 해야 할 역할을 사법부가 보완하며 대신 했다는 사실이다. 법무부의 지나치게 경직된 난민인정율로 인해 난민불인정처분에 대한 행정소송의 건수가 지나치게 늘었다는 사실도 함께 돌아봐야 한다. 법무부가 보다 신중한 판단과 함께 인권친화적 신뢰를 우선으로 둠으로써, 인정율을 보다 높인다면 행정소송의 건수도 감소해 기회비용의 낭비도 막을 수 있다. 


난민인정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봐야 하는 것은 난민제도의 본질이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근로를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가 체류연장을 하기 위해서 난민인증을 신청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의심의 눈길보다, 사법부가 아니었다면 58명의 난민이 생명과 자유에 중대한 위험을 느꼈을 것이라는 사실을 더욱 깊이 받아들어야 한다. 생명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부터 사람을 보호하는 것은 국경의 장벽을 넘어선다. 그만큼 막중한 업무라는 뜻이다. 법무부는 이 막중한 업무에 대한 인권친화적 고민과 함께 보다 올바른 난민인정 처분을 할 수 있도록 역량을 쌓으면서, 신중한 판단을 바탕으로 한 처분을 내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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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12/23 1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난민인권센터 2012/12/24 1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적 감사합니다. 통계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총합에는 1994~1996년 3년간 난민신청자 11명을 추가로 계산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본문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하늘을 날던 용돌이도 너무 더워 여의주를 놓치고 말았다는

 

어느 여름 날,

 

7월 월담을 진행했습니다.

 

난민분들과 회원분들 그리고 난센 사무국과 함께

 

다문화 극단 의 작품으로 제14회 서울 변방연극제 공식 초청작인

 

'미래 이야기'를 관람하기로 했는데요,

 

연극만 보고 헤어지기에는 아쉬워서 몇 시간 일찍 모여서 서울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낮의 여름 더위도 피하고 서로 도란도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

 

그리고 우리 모두 서울과 좀 더 친숙해 질 수 있는 장소가 어딜까아~요?

 

여러분, 머릿속에 떠오르는 서울의 명소가 있으신가요?

 

이번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가 보기로 했습니다.

 

 

 

각자의 일정이 있기에 평일 낮에 모이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무엇보다, 바쁜 일정을 쪼개어 참여해 주신 난민분들이 계셨기에

 

더 의미 있는 월담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더운 날씨덕에 월담을 기획하면서도 여러 걱정들이 있었습니다.

 

박물관 내부가 시원해도 참여자 분들이 쉽게 지치진 않을까,

 

혹시 너무 지루하진 않을까,

 

서로의 소통을 위한다는 처음의 취지가 그저 형식적인 행사에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우려와 기대를 함께 품고 시작했던 7월의 월담.

 

하늘빛, 초록잎 푸르른 월담 속으로,

 

함께 가보실까요?

 

 

 

 

 

"뜨아~ 여의주를 놓쳤어!"

 

용돌이와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고고고!

 

 

 

 

7월 18일 오후 2시.

 

다함께 국립중앙박물관 안의 카페테리아에 모였습니다.

 

월담 기획팀의 박예지 씨께서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고 계시네요.

 

 

 

 

                                                           

 

 

 

 


 오늘의 하이라이트는 짝꿍 정하기!

 

같은 모양의 도형을 뽑은 분들이 짝꿍이 되고,

 

저녁 식사 시간에 서로를 대신 소개해 주기로 했습니다.

 

 


 

 

                                                           

박물관 관람 내내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시던 가람씨와 A씨

포도넝쿨과 귀여운 어린이들이 새겨져 있는 고려청자

B씨와 통역자원봉사자

분께서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계십니다

 약간 기우뚱해서

 소박한 달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다른 일행들이 다리가 아파 앉아서 쉬는 동안에도

 

각 시대의 유물들을 유심히 관람하시던 D씨.

 

필기도 열심히 하고 계시네요 ;)

 

 

 

 

 

          

 

 

짝꿍과 함께, 즐거운 박물관 관람 시간.

 

부처님 얼굴엔 미소가 서려 있고요 ^-^

 

 

 

 

 

 

1:1 농구 시합 중인 용 두마리.

 

 "크아악~ 얼렁 패스하람 말야~크아악~"

 

 

 

 

 

 

경천사지 10층 석탑입니다.

 

이 곳에서 가장 긴 시간을 머무르며 감상하시더군요.

 

 

 

 

 

 

단체 사진 한 장 살~짝, 찍어주고요.

 

 

 

 

 

자, 이제 서울 변방 연극제가 진행되고 있는 문래동으로 가 볼까요?

 

출발~!

 

 

 

 







월담 서울 나들이의 마지막 코스인 다문화 극단 샐러드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 문래예술공장을 찾았습니다.


연극은 '난민'과 '경계인'의 문제를 재조명하여 <미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는데요~




연극이 토크콘서트와 같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런 형식의 공연은 처음이라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기대되고 궁금했습니다.







극장에 들어선 순간,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는 좌석 분위기가 


샐러드만의 새로움을 한층 보여주는 것 같았어요!







연기를 하시는 분들도 관람하시는 분들과 함께 섞여,


 그 내용이 더욱 생생히 다가오는 샐러드의 공연이었는데요~







공연은 2012년 4월 25일 서울역에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며 시작되었습니다. 




그날은 샐러드 극단이 서울역에서 '난민'을 주제로하여 게릴라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로 하였던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도 서울역의 중앙모니터에서 북한 혁명 80주년 기념일을 맞아 


북한이 '3~4분내에 남한을 초토화 하겠다'는 대남 방송을 내보내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이 땅이 언제든지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라는 사실과,


그로 인해 그들 스스로가 '난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든지 '난민' 이 될 수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난민'은 타인의 이야기가 아니였던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이 땅에는 '이름도 얼굴도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부에 속한다는 것'과 '외부에 속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주제에 대해 매우 밀착해 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계속 발전시켜야 하며, 무엇이 진짜 문제점인지, 무엇이 진짜 희망인지 지켜봐야 한다."






그렇게 샐러드의 공연은 그들의 이야기를 하나, 둘 풀어가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우리는 첫 순서로 연극을 통해 '경희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경희는 붉은색의 두려움과 공포가 선연한 가면을 쓴 채 무거운 짐을 끌며 무대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짐 속에서 허겁지겁 퍼즐을 빼 맞추기 시작합니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   ..님 ..ㅏㄴ세'



약간 미친 사람처럼까지도 보이던 '경희'는 재일교포로 살아가며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습니다.


그녀는 일본에도 북한에도, 남한에도 속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외쳤습니다. 비명을 질렀습니다.


'드디어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라고요.





하지만 그 외침 속에서 환희보다는 너무나 큰 슬픔과 절망을 느꼈습니다.


바닥으로 고꾸라진 메달, 흩어진 조선학교의 추억의 물건들 사이에서 그녀는 서 있었습니다.







어디에서 왔건, 어느나라사람이건


그저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것 아닐까


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속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이어가던 중



'복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북한에 남기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였습니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내 고향에 가거들랑
그리운 어머님께 보고픈 어머님께
안부나 전해다오

흘러가는 저 구름아 내 고향에 가거들랑
그리운 어머님께 보고픈 어머님께
소식이나 전해다오 





'복주'씨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졌던 노래였습니다.






이어서 객석의 손님, 연기자들과 함께 이야기 하는 시간이 지나가고~








마지막, 공연의 하이라이트인 퍼포먼스를 

서울역과 일본의 토호쿠 , 태국의 메솟지역에서 생중계 하여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역에서는 샐러드 극단의 단원들이,

일본 토호쿠에서는 조선학교의 학생들이,

메솟지역에서는 사무터초등학교의 버마난민 학생들이,

함께 

퍼포먼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장에서는 재한몽골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각자의 봉지에 꿈을 적어 


격렬히 펄럭이기도, 고요히 걸어가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이 마치 인생을 걸어가고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퍼포먼스의 막바지에 이르러 


그들은 봉지 속으로 들어갔고 그것을 결국 뚫고 나왔습니다.


또 누군가는 뚫지 않은 이도, 뚫지 못한 이도 있었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꿈이 쓰레기봉투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힘차게 펄럭이며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며





그렇게 저물어간 7월의 월담, 서울나들이었습니다.








사진, 글 일부 출처
극단 샐러드 홈페이지, http://www.salad.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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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사진 좋아하시나~~요??

 


  렌즈너머의 세상엔 신기한 것 투성이죠~!


  늘 익숙하게 지나쳤던 것들도 새롭게 다가오곤 하는게 사진의 힘인 것 같습니다.






  지난 해에 진행되었었던 'My Little Story Photovoice'프로젝트, 기억하시나요?


  사진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며 이해하고,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었지요.




  올해에도! 지난주 토요일(14일)부터 포토보이스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포토보이스 수업에 열중하고 계신 줌머족 부모님들>





이번 프로젝트는 김포시 양촌면에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는 줌머공동체의 부모님들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요~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줌머공동체는 한국에 정착한 시간이 오래된 만큼, 막 2세대의 아이들이 출생하고 있습니다. 



후루루~

 까꿍~!!!!




그런 그들에게 아이를 키우며 받게 되는 양육스트레스 또는 가족관계에서 생기는 여러가지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한 돌파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난센은 올해에도 포토보이스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프로그램은 참가하시는 부모님들이 적극적인 주체가 되어서, 


'자기정체성 찾기'에서부터 '가족관계와 나의 미래찾기'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사진을 통해 소통하게 됩니다. 






올해에도 나누미 김승균, 김지하 선생님께서 포토보이스 프로그램을 위해


수고해주시기로 하셨습니다 !!!















이번 프로젝트는 작년과 달리 이야기가 담긴 '가족앨범'을 만들게 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방법으로 자기 자신과 커뮤니티를 표현하고, 


또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감하며 치유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함에 그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들이 꼭 닮았죠? ^^


 어떤 특별한 가족앨범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할까요? 


난센도 기대가 된답니다. 이야기가 담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가족 앨범!




앞으로 총 6주간의 과정으로 펼쳐질 줌머족 분들의 가족앨범 만들기 프로젝트!


여러분도 어떤 앨범이 나올지, 함께 지켜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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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1 2012/07/23 1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웅!! 올해도 어김 없이 하네요. ㅎㅎ 이번에는 줌머공동체의 부모님들과 함께하네요. 몸은 없지만 마음만은 함께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ps. 나눔아 삼촌이 보고싶다.ㅋ)

난민인권센터는 법무부를 상대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습니다.


① 2010년부터 2012년 6월말 현재까지 난민신청자 중 소재불명을 이유로 종결 처리된 건의 연도별 현황

② 2010년부터 2012년 6월말 현재까지 난민신청자 중 소재불명 처리 후 재신청한 건의 연도별 현황

③ 2010년부터 2012년 6월말 현재까지 난민신청 중 철회한 건에 대한 사유별 현황


지난 12일자로 정보공개청구 결과가 도착했습니다.


1. 난민신청자 중 소재불명을 이유로 종결 처리된 건의 연도별 현황

(단위 : 명)


 총계

 2010

 2011

 2012.06

 267

 211

 27

 29




2. 난민신청자 중 소재불명 처리 후 재신청한 건의 연도별 현황

(단위 : 명)


 총계

 2010

 2011

 2012.06

 54

 9

 36

 29




3. 난민신청 중 철회한 건에 대한 사유별 현황

(단위 : 명)


 구 분

 총계

 2010

 2011

 2012.06

 230

 65

 90

 75

 출국

 194

 54

 74

 66

 체류허가

 9

 2

 3

 4

 기      타

 27

 9

 13

 5


난민신청자의 가장 큰 어려움은 생존의 불안정


이 통계에서 의미있는 현실을 짚어내려면, 난민신청 철회사유에 대한 통계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2년 6개월 동안 230명이 철회를 했고, 그 사유 중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 사유는 바로 '출국'이었습니다. 주거나 의료 등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필요한 기초조차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난민신청 기간은 약 2-3년 동안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난민 인정 여부를 떠나 더이상 한국에서의 불안한 삶을 버티지 못하고 출국했다는 것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곧 생존의 불안정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체류의 불안정은 잦은 연락처 변경으로 이어집니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안정조차 누리지 못하면서 사는 곳과 연락처는 자주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본인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난민신청단계임에도 한국의 법 체계와 난민신청과정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현실과 겹쳐 '소재불명'으로 처리되는 난민 신청자가 늘어납니다. 연락처가 바뀌었음을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알려야 함에도 이를 생각하지 못한채 무작정 난민신청 결과만 기다리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소재불명'으로 종결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3개의 통계 중 2012년 6월 현재까지의 상황을 나타낸 통계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보면, 6월까지의 수치를 2배로 했을 때 2012년 한 해의 수치가 예상될 것입니다. 산술적으로 진행된다면 소재불명 처리 이후 재신청 건의 수와 철회 사유 중 핵심인 '출국'에 대한 건의 수 모두 지난 2년간의 수치를 뛰어넘을 것임이 쉽게 예상됩니다.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중요한 이유는, 지나치게 긴 난민심사과정에서의 문제점은 결국 한국 정부의 난민심사정책은 '시간끌기'로 자진출국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가 싶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입니다. 약 2~3년 가까이 진행되는 난민심사과정이 이어지면서, 난민신청자는 정작 보호받아야 할 중요한 시간을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려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2~3년 후 심사가 종료될 시점에서 본국에서의 박해의 위험이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결국 '난민불인정 처분'이라는 통지서를 받을 빌미로 작용해, 2~3년이라는 귀중한 시간을 고통스럽게 낭비하는 일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우주전쟁>의 한 장면


난민인권센터는 난민인정 현황과 각종 사유에 따른 변화가 반영된 통계치를 기반으로 한국의 난민 관련 현실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속적인 문제제기의 본질은 물론 한 곳으로 향합니다. 난민 신청자가 살아 숨쉬는 인간임을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반영해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주거와 의료, 교육 등을 보장받을 수 있게끔 해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신속하고 정확한 난민지위 신청 시스템을 만들어나감으로써 난민신청자가 지나친 정체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난민인권센터는 끊임없이 그 사실을 강조하며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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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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