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인정됐지만... 나는 여전히 고립돼 있다"

[7월 사람 UP] 카슈미르 난민 S로부터 듣는 한국에서의 삶
* 이글은 오마이뉴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사람UP 코너에 최초 기고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전쟁을 피해 제주로 찾아온 예멘 난민들이 또 다른 전쟁에 휘말렸다. 마치 난민이 국민의 적인 것처럼, 곳곳에서 화살 같은 말들이 따갑게 날아온다. 다행히 따뜻하게 손 내미는 사람들도 있어 우리는 서로 이해할 시간들을 얻고 있다. 

우리가 이들을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난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리 곁에서 함께 지내고 있었다. 국민도 난민도 '대한민국'을 함께 살아내고 있다. 5년 전 카슈미르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고군분투하며 살고 있는 S님을 지난 18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인터뷰했다. S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차별경험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기자말

"천국이었던 카슈미르, 죽음과 공포의 계곡으로 변했다"

adad- 한국사람들에게 카슈미르는 다소 낯선 나라이다. 어떤 곳인지 이야기해 달라.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점령된 분쟁지역이자 세계 제일의 중무장 지대 중 하나이다. 1947년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할 때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카슈미르는 자기결정권을 가진다'는 유엔 결의에 따라 독립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지만,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영토가 나뉘어 편입되었다. 

이후 카슈미르인들은 지난 70년 동안 인도와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 투쟁해왔다. 그 과정에서 지구의 천국으로 불렸던 카슈미르는 파키스탄과 인도의 잔혹한 폭력으로 인해 죽음과 공포의 계곡으로 변했다. 무고한 카슈미르인들은 하루 걸러 인도와 파키스탄의 잔인하고 악랄한 군대에게 고문, 살해, 납치, 강간당하기 때문이다. 카슈미르인의 기본권과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박해와 고문, 살해, 협박을 받기 때문에 그곳을 탈출할 수밖에 없다."

 S님과의 인터뷰모습
▲  S님과의 인터뷰모습
ⓒ 난민인권센터



- 카슈미르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말해 줄 수 있나?
"나는 정치적 배경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카슈미르의 해방 운동을 했던 2000년에 첫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예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지와 폭력, 억압, 사회 부정의, 불안정과 싸웠고 카슈미르의 완전한 자유와 독립을 목표로 활동했다. 나는 카슈미르 아와미국민당의 당원이었는데, 2008년 당 대표자로 선출된 후 종횡무진으로 활약했고, 당 대표자로서 국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었다. 당을 초월하여 초당파 국민주의자 동맹(APNA)을 결성하고, 민중의 기본권을 획득하기 위해 정부에 항의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불법점령에 항거하는 시위를 조직하기도 했다.

2013년에 매우 중요하고 잘 알려진 국민주의자들 중 한 명이 파키스탄 군사기관, ISI에 의해 살해당했다. ISI는 미국의 국가정보부(CIA) 같은 곳이다. ISI는 초당파 국민주의자 동맹 의장을 살해했고 그의 죽음을 의문사로 처리했다. 우리 카슈미르인들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 파키스탄 군대에 저항하는 시위를 시작했다. 우리는 ISI를 상대로 소송을 하지 않는 대신 '정의'를 요구했지만 오히려 경찰은 우리를 고소했다. 

우리는 매일 평화적으로 시위했지만, ISI는 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들에게 감시와 위협을 당해왔고 몇 차례 체포된 적이 있었다. 경찰이 나를 상대로 사건을 조작하고 체포영장을 발급한 이후 내 이름은 공격대상 명단에 올라갔다. 나는 그곳에서 살아남거나 은신하는 방법 밖에 없었고 결국 카슈미르를 탈출하기로 했다. 카슈미르에 남는 것은 내가 죽거나 평생 동안 감옥에서 썩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 카슈미르에서 한국까지 오게 된 여정에 대해 말해 달라.
"나는 먼저 국경을 넘어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다. 매우 두려운 여정이었다. 대략 한 달간 매일, 매 순간마다 내가 과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한 달 동안 두 다리로 힘겹고 거친 산을 넘으니 마침내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한 달 동안 갈증과 굶주림, 고통, 두려움 그리고 고생을 경험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단 한숨도 쉴 수 없었던 여정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했을 때에는 또 다른 고단한 여정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투쟁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안정적이고 안전한 국가를 찾는 일이었다. 뉴질랜드를 목적지로 삼았으나 뉴질랜드 비자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마침 어떤 한 사람의 도움으로 나는 위조 여권을 만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를 따라가 태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의 계획은 태국을 거쳐 한국에 입국하여 2주 간 머물고 뉴질랜드로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인천공항에서 체포되었고, 외국인보호소라 불리는 감옥에 감금되었다. 안전만을 위해 도망쳐 왔지만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길, 그 모든 것이 생소한 나라의 외국인보호소에 구금되었다.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오로지 감옥 안에 나 혼자 남겨졌다. 하지만, 적어도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만족했으며 머지않아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었다."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왔는데, 2년 간 구금생활"

- 공항에서 어떤 이유로 외국인보소호로 수감되었나? 보호소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인천공항에서 위조여권이 적발되어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실로 넘겨졌고, 출입국관리법 위반으로 강제퇴거명령을 받았다. 나는 공항에서 난민신청을 하러 왔다고 밝히며 변호사 선임을 요구했으나 모두 묵살당했고,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보내졌다. 그곳에서는 당장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아무도 나에게 어떻게 난민신청을 할 수 있는지, 언제까지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말해 주지 않았다. 한 직원은 여기서 난민으로 인정되기 어려우니 돌아가라고 했으나 내 여권이 없어 돌려보낼 수 없었다. 나는 보호소에 1년 7개월 동안 있었는데 이것은 나에게 또 다른 투쟁이었다. 보호소의 환경이 너무나 열악해서 나는 구금된 사람들의 권리와 더 좋은 환경을 위해 57일간의 단식투쟁을 했다. 이들은 이를 이유로 여러 차례 나를 독방에 감금시켰다. 이전에 투쟁의 중심축은 나의 국가를 위한 것이었지만 외국인보호소 안에서의 투쟁은 나의 개인적인 자유를 위한 것이 되었다. 

보호소에서 내가 투쟁할 때 주변 사람들은 투쟁을 하면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할 것이고, 이곳에서 풀려나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내가 확신했던 것은 내 자유가 이곳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는 '만약 신이 나를 자유롭게 허락한다면 그들은 나를 붙잡지 못할 것'이라는 심정으로 싸웠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 이야기 할 때 웃었고, 나를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난민인권센터의 도움으로 풀려날 수 있었고, 마침내 자유를 얻게 되었다.

- 난민 신청 후 인정되기까지 3년 가까이 걸렸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
"나는 2013년 말에 한국에 입국했고, 구금 상태에서 2014년 1월에 난민 신청을 했다. 같은 해 출입국관리소로부터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불인정 결과를 통지받고, 그 해 9월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5년, 2심에서 패소했다. 항고하는 대신 출입국관리소에 난민 재신청을 해 2016년 10월 난민으로 인정되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나는 안전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이곳에 왔지만 2년 가까이를 감옥에서 살았고, 이후에도 새로운 고통을 겪었다.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이 감옥에 2년 동안 있어야 할 이유가 되는가. 나는 완전히 내 자유를 박탈당했고, 매순간이 쓰라림의 연속이었다. 나는 인생의 5년이라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 난민 지위를 받았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내가 난민 지위를 받았을 때는 보호소에서 풀려 나와 있었지만, 3개월마다 가서 해제 연장을 받으며 언제든 보호소로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취업허가도 나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무척 힘들고 참혹한 상황이었다. 지위를 받았을 때 '드디어 받았구나, 3년간의 힘겨운 시간을 뒤로 하고, 이제 이곳에 머물 수 있게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였다. 이후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아이디카드(신분증)를 받아 일을 할 수 있고, 문제들은 없어졌지만 개인적인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 사회에 스며들고 싶었고, 더 많이 알고 싶었고, 커뮤니티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 사회, 이 나라의 일부분으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외국인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어떤 커뮤니티에 속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난민 돼도 불안한 삶... 커뮤니티 속하는 건 불가능"

- 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일을 시작할 수 있었나?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생계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일은 곧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외국인들을 도와주는 법률사무소에서 조력자로 일하고 있다. 난민신청자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행정적 문제, 소송, 결혼등록 등과 관련해 법률지원을 하는 곳이다. 통역도 하고 여러 가지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가족 없이 혼자 살고 있고, 소득은 내가 생활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 하지만 나한테는 일이 우선 순위가 아니다. 지위를 받기 전에도 나는 어떻게든 먹고 살았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정상적인 삶, 안심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이었지만 나는 지금도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

- 당신에게 정상적인 삶은 무엇인가?
"정상적인 삶이란 내가 나의 공동체, 사회, 주변을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고, 실제 이웃에 속해 있어야 하고, 내 이웃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내가 사는 도시는 누가 이끌고, 어떤 계획을 가지고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것이 정상적인 삶이다. 그래야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고, 매일매일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갈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고립 속에서 살고 있다. 나는 어느 곳, 어떤 사람들 속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나를 도와주는 몇몇 단체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5년 뒤에 국적을 얻는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한 장의 종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이렇게는 안 된다. 나는 인간이고, 인간으로 살고 싶다."

- 난민 지위를 얻었는데 왜 안심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나?
"왜냐하면 언제든 쫓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만약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내거나, 5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에 처해지면 추방당할 수 있다. 또한, 징역을 살고 난 후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본국으로 추방시킨다.[1] 심지어 한국 국적을 얻은 이주민일지라도 국적을 취소하고 추방하는 경우를 보았다. 죗값을 치른 사람은 이제 그 죄를 묻지 않고 원래의 삶을 살 권리가 있는데, 왜 외국인에게는 죗값을 치르고도, 국적을 취소하여 추방하는가? 내가 일하는 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이주민들은 이 나라에서 언제나 안전하지 않다.

또한 난민 지위로 3년 체류 허가를 받았는데, 이후에 재연장이 될 수 있을지 몰라 어떤 미래의 계획을 세울 수 없다. 5년이 지나면 귀화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일반 귀화 신청을 하려면 6천만 원의 소득을 증명하고, 한국인도 통과하기 어렵다는 한국어 시험을 봐야 한다. 한국에 온 난민들은 마치 신생아와 같이 본국에 모든 걸 내버려두고 온 처지인데, 어떻게 5년간 그렇게 큰 돈을 모아서 귀화 신청을 할 수 있나. 그리고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고립된 생활 속에서 한국어를 배워 시험을 준비할 수가 있나. 난민 인정 후에도 우리는 일반 공공기관이 아니라 출입국에서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데, 내 지위가 바뀌어도 그곳에 갈 때 나를 노예처럼 대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곳에 갈 때는 그저 신께 기도할 뿐이다."

- 한국과 다른 카슈미르의 문화, 생활 등 다른 점에 대해 알려 달라.
"무슬림이 80% 정도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불교와 힌두교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문화는 인도나 파키스탄과는 매우 다르다. 그런데, 한국의 문화와 아주 유사한 점이 있다. 이야기를 나눌 때 서로를 존중하고 겸손한 태도로 대하는 문화가 그것이다. 개인적인 문화보다 공동체적이라는 점, 대가족 제도도 유사하다. 함께 모이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고 사계절의 날씨도 비슷한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육을 잘 받았고 문해율이 매우 높다. 다수 종교가 무슬림이어서 무슬림 사회의 특징이 스며들어 있다. 보통 이슬람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터번과 긴 수염을 가진 사람들의 풍경을 생각하면 된다."

"난민이 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 일부 한국사람들이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이 무슬림이고, 그래서 폭력적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모든 무슬림이 그렇다, 아니다라고 말할 수 없다. 같은 무슬림이어도 개인마다 다르다. 그것은 기독교인이 모두 '어떻다' 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무슬림도 개인마다 제각각 모두 다르다.  제주도에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 데에는 입국을 시켜놓고,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본다. 만약 한국 정부가 입국을 허가했다면, 인간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이곳의 경우 작은 국가이고, 아직 시스템이 충분하지 않기에 대량으로 올 시에는 감당할 수 없는 것 같다. 이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받는 것이 필요하다. 난민신청자들은 매일매일 긴장 속에서 대기하면서 시간을 잃어버릴 뿐이다. 장기간을 무기력한 노예 상태로 지내면서, 언제 체포/구금될지 모르는 삶을 사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5년을 기다린 뒤 불인정이 되어 또 다시 다른 나라로 떠돌아야 한다면, 그들의 삶은 과연 어떻게 되겠는가. 또한 난민 지위를 준다 한들 3년 뒤 혹은 6년 뒤 다시 쫒겨날 수 있다면 어떻게 이것이 합당한가. 만약 국가가 모든 난민신청자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시스템을 바꾸고, 시간을 단축시켜 빨리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

-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왜 난민들이 한국에 오는지 잘 모른다.
"난민이 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이 땅을 떠나길 원하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나라를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 원치 않는 일이 닥쳤을 때, 모든 것을 남겨 두고 타지에 와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만 할 때, 그것은 누구에게나 비극이다. 나는 카슈미르에 있을 때는 영향력을 가지고 안정된 삶을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노숙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의 위에서 바닥으로 내려온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난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
▲  난민의 권리 보장을 위한 다양한 목소리
ⓒ 난민인권센터



"우리는 여러분의 과거, 인간의 존엄 위해 함께 싸워주길"

- 다른 이주민, 난민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심정으로 참가하나?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위태로워질 수도 있는데.
"나는 정치활동가였고 나의 나라를 위해 싸웠다. 이곳에서도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 지금 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내가 이 인터뷰를 함으로써 나에게 조만간 곤란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출입국에서는 아마도 내가 이러한 삶을 살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두렵지 않다. 나의 행위는 그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부터 결정된다. 나는 이 지위를 가지고 다른 사람들(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을 대신하여 말하는 기회로 사용하고 싶다. 이로 인해 나 자신과 내 지위, 내 모든 것이 위험해 질 것이라는 것을 안다. 괜찮다. 동물이 아닌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것이 범죄라고 한다. 그것이 범죄라면 나는 계속해서 그것을 저지를 수밖에 없다.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그냥 침묵하고, 인간으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아야 한다. 이 아이디카드를 얻은 대신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렸다."

- 마지막으로 한국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한국의 조상들이 일제식민지 하에 겪었던 상황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다. 그들은 희생되었고 고난을 겪으며 노예의 삶을 살았고 위험 속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당신들의 조상들과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는 당신들의 돈이나 다른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원하는 것은 조상들에게도 인간의 존엄이 필요했듯이 우리에게도 그것을 지켜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같은 인간으로서 뭔가 잘못된 게 있으면 그것에 대해 목소리를 내주길 바란다."

* 주석 [1] : 난민 신청자/인정자의 경우는 강제송환금지 조항이 있기 때문에, 일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출입국관리법의 강제퇴거 규정이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며, 실제 사례에 대해서는 좀 더 조사가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강은숙님은 난민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 기고글은 차별금지법제정연대 홈페이지 equalityact.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원문 링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56536&CMPT_CD=SEARCH



Posted by 난민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