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예맨 난민을 지원하기 위해 우리는 정부의 적절한 대응과 제도적 개선을 요구해 왔고, 정부 지원의 분명한 필요를 느낍니다. 그런데, 정부의 대응만이 전부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삶의 터전에서, 이들과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함께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합니다. 인간이라면 낯설고 알지 못하기에 발생하는 거리감과 두려움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막연한 감정들은 타인의 삶에 말을 걸어보고, 서로 다른 문화를 알아갈 해소되어, 보다 분명한 이해와 공감의 계기가 있습니다.

 

얼마 제주도에 살고 있는 가족이 예맨 난민 가족을 초청해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알아서 아니라 ' 알기 위해', ‘도움이 필요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어서돕는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문화와 종교를 가진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지 하현용 목사님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함께 상상해 보면 어떨까요?

 

난센에서는 하현용 목사님의 페이스북에 포스팅 되었던 글을 모아서 2회에 걸쳐서 연재하고자 합니다. 연재를 허락해주신 하현용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고] 제주에서 예맨 난민 가족과 함께 살기1

 

-글, 사진: 하현용

 


나는 상황이 마치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아마도 각자의 역할을 것이고 결말에 다다를 때쯤 과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사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매우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경험적 답을 만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내놓은 답은 예멘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채점 것이다.”

 

 

#1

5명의 딸과 엄마, 아빠인 7명의 가족과 아들2, 엄마, 아빠인 4명의 우리식구가 전부터 뜻하지 않은 동거를 시작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선의에 의한 도움이 생각보다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들어 왔던 터라 기한 없이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서로 합의된 기준을 가지고 소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처음 만난 나는 아버지끼리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자 요청했다.

나는 당신 가족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지, 당신들이 도움이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고 이야기 했다. 우리도 도울 있는 여건이 되는 것이지 도울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도 했다.

그래서 지금은 상황에 따라 이런 자리매김을 하지만 생활할 우리는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받고 불편한 것은 지체 없이 이야기 하고 감정적으로 이야기 것은 직접 이야기 하지 않고 서로 알고 있는 3자를 통해 이야기 하기로 했다.

나라를 떠나 수세에 몰린 이들이 다시 안전한 일상으로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인 도움과 함께 그들을 독립되고 존중 받는 존재로 소통하는 이웃의 역할이 크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그래서 어제 저녁 라마단 기간 해가 지고 시작된 저녁에 초대받아 우리식구도 얻어 먹었다. ㅋㅋ

카레가루가 들어간 요리와 토마토와 청량고추로 만든 소스와 닭구이는 일품이었고 무엇보다 중간중간 생부추를 씹어 먹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2

 

4년전 제주도에 이사를 했을 무렵 공동체 식구가 건축사기를 당해 돈을 잃었다.

과정에서 가정이 자기집에 공간을 주어 개월을 함께 살게 되었다. , 거실과 화장실이 있는 집에 성인 명과 아이 다섯에 뱃속 아기까지.(정확한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이 집이 필요한 예멘가족에게 선뜻 공간을 내어 있었던 것은 이미 내가 속한 공동체의 전통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의 누구라도 도움이 필요할 지체 없이 자신의 것을 나눈다.

난민 가족이 오자 형제는 즉시 시리얼 박스와 우유 박스 물을 사서 왔다. 그리고 자매는 교회식구들의 이불을 모아 보내주었고 다음날 생일을 맞은 친구는 가족들과 식사한 과일을 들고 방문하였다.

이번 주일 그들과 함께 어떻게 지낼지 고민하고 주중에 재정을 보내기도 하였다.

또한 많은 분들이 페북의 후원요청을 보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고 재정을 보내주셨다.

우리 부부의 결정의 배후에는 당연히 결정을 공동체가 지지하고 도울 것이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또한 나와 벗하는 신앙인들과 이웃들 많은 이가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도울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반대로 인터넷에 난민거부청원이 있었고 현재 거의 20만명이 서명을 하였다. 동네 가깝게 지낸 분들 중에도 난민에 대해 손사래를 치시는 분들도 계신다.

어제는 한림에 있는 할랄푸드를 파는 가게에 함께 다녀왔는데 직업소개를 통해 한림에만 200 가까이 예멘난민이 유입되었고 주민들도 대부분 일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 걱정과 염려하지만 워낙 이전부터 외국인 노동자가 많았던 터라 낯설어 하시진 않았다.

우리 공동체 친구들, 후원과 격려해 주신 분들, 인터넷 청원.댓글로 의사표현을 하는 사람들, 걱정이 있지만 외국인 노동자를 낯설어 하진 않는 한림의 주민들, 그리고 이들을 함께 돕는 커뮤니티 사람들, 정부와 대책위, 구호단체, 언론사...

나는 상황이 마치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아마도 각자의 역할을 것이고 결말에 다다를 때쯤 과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사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매우 철학적인 질문에 대한 경험적 답을 만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사회가 내놓은 답은 예멘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에게 채점 것이다.

 

#3

 

"I mean 블라블라.."
"What do you want
블라블라..."

가족이 오고 후에 우리 집은 영어가 공용어가 되었다. 오늘부터는 가급적 한국말을 쓰기로 했지만 여전히 소통할 영어가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살인 둘째야 누구에게나 가서 한국말로 이야기 하지만 열한살인 첫째가 전체적인 소통에서 배제 되고 있는 것이다. 예멘가족은 아이들까지 영어 소통이 가능해 생겨난 일이다.

예멘 부부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첫째 나에게 수수께끼도 내고 하다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방에 들어가 혼자 누워있다.

...첫째가 상황에서 힘들어 하는구나. 아빠인 나는 순간 마음이 철렁했고 첫째에게 가서 물어보자 생각이 맞다는 있었다.

가족이 왔을 라마단기간이어서 하루 종일 금식한 식구들이 저녁이 되어서 식사를 했다. 그리고 거의 밤에 생활을 하니 자연스럽게 우리가족의 식사도 늦어지고 점점 시간이 늘어나 아이들도 우리부부도 12시가 넘어 자는 날이 많아졌다.

오전에 학교를 가고 나도 일이 있으니 하루가 마칠 때쯤이면 몸이 정말 피곤하다. 그러니 예멘가족에게는 아니지만 우리가족끼리 소통할 짜증이 서로 늘었다. 몸이 피곤하니 신경이 곤두서는 것이다.

문화 다르고 생활패턴이 다른 심지어 언어도 다른 가족이 함께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뜻하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는 첫째를 위해 아내와 나를 위해 우리 가족도 도움이 필요하다. 사실 둘째는 마냥 즐거운 같기도 하다. 깊은 속내야 모르겠지만.

가족이 우리 집에 오기로 결정하고 기다리면서 나는 식구들과 함께 모여 우리가 겪을 일들을 이야기 하고 기도했다. "주님 우리는 연약하고 누군가 도울 만큼 준비 되어 있지 않습니다. 함께 지내는 동안 서로를 원망하고 힘든 순간을 깊은 마음속으로 감출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족을 도와주세요. 우리를 인도해주세요."

어쨌든 기도빨로는 부족한 같으니 우리가족을 위해 기도해 주십사 부탁 드립니다. 지혜롭게 대처 있도록.

하지만 아무쪼록 힘들면 가족부터 챙겨 라는 말은 넣어두세요. 세상 어디에도 나에게 아무 손해 없이 다른 이를 돌보는 방법은 없으니까요.

 


#4

 

서로 다른 문화에서 살던 이들이 갑자기 한집에 살게 되었을 무슨 일이 생길까?

사실 나는 무슬림 문화에 대해 백퍼 무지하다. 종종 학교 다닐 라마단기간에 대항(?)기도를 하긴 했지만 라마단의 의미는 뒤로하고 그것이 일상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필요가 없었다.

얼마 가족의 아버지와 제주시에 나갔다 왔다. 외국인청에서 이례적으로 취업비자를 내주어 취업설명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나는 볼일이 있어 다른 곳을 들렸다가 다시 외국인청으로 가면서 한국의 맛난 음료를 소개해주려고 식혜를 샀다.

개는 , 개는 .

하지만 라마단기간. 낮에 그는 물도 마시지 않는다고 하며 매우 미안해 했다.

한번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익히 들었던 터라 닭고기를 대접했다.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할랄푸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할랄푸드가 음식종류라고 생각했다. 돼지고기는 안되고 닭고기는 되고...그러나 할랄은 닭을 어떻게 도축하느냐가 핵심이었다. 코란의 가르침에 따라 머리를 모스크로 향하고 기도한 목을 찔러 피를 것이 할랄푸드였다.

나는 재차 사과했고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금 우리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고 너와의 관계에서 친절을 베푼 것에 대해 거절하는 아니라 먹었다고 했다. 굉장히 어렵게 말을 주었다.

오늘 점심엔 다들 일이 있어 나가고 나와 예멘가족 엄마, 어린 딸이 함께 식사를 하였다. 가족들과 식사할 음식이 비어지지 않게 계속 앞에 놓아주는데 자연스런 식사문화인 같았다.

오늘 밥을 먹는데 예멘엄마와 막내는 빨리 먹고 나와 예멘 넷째 딸이 남았다. 나는 먹으려고 해서 앉아 있으니 친구가 자기가 먹고 남은 밥을 자연스럽게 앞에 놓고 일어났다.

11 예멘 친구는 나에게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관습대로 음식을 건네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것은 누가 봐도 그릇을 치우라고 주는 것이다!

5 당황했지만 고맙다고 인사하고 따로 식사를 마쳤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제주의 토박이와 이주민도 서로 어려워하는 마당에 예멘사람과 제주도민은 어떠하랴!

우리는 여기가 나의 땅이고 그들은 무례하게 들어왔기 때문에 모두 우리에게 맞춰야 한다고 이야기 것인가.
아니면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친구가 것인가.

이것은 비단 우리에게 만이 아니라 예멘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기는 나와 상관없는 곳이니 무턱대고 자신의 입장과 문화만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존중하고 함께 가는 길을 택할 것인가!




Posted by 난민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