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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부재


글 : 김호삼


  조국이란 단지 나의 조상, 나의 고향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국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자, 내 인생을 그려나갈 수 있는 땅이다. 이 조국에는 아름다운 추억도 깃들어있다. 내 가족, 나의 친구, 나의 재산이 이곳에 있다. 그리고 조국 역시 역사, 유산, 영광, 영웅과 같은 자산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애국심이란 대부분의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고귀한 감정으로, 소속감과 정체성을 느끼게 해준다. 애국심은 국가, 국민과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만들어준다. 인간으로서 가장 좋은 점은 한 국가의 국민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국민으로서 긍지를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애국심을 실천으로 옮길 필요성을 느끼고, 모든 희생을 감내하려 한다. 


  실천 없이 말로만 애국심을 외치는 것은 거짓말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인 무함마드 다르위시가 했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다르위시는 망명지에서 시 한 편을 썼는데, 그 시에서 애국심의 의미를 모른 채 적과 손을 잡고 사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관해 이야기 한다. 다르위시의 시에서 더 나아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자 한다. 조국을 잃은 인간의 가치는 무엇인가? 조국을 잃었다고 생각해보아라. 영영 잃게 되는 것이 아닐지라도, 길을 잃어버린 심정일 것이다. 조국이 없다는 것은 안전함도 없다는 것이다. 자유와 인류애를 희망하고 감옥에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조국을 잃은 당신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게 된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재판도 없이, 혐의도 없이 죽어가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한 예로 4년 전 이집트에서 정치적인 변화가 일어난 바 있다. 그때 합법적으로 당선된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한 한 청년이 있었다. 그러나 군사령관이 일으킨 군부 쿠데타로 무르시 대통령은 어떤 죄도 없이 투옥되었다. 그리고 군사령관은 부패한 정치분위기를 타고 자신을 대통령으로 임명했다. 무르시 대통령을 지지하던 청년은 애정과 사랑으로 가득한 가족, 이웃과 함께 살고 있었다. 청년은 이집트의 두 번째 수도에 위치한 규모가 꽤 큰 회사도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군사령관이 대통령을 자처하기 전인 군사쿠데타가 발발한 직후 군사령관을 지지하는 안보탄압기관은 무함마드 무르시의 지지자들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무르시 지지자들은 한순간에 아무런 죄명도 없이 정치적 사상의 이유로, 의견을 개진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유로운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추방당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추적을 피해 집까지 떠나야 했고, 일도 그만두어야 했다. 가족, 친구, 친척들에게까지 감시가 이루어져 소중한 사람들도 떠나 보내야 했다. 이 모든 일이 한 국가에서 일어났다. 피난처도 없이 안전한 삶도 없이, 조국에서 조국을 잃은 채 이국땅에 와있는 느낌을 받게 된 것이다.  


  그 청년은 국가를 찾아, 안전을 찾아, 안정감 속에 살 수 있는 땅을 찾아 떠났다. 가족, 친구, 이웃, 집, 직장 모든 것을 떠나 보냈다. 자기 자신에게만 의지한 채 자유를 찾아 떠났다. 자유가 있는 국가를 찾아, 조국에서는 잃어버린 안전한 국가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여러 국가를 전전했다. 그렇게 여러 국가의 문화, 종교, 관습을 접하게 되면서 국가별 정체성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이집트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 수 있는 그리고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안전과 자유를 찾아 많은 국가를 돌아다니는 동안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고 싶었다. 이처럼 그에게 국가란 안전을 보장받는 시민으로 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는 잃어버린 자유와 조국이 빛과 함께 다시 돌아올 것이라 희망한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외적으로 교활한 계획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국민들의 의지로 선출한 대통령이 부재하고, 군사령관이 군사 무기의 힘을 빌려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리고 강제적인 분위기 속에 경제, 교육, 정치, 보건 등 여러 부문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 


  이제 이 안쓰러운 청년은 미래를 꿈꾸고 있다. 정의로운 땅 위에 그의 가족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국가를 말이다. 더욱 기쁜 것은 이 청년이 고된 여행 끝에 그가 바라던 삶을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 새로운 국가에서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안전과 자유를 그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과 함께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안전한 집, 만족스러운 직장, 안정적인 생계수단을 갖게 되었다. 그는 그간 일어났던 많은 사건을 떠올린다. 그리고 본국의 상황이 어떤지 계속 주시하고 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조국에 돌아갈 생각만으로도 그는 두려움을 느낀다. 조국에 다시 돌아가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아직 조국에 남아있는 가족들과 친구들은 이러한 현실을 느끼고 있다. 그도 역시 그의 삶과 안전을 생각해 조국으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접게 된다. 그의 친구들과 지인들이 목숨을 잃고, 투옥되며, 사형선고를 받기도 하고, 강제로 추방되거나 실종되기도 한다는 소식들을 접하기 때문이다. 


ⓒ the refguee art project



  모든 사람이 자유와 존엄, 그리고 정의로운 민주주의 속에서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서방국가처럼 국가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열망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이들은 조국 안팎에서 사실상 조국을 상실한 채 떠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텔레비전 방송에 전 대통령을 쿠데타로 축출한 현 군부 대통령이 조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대통령은 말한다. “우리는 아무런 기반도 없습니다. 교육도 경제도 보건도 열악한 상황입니다……” 그의 이런 말은 가슴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부패한 군부 지도자 당신이야말로 조국을 빼앗아가고, 국가 안팎의 국민들을 내보냈다. 국가가 이렇게 된 것에는 당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청년은 두렵다. 그래서 그가 바라왔던 현재의 국가로 돌아온다. 그가 있는 새로운 국가가 자신을 환영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그렇지만 인권과 안전이 보장되는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는 마음속으로 고민을 한다. 가족, 친구, 여러 추억이 담긴 조국으로 갈지, 자유, 안보, 생계, 새로운 친구들이 있는 이곳에 남을지를 말이다. 스스로 답을 구했다. 차라리 분쟁 없고, 정체성 없고, 조국 없는 삶을 택하겠다고. 인류애를 느낄 수 있는 자유와 존엄성을 보장받는 곳을 택하겠다고. 두려움과 박해 없이 종교적 생활을 할 수 있고, 건강한 삶과 윤택한 삶을 누리며, 아프면 의사에게 치료를 받을 수 있고, 안전하고 편리한 최신 교통수단을 통해 이동할 수 있으며, 갈등이 생기면 진정한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국가에서 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이집트 연구자의 조사가 그가 내린 결정에 대한 명분을 확실히 해준다. 한국에는 정의가 구현되어 있다. 이집트에서는 판사는 증거도 없이, 문구로 된 정치적 판결도 없이, 조작된 혐의로만 사형선고를 내리고 높은 형량을 부과한다. 한국에는 편리함, 안전성을 갖춘 대중교통 수단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집트에서는 열차 사고, 교통사고 등 안타까운 소식을 많이 접한다. 한국은 깨끗한 선거, 정당한 경쟁이 이루어진다. 외국인이라 선거에는 참여할 권리가 없지만, 시위에 함께 참여하고 자유 연대를 외칠 수 있다. 대다수의 한국 국민들은 평화시위에 참여하였고, 큰 광장에 나와 몇 달간에 걸쳐 농성을 벌였다. 경찰은 국민을 보호하고, 물도 건넸으며, 필요한 경우엔 구급차도 불러주었다. 한국의 혁명은 피 한 방울, 부상자 한 명도 없이 성공하였다. 한국은 어떻게 혁명이 평화롭게 이루어졌는지, 어떻게 변화의 물결이 국민의 의지와 권리를 향한 믿음만으로 일게 됐는지 세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국민은 국가권력의 주인이다. 이 세계적인 개념을 정립한 사람이 바로 존 로크와 몽테스키외이다. 이 개념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 따르는 일종의 법이다. 이집트에서는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농성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일명 ‘네 손가락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천 명이 죽고 피를 흘렸다. 그리고 군부 지도자를 지지하는 탄압기관이 천 명 이상의 희생자를 발생시켰다. 조작된 선거와 혁명이 이어졌고, 군부는 이를 무기로 진압했다. 정책은 칼을 들이대고 군부의 생각을 강요하는 군사 정책이었다. 그는 조국 없는 어려운 여행 끝에 찾고자 하는 것을 발견했다. 조국이란 안전, 자유, 생계가 보장되는 땅이라는 것을 알았다. 국가 정체성과 시민의 차이를 알았다.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는 삶을 보았다. 언젠가는 그의 꿈이 이루어지리라. 조국이 없는 누군가도 조국을 가질 수 있게 되리라. 



번역 : 정수지

감수 : 고은지



Posted by 난민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