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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와 난민인권> 6강 '난민과 젠더' 참여 시민 후기

 

<난민여성과 제도의 사각지대>


글 : 정윤주(서울대 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이번 강의를 통해 난민인권을 젠더 폭력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난민‘과 ’여성‘이라는 이중적 취약성에 노출된 우리의 이웃을 간접적으로 만나볼 수 있었다. 통계적 수치로는 작년 우리 나라에는 7542명의 난민신청자가 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들 한명 한명의 인생을 조명하며 관심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번 강의는 난민여성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엇이 그들을 난민으로 내몰았고 어떤 고통을 받아왔는지를 보여주면서 그들의 인생의 굴곡을 따라가 볼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제공하였다.

 

우리는 난민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위험을 피해온 사람들이라고 어렴풋하게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난민, 특히 난민여성들은, 강의를 듣는 내내 속이 안 좋아질 정도로 생각보다 훨씬 잔인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소개된 난민여성들은 여성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는 ‘할례’를 피해 오거나 내전 상황에서 강간을 당한 후에 협박에 시달리다 탈출하고, 특정 집단에게 박해를 받아 와서 할 수 없이 난민이 된 사람들이다. 열악한 국가에서는 중앙 정부가 미성년 여성들의 인권 유린에 앞장서서 문제제기를 하기는커녕, 할례를 외면하고 묵인한다고 한다. 이들은 공권력으로부터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하고 그것을 피하려 하면 신체적, 정신적 린치가 가해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은 난민의 삶을 선택하도록 강요된다.


 

당장 내가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생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마음이 무거워지는데, 실제로 이런 삶을 살아온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숨어 살고 있다는 게 안도되면서 안타까웠다. 더군다나 난민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한국 사회에 말이다. 특히 난민인정절차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입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의를 통해 배우면서, 제도의 잔인성을 새삼스럽게 한 번 더 느꼈다. 자신에 대한 박해를 피해 찾은 공간에서 박해 사실을 다시 본인의 입으로 몇 번씩이나 진술하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일까. 더군다나 그것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진술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일까. 법은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것이 오히려 전도되어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인생에서 가장 가혹한 시기를 거쳐 한국에 도착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줄 수 있는 너그러운 사회이길 바라왔다. 법을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사람들에게 인권 감수성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일까.

 

하지만 생각보다 제도는 친절하지 않은 듯했다. 법제도는 사회를 이루는 기본적인 뼈로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뼈만 있다고 사회가 매끄럽게 굴러가지는 않는다. 뼈를 잇는 연골과, 이것을 감싸는 근육들도 튼튼해야 사회가 건강하게 살 수 있다. 법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잘 지켜지고 있는지, 실제로 법이 적용되는 과정에서 상처 받는 사람이 있지는 않은지 피드백을 항상 해야 한다. 또한 법을 둘러싼 사회 구성원들의 폭넓은 공감과 이해가 제도를 뒷받침해야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법이어도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 들일만큼 성숙하지 않는다면 그 법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난민이 한국에서 난민 심사를 할 때에 같은 성(性)의 난민심사관과 통역관을 대면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형식적인 법은 마련되어 있을지 몰라도 이 법의 존재를 알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환경 속에 놓인 난민이 있을까? 이렇듯 법의 형식과 실제는 큰 차이가 있고 난민여성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막막하게 살아가고 있다.

 

이렇게 힘들게 한국 사회에 정착을 한 후에도 난민여성을 생계유지에 어려움을 겪는다. 왜냐하면 안 그래도 난민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고용되기는 쉽지 않은데다가 신체적 노동에 있어서는 여성보다는 남성이 선호되기 때문이다. 난민여성들은 보조금에 의존하고 지원받는 체류를 원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생계, 경제적으로 자립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삶에 대해, 한 난민여성은 “난민여성으로서, 이방인으로서 사는 것은 다리를 외다리로 아이 셋을 등을 한꺼번에 업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절벽으로 몰린 난민여성들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이번 강의는 전체적으로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나조차도 편견을 갖고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난민을 보살펴야하는 존재, 지원해줘야 하는 대상으로 무의식적으로 생각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난민은 그들의 인생의 주체, 더 나아가서는 우리나라 사회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적극적인 의미의 시민이다. 그들이 무사히 우리 사회에 정착하고 그들의 색깔을 유감없이 발한다면 우리나라 사회가 얼마나 풍요로워지고 다채로워질지 기대가 된다. 실제로 한 인터뷰에서 난민여성은 “여성들 앞으로 교육을 좀 더 받을 수 있으면, 열심히 더 도움이 되는, 그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여성으로 살아갈 거라고 저는 기대하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저도 좀 공부 더 하고 하면 뭐 사회에나 다문화나 외국 그런 분들한테 도움을 주고, 한국한테도 도움이 되고 그런 것을 하고 싶어요. 한국에 필요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한국 사회에서 시민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다. 우리는 선입견과 부적절한 제도의 실태로 인해 동료 시민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나락으로 몰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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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난민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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